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메시지 해독하는 교수, 챗GPT에 "4기 대장암 완치" 물은 까닭
[편집자주] 머니투데이가 아직 젊지만 훗날 '명의(名醫)'로 성장할 가능성이 큰 차세대 의료진을 소개합니다. 의료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질환과 치료 방법 등을 연구하며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하는 젊은 의사들에 주목하겠습니다.
대장암은 폐암 등 다른 암종과 달리 항암 치료가 잘 듣지 않는다. 표적·면역항암제 등 최신 항암 요법이 말기 대장암에선 빛을 보지 못했다. 김한상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교수가 챗GPT에까지 4기 대장암의 완치 가능성을 물어본 이유다.
김 교수는 '의사과학자'다. 의사로서 15년간, 과학자로서 5년간 교육받았다. 20년간 의학의 언어와 과학의 언어를 익혔다. 이제 양쪽의 언어를 갖고 아직도 인류가 풀지 못한 암 전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섰다.
그는 '엑소좀(exosome) 암전이 연구실'이라는 랩실을 운영한다. 김 교수는 "엑소좀이란 암에서 분비하는 메시지다"고 설명했다. 암의 메시지를 해석해 암 전이 초기 신호를 발견하고, 어떻게 하면 극복할지 연구하는 게 그의 일이다. "암호 해독이라고 표현해도 좋다"고 김 교수는 덧붙였다.
엑소좀 단백질 조성을 규명하는 연구로 그는 세계적인 생명과학 학술지 '셀'(CELL)에 공동 1저자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는 엑소좀을 해석할 방법이 없었는데 생명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나노 수준에서 메시지를 해독할 수 있게 됐다"며 "대장암에서도 암이 분비하는 메시지를 해석해 어떻게 치료에 활용할 수 있을지 동물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엑소좀을 이용한 대장암 암 전이 극복을 두고 김 교수는 "제 인생 10~20년 프로젝트이다"고 말했다. 그만큼 대장암에서의 항암 치료 발전은 더디다.
4기 대장암 환자 생존기간은 약 30개월이다. 30년 전에는 1년에 불과했다. 12개월에서 30개월, 생존기간이 1년 반 늘기까지 30년이 걸렸다. 김 교수는 "대장암 약 하나 나올 때마다 환자 생존기간이 3개월씩 늘었다"며 "그런 식으로 30년간 6~7가지 치료법이 나왔다"고 말했다.
대장암은 표적항암제가 가장 먼저 개발된 암종 중 하나다. 이후에 등장한 표적치료제가 폐암과 유방암 등에서 활약했지만 대장암에선 아니었다. 3세대 항암제로 불리는 면역항암제도 대장암에선 빛을 못 봤다. "아직도 대장암의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다"고 김 교수가 강조한 이유다.
김 교수는 대장암의 항암제 개발이 얼마나 더딘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최근 '란셋'(The Lancet)에 발표된 연구를 소개했다. 란셋은 가장 오래된 학술지 중 하나로 현재까지 가장 저명한 의학 저널이다.
해당 연구는 다케다제약의 '프루퀸티닙'을 소개했다. 대장암 표적치료제를 경구용, 즉 먹는 알약으로 개발한 것이다.
김 교수는 "이른바 '란셋'에 나올 정도의 연구라면 보통은 의학을 엄청나게 바꾸는, 경천동지할 만한 것"이라며 "먹는 제형으로 바꿨다는 것만으로 란셋에 실렸다는 건 그만큼 대장암에서 쓸 약이 없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폐암이나 유방암 약이었으면 이 정도 내용으로는 실릴 수 없다"고 덧붙였다.
챗GPT에까지 물었던 4기 대장암의 완치는 가능할까. 그는 "관리가 어려운 병에서 관리가 되는 병으로, 조절되지 않는 질병에서 조절이 되는 질병으로는 될 수가 있다"고 말했다.
'당뇨'를 예시로 들었다. 김 교수는 "당뇨로 사망하는 분이 요즘도 많지만, 당뇨 관리가 어렵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4기 대장암의 장기간 관리가 가능해질 때 완치 이야기도 꺼낼 수 있다"고 했다.
연구만큼이나 그가 신경 쓰는 건 환자의 진료다. '책 없이 의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미지의 바다를 항해하지만, 환자 없이 의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바다에 전혀 나가지 않는 것이다.'(He who studies medicine without books sails an uncharted sea, but he who studies medicine without patients does not go to sea at all.)라는 현대 의학의 아버지 윌리엄 오슬러의 경구는 김 교수의 진료 철학이다. 김 교수는 "모든 답은 결국 환자에 있다"며 "환자의 얘기나 증상 호소에서 포인트가 될 만한 걸 잘 캐치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가 암 환자들에게 강조한 건 자기관리, 특히 '운동'이었다. 대장암 4기임에도 30개월을 훌쩍 넘어 6년을 살다 최근에 돌아가신 환자 사례를 들었다. 대장암으로만 10년을 투병했는데 운동을 특히 열심히 했다고 한다.
김 교수는 "저도 나름대로 치료를 열심히 했다면, 그분도 자기 관리를 정말 열심히 하셨다"며 "의사와 환자 서로가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각자가 노력해야 할 영역이 있다. 가끔 치료제를 공부해서 찾아오는 환자분이 있으시지만 치료와 처방은 저의 영역이다"며 "환자가 열심히 해야 할 영역이 따로 있는데 바로 운동과 생활 습관 개선이다"고 강조했다.
의사과학자로서 김 교수의 포부는 크다. 임상 지침(가이드라인)을 따르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만드는 게 목표다. "가이드라인을 따라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바꾸는 일은 소수만 할 수 있지 않으냐"고 그는 말했다.
자신이 개발한 치료·진단법을 직접 임상 시험까지 끌고 가고 싶다고도 했다. 곧 그의 노력이 꽃피는 때가 온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는 돈, 연구비를 끌어오는 그런 시기였다면 다음에 올 5년은 그런 연구의 결과가 나오는 시기다. 스스로도 조바심이 난다"고 덧붙였다.
[프로필]김한상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교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세브란스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를 수료했다. 동대학에서 의과학자 양성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내과학교실 종양내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2022년 범석의학상을 수상했다. 2020년 세계적인 학술지 셀(Cell)에 게재된 '세포밖 소포체 및 입자 단백체 분석을 통한 종양 바이오마커 탐색 연구'에서 공동 제1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창섭 기자 thrivingfire2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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