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과 폐암·후두암 인과관계 확인”…건보공단 “담배소송 항소심서 담배회사 책임 따질 것”

김향미 기자 2023. 8. 31.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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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숙 가톨릭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가 31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열린 ‘담배소송 세미나’(국민건강보험공단 주최)에서 ‘폐암·후두암 환자의 흡연력 심층추적 조사’ 결과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김향미 기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이른바 ‘담배소송’의 항소심에서 흡연으로 인한 피해를 입증, 담배회사들의 책임 여부를 다시 다투겠다고 밝혔다.

건강보험공단은 31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담배와 암의 개별적 인과관계’를 주제로 한 ‘담배소송 세미나’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

‘담배소송’은 공단이 지난 2014년 4월 KT&G와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 등을 상대로 약 533억원을 배상하라며 낸 소송을 가리킨다. 청구액은 20년갑 이상 흡연자 중 폐암(편평세포암, 소세포암), 후두암(편평세포암)을 판정받은 환자 3465명에 공단이 앞선 10년간 지급한 급여액이다.

‘20갑년’은 하루 1갑(20개비) 이상씩 20년 혹은 하루 2갑씩 10년간 흡연한 상태를 가리킨다. 3개 암종은 별도의 소송에서 2011년 서울고등법원이 흡연과의 인과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2020년 11월 1심에서 공단이 패소했다. 당시 공단은 흡연과 질병 간 인과관계가 확인된 연구결과들이 있고, 담배회사들이 제품 제조과정에서 위험성을 줄이는 조치 및 위험성을 알리는 경고를 충분히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공단은 그해 12월 항소장을 제출했다.

현재 항소심은 올 1월 말 7차 변론까지 진행됐다. 공단은 향후 인과관계 입증 연구, 담배회사 내부 연구문서 등 추가 증거자료를 찾아 재판부를 설득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1심 재판부는 흡연과 질병 간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환자집단에 속한 개인이 위험인자(흡연)에 노출된 시기와 정도, 발병시기, 노출 전의 건강상태, 생활습관, 가족력 등을 고려해서 개연성이 있다는 것을 추가로 증명해야 한다고 주문한 바 있다.

이날 세미나에서 이강숙 가톨릭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한국금연운동협의회 회장)가 ‘폐암·후두암 환자의 흡연력 심층추적 조사’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1937년생인 A씨는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업무 강도가 높아진 30대 초반부터 흡연을 시작했다. 퇴직하던 1990년대 후반까지 금연교육이나 흡연이 해롭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고 폐암 진단을 받았을 때도 흡연과 암의 관련성에 대해 듣지 못했다.

역시 공무원으로 일했던 B씨는 군대 훈련소에서 지급한 ‘화랑’ 담배로 흡연을 시작했다. B씨는 “군대에서 담배 배워서 중독된 거라 국가를 원망 안 할 수 없다”라고 했다. 직장에선 담배를 안 피면 따돌림을 당했고 실내에서 모두 흡연을 하던 시절이었다고 했다. 2003년 후두암 진단을 받았다.

-이강숙·김관욱, <폐암·후두암 환자의 흡연력 심층추적 조사>

연구진은 지난해 4월28일부터 올해 1월30일까지 담배소송 대상자 30명을 심층면담해 질적연구를 수행했다. 흡연 시작 연령은 20대가 15명, 10대 14명, 30대가 1명이었다. 가족력이 있는 사람은 9명, 직업상 유해물질 노출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금연시도(또는 성공) 동기는 암 수술이 57%였고, 금연이 어려웠던 이유로는 중독·금단현상이라는 응답이 63%였다. 연구진은 “니코틴의 중독성을 반증하는 결과”라고 했다.

이 교수는 “심층조사에서 환자 개별적으로 흡연과 질병 발병 간의 인과관계가 있음을 확인했다”면서 “법원의 정당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했다.

이 연구에 참여한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이날 세미나에서 ‘흡연에 영향을 미친 사회문화적 요인’을 발표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심층조사 대상자들은 ‘흡연이 성인 남성의 필수품처럼 여겨지된 당시 사회에서 문화적 실천’으로서 흡연을 접했다. 30명 중 5명은 군대에서 ‘화랑’ 담배로 흡연을 시작했다.

대상자들은 평균 1963년에 흡연을 시작했다. 그 당시 사회적으로 담배의 유해성·중독성에 대한 정보 전달이나 금연교육이 부족했다. 담뱃갑에 경고문구가 처음 들어간 것은 1976년이었지만, 이를 기억하는 대상자들은 거의 없었다. 1996년 이전까지는 경고문구가 작은 글씨로 담뱃갑 옆면에 들어가 있었다.

김 교수는 “담배 제조사들은 담배의 유해성 정보를 충분히 제공했다고 하지만 소송 대상자들이 흡연을 시작하고 중독된 시기 한국의 사회·경제적 환경은 그러지 못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정기석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의학적으로는 폐암이나 후두암에 이른 원인이 담배 말고는 없는 거로 확인이 되는데 법리적으로는 1명도 인정되지 않았다”며 “담배는 중독성이 강한 ‘마약’이기 때문에 이를 만든 이들도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금연소송을 반드시 이겨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법적인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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