“남편 없인 살아도 바당 없인 못사는데” 물질 70년 인생, 해녀가 말했다
제주 애월읍 고내리 어촌계의 해녀들이 31일 이른 아침부터 한데 모였다. 당장 다음날인 1일부터 바다에서 뿔소라 등 수산물 채취를 하지 않는 ‘금채기’가 끝나기 때문이다. 고민할 것 없이 고무옷과 물안경을 챙겨 바다로 나가면 좋겠지만 이날 해녀들은 일본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시작한 지 일주일이 된 바다에 들어가도 괜찮은지 의논했다. 해녀들은 논의 끝에 5일부터 물질을 나가기로 했다.
60대부터 80대까지 고루 분포한 고내어촌계 해녀들에게 ‘바당(제주어로 바다)’은 삶 그 자체다. 초등학교 때부터 마을 어르신들을 따라 물질을 시작한 김영자씨(76)에게도 마찬가지다. “우리 어릴 적엔 놀이터가 없잖아. 바다가 놀이터야. 여기서 헤엄치고 놀고 물질한 게 70년이야.” 김씨가 말했다.
아무리 과학자들이 오염수 방류가 안전하다고 말해도 해녀들은 걱정을 덜기 힘들다. 물질을 나갈 때마다 수없이 바닷물을 먹게 된다. 김씨는 “한 번 파도가 쓸면 물을 먹고, 또 먹고 그 반복”이라며 “우린 바다에 들어가기도, 그 물을 먹고도 살아야 하니 오염수를 바다에 쏟아붓는 것이 달가울 수 없다”고 했다.
“남편 없이는 살아도 바당 없이는 못 살겠다!” 평소에 김씨가 자주 하는 말이다. 바다가 그만큼 좋다는 것보다는, 벌이가 없는 남편을 대신해 김씨가 벌이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바다라는 의미다. 큰돈은 안 되지만 해녀들은 물질로 전기세·수도세를 내고, 쌀을 사고, 손주들에게 용돈을 쥐여준다고 했다. 김씨 옆에서 “우리 아직 요양원 갈 돈도 다 마련을 못 했는데…”라고 한 해녀가 덧붙였다.
김씨가 살아온 세월 동안 제주 앞바다의 환경은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김씨는 “옛날엔 보말도 많고, 문어도 많고. 물만 내려가면 전복, 오분자기 할 것 없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지금은 우리 제주도 말로 몸(미역)이나 듬북(모자반)이 안 나. 그런 것이 많아야 물고기도 소라·전복도 가까이 오는데, 그게 없으니 점점 줄고 고갈됐어”라고 했다.
이미 건강하지 못한 바다에 오염수를 버린다는 것이 김씨는 속상하다. 그가 평생 처음으로 다른 해녀들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집회’를 찾은 것은 그 때문이다. “막막하니까 집회를 네댓 번 가봤다”는 그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대통령이 나서주셔야 하는데, 그분들은 방류가 괜찮다고 좋게만 얘기하시니까. 우리는 아무래도 힘이 없다”고 말했다.
여름내 쉬어간 만큼 9~10월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물때만 되면 쉬지 않고 바다에 들어가는 게 해녀의 삶이다. “걱정돼도 들어가야지. 목숨 걸고 들어가야지. 다들 그렇게 생각할걸?” 김씨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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