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 규명에 바친 40년…니시자키 “자국민 학살 추모않는 정부, 신뢰할 수 없어”[간토대학살 100년]

박용하 기자 2023. 8. 3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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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일본 시민단체 ‘호센카’(봉선화)의 니시자키 마사오 이사(64)가 간토대학살 진상규명을 위해 일해온 기간이다. 그가 생면부지의 조선인들을 위한 활동에 투신하게 된 것은 대학교 4학년이었던 1982년 ‘도쿄 아라카와 강변에 묻혀 있는 대학살 희생자들의 유골을 발굴해보자’는 선배의 제안이 계기가 됐다. 어린시절 자주 놀았던 아름다운 강변이 조선인들에 대한 끔찍한 학살이 자행된 곳이었다는 사실은 그의 삶을 바꿔놓을 정도로 충격이었다.

그 뒤 니시자키 이사는 머리에 백발이 내려앉은 지금까지 대학살의 흔적을 좇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활동에 투신해왔다. 추도비 건립 사업에 전념하기 위해 중학교 교사직까지 그만두고, 극우단체의 추도비 공격을 우려해 그 옆에서 7년 넘게 생활하기도 했다. 2016년에는 대학살에 대한 1100건의 증언을 모은 자료집을 펴내기도 했다.

간토대학살 100주년을 앞둔 지난 29일, 경향신문은 e메일을 통해 니시자키 이사의 삶과 진상 규명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었다. 그는 책임을 회피하는 일본 정부를 움직이려면 일본의 젊은 세대에게 역사의 진실을 알리는 노력이 줄기차게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이 학살당한 사건을 두고도 추모하지 않는 한국 정부를 향해선 날카로운 조언을 잊지 않았다. 아래는 니시자키 이사와의 인터뷰 전문.

- 40년 이상 간토대학살과 관련된 활동을 해왔다. 왜 이 문제에 집중하게 됐나.

“이 사건은 재난 가운데 많은 사람의 목숨을 일방적으로 앗아간 끔찍한 사건이다. 당시 화재가 심했던 도쿄 다이토구 아사쿠나나 쓰키시마 등에서는 조선인을 불태워 살해하기도 했고, 고토구 오지마 등에서는 조선인 여성의 음부에 죽창을 찌르는 잔혹한 사건도 있었다. 이처럼 많은 사람의 목숨을 일방적으로 앗아간 사건인데도 일본에선 계속 숨겨져 왔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인데도 나 역시 이를 전혀 몰랐었다. 그 문제를 알았을 때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고, 진실을 찾아볼 수 밖에 없었다.”

- 진상규명 활동 중 가장 어려웠던 점은.

“대지진 당시 일본 정부에 의해 사건이 철저히 은폐됐기 때문에, 남겨진 공적 사료가 거의 없다. 이에 현재까지도 희생자 수, 희생자 성명, 유골의 행방 등 중요한 정보를 거의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나 역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실을 알고 싶어도, 공적 사료가 남아 있지 않거나 숨겨져 있다는 점이 가장 힘들었다. 민간 사료에 의한 연구·조사에 한계가 있다.”

- 일본 정부는 대학살에 관한 증거나 자료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거짓말이다. 학살에 관한 증거나 사료들이 정부기관인 방위성의 방위연구소나 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 등에 보존돼 있다는 사실이 그간 밝혀진 바 있다. 분명히 있음에도 공개하지 않는 것이다. 증거나 자료가 없다는 정부의 주장은 허위다.”

- 자료가 공개되면 어떤 점들을 밝힐 수 있을까.

“아직 공개되지 않은 관계 사료가 있을 것이기에 그것을 일본 정부가 조사해서 공개하면 희생자 수나 성명, 유골의 행방 등이 일정 정도 밝혀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육친 소식을 궁금해하는 유족들이 아직도 있다. 적어도 그들은 이같은 사실을 알 권리가 있다.”

- 한국 정부의 진상규명 노력은 충분하다고 보나.

“내가 그 문제에 대해 평가할 입장은 아니지만, 함께 활동하고 있는 재일교포들은 분명 하고싶은 말이 많을 것이다. 일반론으로 말한다면, 자국민이 학살당한 사건을 조사하고 추모하지 않는 정부는 신뢰할 수 없다고 본다.”

- 올해는 대지진 100주년이고 한·일 관계도 개선됐다. 진상규명 협력도 가능할까.

“한·일 간의 협력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아직까지도 학살 책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이기에 진상 규명에 협조할 리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민간 차원의 다양한 협력은 지금도 이뤄지고 있다.”

- 진상규명을 위해 일본 정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할까.

“최대한 많은 일본 국민들이 정부를 압박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100년 전의 일이기도 하고 학살 실태를 알지 못하는 일본인도 많다. 국민적 이해를 얻기까지는 아직 멀었다.”

- 많은 일본인들이 이 문제를 알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동안 일본 정부가 의도적으로 간토대학살 문제를 알리지 못하도록 해왔기에, 국민들도 이 문제를 모를 수밖에 없다. 교과서 등의 기술을 봐도 간토대학살에 관한 기술은 미흡하고 학생들은 진실을 알기 힘든 상황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해 ‘조선인이 실제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고, 자경단이 죽인 것은 정당방위였다’는 일부 우익 누리꾼들의 논조가 힘을 얻고 있다.”

- 간토대학살은 그간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등의 문제보다 관심이 적은 측면도 있었다.

“그 구체적인 이유는 양국 정부에 물어봐야 할 것이다. 다만 내 나름대로 생각하면 간토대학살은 일제강점기보다 이른 시기에 간토 지방에 한정해서 일어난 사건이었기에 한반도까지 정보가 전해지기 힘들었던 것은 아닐까 한다. 해방 후를 포함해 한국에선 거의 학살 사건에 관한 사료를 찾아볼 수 없고, 연구도 진행되지 않았다. 기본적 사실에 대한 규명이 이뤄지지 않았기에 한국 정부도 대응하기 힘들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반면 일본 정부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책임을 다할 의사가 없기에 사건의 은폐를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재일 한국인들에 대한 편견과 폭력은 현재 어떤 상황인가.

“현재도 증오 시위나 헤이트 스피치는 태연히 이뤄지고 있다. 단순한 협박에 그치지 않는다. 교토 우토로 지구의 방화도 있지 않았나. 최근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이 생겼지만 벌칙 규정이 없어 실효성이 없다. 집권 여당의 태도도 문제다. 일본 사회가 혐오 발언을 규제하는 노력을 해왔다지만, 여당은 줄곧 그 반대의 움직임을 보여왔다. 이래서야 효과가 날 리가 없다.”

- 향후 활동에선 어떤 측면에 중점을 둘 생각인가.

“역시나 공공기관(일본 정부나 도쿄도 등)이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조사해 관련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일이기에, 우리 같은 민간 시민단체들이 줄기차게 활동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얼마나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지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 이를 위해 한국사회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나.

“나는 일본인이기에 일본사회를 향해 진상 규명에 대한 요청을 계속해 나갈 뿐이며, 특별히 한국사회에 요구하고 싶은 것은 없다. 다만 함께 활동하고 있는 재일 한국인 2세들은 한국 정부 및 한국 사회가 재일교포 문제에 관심을 갖고, 간토대학살과 관련해서도 깊이 알기를 바라고 있다.”


☞ [간토대학살 100년] 정부가 손놓은 진상규명, 시민사회 몫으로… 아이들 작문까지 살피며 흔적 좇아
     https://www.khan.co.kr/world/world-general/article/202308311523001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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