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묻습니다, 2024년 예산안 정말 '건전재정' 맞습니까

박재령 기자 2023. 8. 31.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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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도 예산안'… 다수 언론 발표대로 '건전재정' 강조
실상은 재정건전성 지표 악화, 조선도 "이게 무슨 건전재정인가"
전문가 "기술적으론 확장재정, 기재부 짠 판 크게 벗어나지 못해"
'R&D 예산 축소' '총선용 예산 배격' 긍정적 평가 이어져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20년 만에 가장 적은 증가 폭의 '2024년도 예산안'이 편성되면서 많은 언론이 정부의 '건전재정 전환'을 강조했다. 세입 급감으로 재정건전성 지표는 오히려 악화했지만 정부 발표대로 '재정만능주의, 선거용 예산 배격'이 키워드였다. “기자들의 분석보다 기재부 보도자료에 기초한 스탠스”라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건전재정을 강조한 신문들은 'R&D 예산 축소' 등 예산안 내용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월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정부는 지난 29일 국무회의를 열고 올해보다 2.8% 늘어난 656조9000억 원을 내년도 예산안으로 편성했다.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지출 증가율이다. 정부는 △약자 복지 강화 △미래 준비 투자 △양질의 일자리 창출 △국가 본질 기능 뒷받침 등 4가지 중점 분야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예산 증가 폭이 평균 8.7%였던 이전 정부와 비교하며 '건전재정 전환'을 반기는 보도가 대다수다. 중앙일보는 30일 1면에 <“선거용 예산은 없다”…내년 657조 긴축살림> 제목을 달았고, 서울신문은 <尹 “재정 만능주의 배격” 총선용 퍼주기 선그어>, 세계일보는 <尹대통령 “文정부 푹 빠졌던 '재정 만능주의' 배격”> 제목의 기사를 1면에 배치했다. 조선일보는 1면에 “내년 예산 657조, 퍼주기는 끝났다”고 했다.

▲ 30일자 중앙일보 1면 기사.
▲ 30일자 한국경제 사설.

경제신문도 잇따라 '건전재정'을 반기는 기사를 냈다. 한국경제는 지난 30일 사설 <긴축의지 돋보이는 내년 예산안…건전재정 원년 삼아야>에서 “윤석열 정부의 건전재정 의지가 분명히 담겼다고 평가할 만하다”며 “부문별 지출 내역을 보면 이모저모 많이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팽창 일변도로 그간 무풍지대였던 연구개발(R&D) 예산을 5조2000억 원, 효율성 없는 보조금 사업을 3조8000억 원 삭감하는 등 총 23조원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고 했다.

매일경제도 지난 30일 <“나라 거덜 나기 직전” 긴축예산 내놓은 尹, 실행이 관건이다> 사설에서 “문재인 정부 시절 연평균 지출 증가율과 비교하면 확장재정에서 건전재정으로 바뀐 기조를 실감할 수 있다”며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긴축예산 편성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나랏빚은 1100조원에 육박하는데, 세수는 부족한 상황에서 건전재정 전환은 옳은 방향”이라고 했다.

▲ 29일 나온 기재부 보도자료. '건전재정'을 강조했다.

하지만 따져보면, 보도 분위기와 달리 재정건전성은 오히려 악화했다. 하반기 경기회복이 정부 예상보다 더뎌 세입이 더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기재부에선 '건전재정'이라고 주장하는데 사실상 확장재정이다. '관리재정수지'라는 개념을 쓰는데 이게 GDP 대비 이미 마이너스 3.9%”라며 “코로나19 이전에는 마이너스 2%를 넘긴 적이 거의 없다. 기술적으로 보면 지금은 확장재정”이라고 말했다.

50조 원 안팎의 '세수 펑크' 예상에도 유지되는 정부의 '감세 기조'가 재정 악화 원인으로 꼽힌다. 정부는 지난해 소득세, 법인세, 종합부동산세 등 각종 세금 감면 정책을 폈다. 정부는 하반기 경기가 회복할 것이라 주장했지만 기약은 없는 상태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미디어오늘에 “엄청 심각하다. 지금 한국은행에서 계속 돈을 꿔오고 있다. 거기에다 세계잉여금도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세수 펑크가 심각할 것”이라며 “지금 나오는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봤을 때 하반기 경제 상황이 크게 나아지지는 않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 31일자 한국일보 8면 기사.

예산안 발표 국면에서 이러한 상황을 지적한 언론은 소수다. 30~31일 양일 '세수 펑크'란 단어를 쓴 신문은 주요 9개 일간지 중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일보뿐이었다. 한겨레는 30일 3면 <세수 고갈에 허리띠 졸라맸지만… '건전재정' 약속도 못지켜> 기사를 냈고, <무리한 감세가 빚은 세수급감에, 상식 밖 초긴축예산> 사설에선 “지난해 단행한 감세정책에다 경기 부진이 겹쳐 세수가 급감해, 정부 재정운용 발목을 잡은 모양새”라며 “사정이 이렇다면 무리한 감세부터 철회해야 마땅하다”고 했다.

우석진 교수는 “기자들 중 재정 전문가가 많지 않기 때문에 기재부가 보도자료에 사용한 프레임이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분석적인 얘기보다 기재부가 '건전재정'이라고 하면 기사에 그대로 나오는 빈도가 높다. 실제로는 국가 채무를 늘리고 있는데 기재부가 짜놓은 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종합적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 나온 기재부의 6월 국세 수입 현황. 국세 수입이 대규모 감소했다.

지난 3월 '2024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지침'이 의결될 때도 보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1, 2월 역대 최대 규모 세수 감소로 재정에 '빨간불'이 들어왔지만 정부가 예산안 편성지침을 발표하자 대부분의 언론이 정부 발표대로 '건전재정'을 강조했다. 대부분은 이전 정부를 단순 비판하며 “무분별한 현금복지가 줄었다”고 평가했다.

[관련 기사 : '세수 펑크' 예견에도 “건전재정” 정부 입장 반복한 언론]

한편, 이번 정부의 '건전재정' 발표는 조선일보도 사설을 통해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30일 사설 <나랏빚 62조원 더 늘리는 내년 예산, 이게 무슨 '건전 재정'인가>에서 “그동안 윤 정부는 미래 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적자 국채 발행은 최대한 억제하고, 선거 매표용 돈 풀기 정책은 안 하겠다고 누누이 밝혀 왔다. 내년 예산안은 말과 행동의 괴리를 보여준다”며 “정부는 올해 경기 침체로 내년 세수가 33조 원이나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수입보다 지출이 92조 원이나 많은 적자 예산을 편성했다. 이 구멍을 메우기 위해 적자 국채를 80조 원이나 발행할 예정이다. 국가부채가 또 늘어난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와 무엇이 다르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R&D 예산 축소' '총선용 예산 배격'… 긍정적 평가 이어져

▲ 30일자 매일경제 4면 기사.

'건전재정'을 강조한 신문들 중 다수는 'R&D 예산 축소' 등 예산안 내용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내년도 정부 R&D 분야는 총 25조9000억 원으로 올해보다 5조2000억 원(16.6%) 감소할 예정이다. 1991년 이후 R&D 예산이 줄어드는 것은 처음이다. 지난 6월 윤석열 대통령은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매일경제는 30일 <나눠먹기 R&D 예산 5조 삭감… 그 돈으로 'A·B·C·D' 키운다> 기사에서 “소규모 사업에 잘게 나눠 지원했던 '모래알' R&D 예산을 수술하는 한편 실제로 산업적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에 재원을 쏟아붓겠다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라며 “R&D 예산은 2018~2022년 연평균 10.9% 불어났으나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고 했다.

한국경제도 30일 <나눠먹기 R&D·보조금 카르텔 '대수술'…23조兆 지출 구조조정> 기사에서 “내년도 예산안은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도 건전재정 기조를 뚜렷이 한 게 특징이다. 윤석열 정부는 집권 첫해 짠 올해 예산에서 문재인 정부의 확장재정에 마침표를 찍고 건전재정으로 돌아섰다”며 “일방적 삭감이 아니라 그동안 과도하게 늘어난 R&D 예산을 정상화하는 것이란 게 정부 입장”이라고 했다.

▲ 30일자 경향신문 4면 기사.

반면 경향신문은 <'예산 다이어트' 과녁된 정부 R&D…'성장동력' 위축된다> 기사에서 “당장 성과를 드러내기 힘든 '기초연구'나 '인재 육성'이 타격받을 가능성이 커 국가 미래성장동력을 위축시킬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며 “윤석열 대통령이 '카르텔'로 지목한 R&D 분야가 정부의 긴축 재정 실현을 위한 희생양이 된 셈”이라고 했다.

우석진 교수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정부는 (R&D 분야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고 하는데 도전적인 과제는 인생 걸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기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을 수밖에 없다”며 “성과가 안 나온다고 하면 안정적인 성과밖에 못하는 건데 그걸 원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필즈상을 받았던 허준이 교수도 단기적 성과를 바라보지 않고 '수학' 자체에 집중하다가 성과를 낸 건데, 이 기조라면 사람들이 3년 만에 성과낼 수 있는 논문밖에 쓰지 못한다”고 말했다.

▲ 다수 언론은 정부 발표대로 이번 예산안이 '총선용 예산'을 배격했다고 강조했다. 네이버 갈무리

총선용 예산을 '배격'했다는 표현은 어떨까. 다수 언론은 윤석열 대통령이 '매표 예산을 배격'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여기도 이견은 있다. 지역민들에 민감한 공항·도로·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올해보다 4.6% 늘어났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30일 “야당의 사과 없이는 재개할 수 없다던 양평고속도로 사업 예산을 편성하는 등 사회간접자본(SOC)예산도 늘렸는데 내년 총선을 의식한 행보로 해석된다”고 했다.

중앙일보도 사설 <총선 의식 무리한 지역 SOC 예산은 걸러내길>에서 “지난주 열렸던 예산안 당정협의 직후에 지역 SOC 사업이 무더기로 공개된 것으로 볼 때 총선용 예산이라고 볼 수밖에는 없겠다. 지역에서 요청한 대표 사업을 기재부와 협의해 내년 예산안에 반영했다고 여당 예결특위 간사도 설명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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