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청 백신 피해자 상대 항소 취하 절차 중"…다른 소송 영향 기대↑

이승륜 기자 2023. 8. 31. 16:2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질병관리청이 코로나19 백신 부작용 피해를 보상하라는 취지의 법원 판결에 불복해 제기한 항소를 취하하는 내부 절차를 밟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질병청이 진행 중인 다른 백신 피해 관련 행정소송에서도 패소 시 비슷한 입장을 취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31일 정춘숙(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질병관리청이 현재 백신 피해자와 진행 중인 재판에서 패소 뒤 제기한 항소를 취하하기 위해 관련 부처와 협의 중이다.

이날 정 의원실은 백신 피해자들과 백신 피해 대책 관련 정책 촉구 기자회견을 마친 뒤 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히고 “늦었지만, 질병청의 전향적 입장 변화가 반갑다”고 전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과 코로나 백신 피해자들이 31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정록 기자


앞서 지난달 7일 서울행정법원은 코로나19 예방접종 뒤 사망한 남성 A씨의 유족이 질병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이상반응 피해보상 청구 거부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청구를 받아들였다.

질병청 피해보상전문위원회는 A씨의 사망 원인이 뇌출혈이라는 부검 소견에 따라 사망과 백신 접종 사이에 인과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피해보상을 거부했다. 코로나19 백신 이상반응 인과성 평가 연구에서 백신 접종과 뇌졸중 및 뇌출혈 등은 인과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재판부는 질병청의 판단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부검 결과 A 씨의 뇌내출혈 부위에서 해면혈 관종이 발견됐는데, 법원은 해면혈 관종이 뇌출혈을 일으킬 수 있는 사실을 짚으면서도 A 씨의 사망이라는 결과가 백신 접종이 아닌 다른 원인에 의해서만 발생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후 질병청은 항소 여부에 대해 “현재 진행 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말하기 어렵다”며 구체적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한동안 질병청은 항소장을 제출하지 않았고, 피해자와 대리인 등은 “질병청 주장대로 기저질환으로 인해 이상반응이 생기는 것은 타당성이 떨어진다는 걸 (피해자가) 입증해 법원이 받아들인 것이므로 (질병청이) 이를 뒤집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질병청은 백신 피해자와 가족의 바람과 달리 항소장을 법원에 제출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과 코로나 백신 피해자들이 31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정록 기자


백신 피해자 가족과 정치권의 비난 여론은 나날이 커졌다. 지난 26일 국회 복지위 전체회의에서는 지영미 질병청장이 패소한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로 2심 판결까지 받아보겠다는 뜻을 재확인해 의원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지 청장은 “추가 소명 없이 1심 판결을 수용하는 경우 예방접종 피해보상 전문위원회(전문위) 심의 결과를 무시하는 상황이 된다”며 “향후 전문위 구성이나 운영에도 상당 어려움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사실 판단을 위해 2심 종료까지는 추가 소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 청장은 이어 “단순히 한 사례가 아니고 560건의 유사 피해보상 신청이 있어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피해보상 신청은 5년 이내에 가능하기 때문에 더 많은 신청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1심 판결을 그대로 수용 시에 백신 접종의 기준이라든지 또 금기 대상 선정 등 예방접종 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쳐서 정책 운용에도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복지위 소속 여야 의원들은 지 청장에게 국민을 대상으로 항소를 제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면서 항소 취소를 요구했다. 당시 의원들은 “법원이 (1심에서) 그렇게 판단한 것은 인과성이 없지 않다는 판단을 명시한 것”이라며 “1심 판결을 부정하고 계속 다른 핑계를 대면 국민이 어떻게 정부를 신뢰할 수 있겠느냐” “좀 더 피해자들을 위한, 백신 접종 과정을 충분히 반영한 전향적 기준을 갖고 항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의 이후 국회에서는 향후 질병청이 항소 취하를 검토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질병청이 최종 보고한 국회 시정 요구사항 요지에서 ‘질병청은 현재 백신 피해자 측이 1심에서 승소한 건에 대해 한 ‘항소를 취하하고’’로 관련 문구가 수정됐기 때문이다. 그간 질병청 보고 문건에서는 ‘항소 취하를 검토할 것’이라고 국회 시정 요구사항이 적혀 있었다. 정치권 관계자는 “국회 지적 사항 및 시정 요구사항 요지라는 것은 국회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정리한 내용을 담은 것이다. 국회 결산 보고 때 피감 기관이 해야 할 조치가 단정적으로 쓰여 있으면 통상 그렇게 따르겠다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의 “항소 취하 검토 등을 포함해 더 적극적인 자세로 제도 개선 방안을 상임위원회에 보고하겠다”는 발언도 항소 취하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코로나 백신 피해자들이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김정록 기자


현재 질병청은 법무부 등 부처와 항소 취하에 필요한 절차를 논의 중이라고 한다. 정 의원실 관계자는 “정부 내에서도 항소를 취소하려면 협의가 돼야 할 거다. 그래서 법무부와 상의하고 있다 정도만 알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법조계 등에서는 이번 항소 취하 결정이 다른 백신 피해자의 질병청 상대 행정소송에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A 씨 소송을 대리한 안나현 변호사는 “이번 항소 취하가 현재 진행 중인 다른 백신 관련 행정소송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면서도 “질병청이 다른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항소 포기를 결정하는 계기는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안 변호사는 이어 “이번 취하 결정 덕분에 다른 소송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 것도 소득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A 씨 유족도 기대감을 내비쳤다. A 씨 사촌형은 “질병청에서 사법부 판단을 인정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번 판례가 다른 백신 피해자들에게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A 씨 부인은 “소송을 도와준 이들에게 감사하다”면서 “이런 분위기가 계속돼 많은 백신 피해자가 인과성을 인정 받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향후 질병청이 더 보수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다는 우려 섞인 관측도 나온다. 이번 취하 결정 이후 질병청이 “이번까지만”이라는 단서를 달았다는 후문도 들린다. 김두경 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 회장은 “애초 질병청이 항소 취하 시 다른 백신 이상반응 신고자의 인과성 판단에 영향 줄 가능성을 우려했다. 앞으로 인과성 판단과 소송 등에서 더 보수적인 입장을 취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