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에너지 취약계층 위한 ‘한국에너지재단’ 공공기관 해제 움직임

조해람 기자 2023. 8. 3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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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계층 에너지 개선 지원 ‘한국에너지재단’
산업부, 회계법인에 “공공기관 해제 가능할 듯”
복지후퇴·민영화 우려…담당자 “확정 아니다”
폭염 특보가 발령된 7월2일 서울 종로구의 쪽방촌에서 한 주민이 더위를 식히기 위해 현관문을 열어 놓은 채 생활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정부가 취약계층 에너지 복지사업 담당 기관인 한국에너지재단을 공공기관에서 해제하려는 정황이 포착돼 노조가 반발하고 있다. 재단 노조는 공공기관 해제는 민영화로 가는 길이라며 취약계층 복지 후퇴를 우려했다. 소관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운영 정상화를 추진하는 것으로, 공공기관 해제나 민영화 등 계획은 확정된 바 없다”고 해명했다.

31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산업부는 오는 9월4일부터 회계법인과 함께 산하 기타공공기관인 한국에너지재단 조직 진단에 들어간다. 회계법인은 지난 22일 한국에너지재단에 재무제표와 자산명세서, 매출·투자·인력·자금계획, 예결산서 등 자료 전반을 요구했다.

산업부는 재정 운영 어려움을 이유로 한국에너지재단의 조직 진단을 하면서 회계법인에 재단을 공공기관에서 해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산업부 담당자가 회계법인 측에 보낸 e메일을 보면 담당자는 “재단은 출연금 운영수익이 매년 줄고 있는데도 조직운영이 방만하다는 문제에 처해 있다”며 “정부사업의 집행체계를 바꿔 재단이 직접 집행하던 1000억원의 예산을 에너지공단 등 다른 기관이 집행하도록 하고, 재단은 엔지니어링과 민원대응만 따로 수탁하게 하면 재단에 지급하는 정부 예산이 큰 폭으로 줄어 공공기관 해제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노조 측은 해당 메일이 조직진단을 위탁받아 수행하는 회계법인에게 일종의 ‘지침’처럼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 측은 한국에너지재단이 민영화되면 취약계층 에너지 복지 사업의 공공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2006년 민간재단으로 출범한 한국에너지재단은 2018년 1월부터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됐다.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단열·창호 설치공사, 냉난방기 보급·교체, LED 교체 등 에너지 복지 사업을 정부로부터 위탁받아 수행한다. 지난해 약 60만 가구의 에너지효율개선을 진행했다. 사업규모는 2007년 100억원에서 올해 996억원으로 커졌다.

한국에너지재단의 ‘2023년 저소득층 단열·창호·보일러 무상지원’ 안내 포스터. 한국에너지재단 제공

조성만 한국노총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 공공산업희망노조 한국에너지재단지부장은 “민간이 사업을 하게 되면 시스템 구축도 새로 해야 해 비용이 더 들고, 수익성이 안 나오면 사업을 접을 수도 있다”며 “현 정부는 이 사업을 정부 기조인 ‘탄소배출 저감사업’으로 보고 있는데, 사업은 정부 기조와 맞는데도 수행 기관은 날리려는 게 모순”이라고 했다.

노조 측은 재단 재정이 부족한 것도 정부의 운영비 지원이 적은 탓이라고 했다. 현재 한국에너지재단은 정부로부터 에너지효율개선사업을 직접 수행하는 인력에 대한 인건비만 지원받는다. 기획·경영지원 등 기관 운영비는 자체 조달한다.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관련 법규가 미비한 탓이다. 1000억원 상당의 예산은 정부·지방자치단체의 위탁사업을 집행하는 비용이다. 공공기관 지정 후 알리오 공시 등 공공기관 필수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 늘어 인건비 부담이 더 커졌다는 게 노조의 설명이다. 한국에너지재단은 그간 이 운영비를 재단 출범 시 출연금 219억원에서 충당해 왔는데, 2024년이면 이 출연금이 고갈된다.

국회 소관 상임위도 해당 사업의 공공성을 인정하며 정부 재정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상헌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지난 3월 한국에너지재단의 설립근거와 재정지원 근거를 마련하는 에너지법 개정안(이용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안) 검토보고서에서 “개정안은 재단의 안정적 운영과 에너지 복지 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에너지 이용 소외계층의 복리 향상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1월26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의 계단이 얼어붙어 있다. 연합뉴스

한국에너지재단이 ‘공공부문 민영화’의 첫 사례가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올해 초 4대 과학기술원 공공기관 해제를 제외하면 공공성 사업을 진행하는 공공기관이 지정해제된 적은 아직 없다. 정태호 공공산업희망노조 위원장은 “과기원 지정해제는 정부 예산 투입과 직접통제가 연구·업무에 비효율적이라 해제한 것으로, 취약계층 복지사업을 담당하는 기관 해제와 다르다”고 했다.

조 지부장은 “재단의 기관 안정성 문제로 연 퇴사율이 10%를 초과하고 있으며 채용도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지 않아 기후위기에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정부사업 운영에 차질이 우려된다”며 “에너지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기타공공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유지하고 지속적인 에너지복지 사업 추진을 위해 정부의 안정적 재정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의원실 관계자는 “정책 판단의 영역이겠지만, 이미 담당 업무가 많은 에너지공단 등에 업무를 이관하는 게 바람직할지는 의문”이라며 “이미 조직이 존재하고 노하우도 축적된 재단에 취약계층 복지사업을 맡기고 정부가 운영을 제대로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산업부 담당자는 “한국에너지재단 경영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고, 재단 스스로도 자구책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경영 정상화 방안을 찾아야 한다면 다양한 방안을 찾아봐야 한다”고 했다. 공공기관 해제 및 민영화 진행 여부를 두고는 “결정된 바가 없으며, 공공기관 지정과 해제는 수시로 이뤄지고 있다”며 “운영 정상화를 추진하는 것”이라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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