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섭의 MLB스코프] LA 에인절스의 '무더기 웨이버 공시' 어떻게 봐야 하나
[스포티비뉴스=이창섭 칼럼니스트] 원래 메이저리그는 트레이드 마감시한이 두 번으로 나눠져 있었다. 7월 말 논웨이버 트레이드와 8월 말 웨이버 트레이드로 구분됐다. 웨이버 트레이드로 넘어온 선수들도 포스트시즌에서 뛸 수 있었다.
마감시한의 기본적인 의미는 논웨이버 트레이드다. 별다른 제약 없이 자유롭게 선수를 이동시킬 수 있기 때문에 모든 팀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웨이버 트레이드는 과정이 조금 복잡하다. 선수를 웨이버 공시한 뒤 해당 선수를 영입하려는 의사(클레임)가 없어야 모든 팀들과 협상이 가능하다. 실제 트레이드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그리 많지 않다.
웨이버 트레이드의 역사는 2019년에 변곡점을 맞이한다. 선수협의 제안으로 웨이버 트레이드 마감시한이 사라졌다. 이제 트레이드 마감시한이 한 날로 통일되면서 각 팀들은 논웨이버 트레이드에 전력을 다했다. 여기에 와일드카드도 각 리그마다 세 장이 되면서 마감시한을 앞두고 눈치 싸움이 심해졌다.
시끌벅적했던 7월과 달리 8월은 조용히 지나가는 듯 했다. 그런데, LA 에인절스가 악역을 자처했다. 루카스 지올리토와 맷 무어, 레이날도 로페스, 헌터 렌프로, 랜달 그리칙, 도미닉 리온을 모두 웨이버 공시했다. 이 가운데 지올리토와 로페스, 그리칙, 리온은 지난 마감시한에 맞춰 데려온 선수들이다. 에인절의 파격 행보에 모두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에인절스만 선수를 내놓은 건 아니다. 뉴욕 양키스(해리슨 베이더)와 뉴욕 메츠(카를로스 카라스코) 시카고 화이트삭스(마이크 클레빈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호세 시스네로)도 웨이버 공시를 발표했다. 그러나 올해 에인절스처럼 극단적으로 선수들을 정리하는 건 지극히 이례적이다. 현지 유력 매체 '디 애슬레틱'은 이에 대해 'exploiting a rule(규정을 부당하게 이용하다)'이라고 표현했다.
에인절스가 위반한 규정은 없다. 포스트시즌 경쟁에서 탈락한 팀들은 연봉 절감을 위해 로스터를 재정비한다. 에인절스도 선수들의 남은 연봉을 넘겨주면서 사치세를 피하려는 목적이다. 참고로, 에인절스가 웨이버 공시한 여섯 명은 모두 이번 시즌 이후 FA가 된다.
남은 연봉이 가장 많은 선수는 렌프로다. 에인절스는 렌프로에게 남은 시즌 약 200만 달러를 줘야 한다. LA 지역 매체 '오랜지 카운티 레지스터'는, 에인절스가 렌프로를 비롯해 여섯 명을 모두 내보내면 대략 740만 달러를 아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부분만 보면 에인절스의 결단은 타당하게 보인다. 포스트시즌 진출이 힘들어진 상황에서 연봉 낭비라도 막으려는 심산이다. 구단 운영은 비즈니스의 영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할 수 있다. 지올리토도 "결국 비즈니스"라는 말을 했다.
문제는 신뢰를 잃었다. 구단 운영은 선수가 기반이다. 선수도 소속 구단이 필요하지만, 선수가 없는 구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에인절스의 선택은 얼핏 보면 규정을 이용한 묘수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른 팀들도 이 방식을 모를 리 없다. 알면서도 하지 않는 건 분명 이유가 있다. 상도덕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횡포로 비쳐지면 구단 이미지에 좋을 게 없다. 선수들이 기피하는 구단은, 곧 구단의 가치 하락으로 직결된다.
웨이버 선수들은 올해 성적의 역순대로 우선권을 차지한다. 전체 최하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가 1순위, 전체 1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는 가장 후순위다. 성적이 동률이면 지난해 성적을 따진다. 당연히 올해 포스트시즌 진출이 어려워진 팀들은 웨이버 선수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굳이 데려와서 팀 연봉을 늘리려는 구단은 없다.
그러면 관심을 보일 팀은 14순위 마이애미 말린스부터 시작된다. 15순위 신시내티 레즈와 16순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18순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0순위 시카고 컵스는 현재 내셔널리그 와일드카드를 두고 다투는 팀들이다. 이들은 전력 보강을 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를 통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에인절스는 선수 영입에 박차를 가하면서 포스트시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많은 사람들이 무모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필승 각오를 다지는 팀을 무작정 비난할 수도 없었다. 야심찬 항해는 비록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이 시도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스포츠 정신'을 논할 자격이 없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번 기행으로 에인절스의 도전은 허무함만이 남게 됐다. 남은 선수들도 동기부여를 잃었다. 패배보다 나쁜, 패배감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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