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C 연고 이전…전주시, 스스로 팬들의 역사를 걷어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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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훈(36)씨는 케이씨씨(KCC)가 전주에 터를 잡은 2001년부터 줄곧 이지스의 농구를 봤다.
1973년 준공 당시만 해도 국내 최대 규모 실내 경기장이었던 전주체육관은 어느덧 가장 낙후된 시설이 되었고, 이를 이유로 2016년 수원으로 연고 이전을 추진했던 케이씨씨는 전주시로부터 신축 경기장을 약조 받았다.
전주시는 이사회 결정 직후 입장문을 통해 "졸속적이고 일방적으로 이전을 결정한 케이씨씨의 어처구니 없는 처사에 깊은 유감"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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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훈(36)씨는 케이씨씨(KCC)가 전주에 터를 잡은 2001년부터 줄곧 이지스의 농구를 봤다. 전북대학교 재학 시절 전주체육관으로 출석 도장을 찍었고, 전주를 떠난 뒤에도 늘 중계 방송을 챙겼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자 그는 “2009년 서울 삼성과 챔피언결정전 6차전”을 꼽으며 “관중이 꽉 차서 봤는데 정말 재밌었다. 제가 엔비에이(NBA)도 직관한 적이 있는데, 엔비에이 부럽지 않았다”라고 했다. 그날 삼성에 패했던 케이씨씨는 이틀 뒤 7차전을 잡고 챔피언에 올랐다.
전주 시민들의 이러한 추억담은 이제 영원한 과거로 남게 됐다. 지난 30일 한국농구연맹(KBL) 이사회에서 케이씨씨의 연고지 이전 안건이 승인됐다. 케이씨씨는 전주에서의 22년 세월을 매듭짓고 새 시즌 부산으로 떠난다. 이로써 호남 유일 농구팀이 사라지고, 프로농구 생태계는 수도권 다섯 팀, 영남 네 팀, 강원 한 팀으로 재편됐다. 최형길 케이씨씨 단장은 이사회 뒤 “가장 가슴 아팠던 부분은 22년 간 응원해주신 전주 팬들”이라고 했다.
케이씨씨가 밝힌 결정의 배경은 전주시의 지속적인 무시와 홀대로 요약된다. 1973년 준공 당시만 해도 국내 최대 규모 실내 경기장이었던 전주체육관은 어느덧 가장 낙후된 시설이 되었고, 이를 이유로 2016년 수원으로 연고 이전을 추진했던 케이씨씨는 전주시로부터 신축 경기장을 약조 받았다. 그러나 7년 간 착공조차 이루어지지 않았고, 설상가상 2025년까지 현 안방 경기장도 비워달라는 요구를 받으면서 구단은 헤어질 결심을 굳혔다.
전주시는 이사회 결정 직후 입장문을 통해 “졸속적이고 일방적으로 이전을 결정한 케이씨씨의 어처구니 없는 처사에 깊은 유감”을 표했다. 이전설이 불거진 뒤 신축 경기장이 완공되는 2026년까지 기존 체육관 사용을 보장했음에도, 케이씨씨가 일절 협상에 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김인태 전주 부시장은 “일부 저희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새 경기장에 대해 “행정 절차를 밟다보니 시간이 계획보다 많이 소요됐다”라고 설명했다.
시의 해명에 납득한 전주 시민은 드물다. 박성훈씨는 한겨레에 “기자회견에서 하는 말을 보면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한 것 같다”며 “그들에게는 그냥 일의 일부였겠지만 팬들에게는 추억이자 생활이었다. 그걸 빼앗긴 기분은 말로 다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전주시청 자유게시판에는 사태를 이 지경으로 내몬 시의 책임을 성토하는 항의 글이 쏟아진다. 첫 보도가 나온 16일부터 약 800개의 글이 쌓였고, 지금도 계속 늘어나는 중이다.
유독 연고 이전이 잦았던 프로농구계도 뼈아프다. 손대범 해설위원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한국은 스포츠를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전주 시민치고 케이씨씨 경기를 보러 안 가본 사람이 없을 텐데, 시민들의 여가·취미 같은 것을 고려했으면 그런 결정을 못 내렸을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서 “호남권 팀이 없어졌기 때문에 전주고, 전주남중 등 지역 농구 유망주들에도 타격이 있을 것이고, (리그도) 많은 팬을 잃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 해설위원은 “전주체육관은 제일 뜨거웠던 곳이다. 제가 스포츠기자 막내였던 2001년 비좁은 체육관에 자리가 없어 복도에서 경기 보면서 기사를 썼는데, 통로에도 사람이 가득했다. 팬들에게는 그런 추억이 다 유년기의 역사다. (전주시가) 스스로 역사를 걷어차 버렸다”라고 말했다. 케이씨씨의 2023년 누적 관중은 8만6443명. 리그에서 세 번째로 많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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