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주 잔혹史 반복…"일단 올라타" 한방 노리다 또 당했다

김소연 기자 2023. 8. 3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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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과학테마주 '주의보']③ 코스닥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테마주
[편집자주] 국내 증시의 테마주 열풍이 기초과학계로 옮겨붙었다. 'LK-99'로 인해 불어닥친 초전도체 관련주 투자 광풍이 꿈의 신소재 '맥신(MXene)'에 이어 미래기술 양자로 번졌다. 급등락하는 주가에 투자자들은 혼란스럽지만, 흔한 일상이었던 연구성과 발표가 테마주의 재료로 악용되는 기이한 경험에 과학계의 불안감도 커지는 표정이다. 최근 들어 반복되는 과학 테마주 열풍의 현상과 배경, 그리고 과학기술 투자를 바라보는 연구자들의 소회와 제언을 살펴본다.

2차전지, 초전도체, 맥신에 이르기까지 최근 실체 없는 과학 테마주들이 급등락을 반복하면서 테마주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개미들의 계좌가 널을 뛴다. 그러나 과거 역사가 보여주듯, 불기둥을 내뿜을 때는 금세 부자가 될 것 같다가도 자칫 매도 타이밍을 놓치면 빠져나가지 못하고 계좌에 시퍼런 멍만 남기는 것이 테마주들이다. 감독 당국도 테마주 투자에 유의하라고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테마주 인기는 1996년 코스닥 시장이 문을 연 직후인 1999년부터 시작돼 시장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우량 대기업의 집합소인 코스피 시장과 달리, 코스닥 시장은 기술력이 있는 중소 벤처기업들의 리그라는 정체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태초부터 테마주들과는 '불가분 불가원'의 관계일 수 밖에 없다.

코스닥 지수, 2900이었다고? IT 버블 속 "그땐 그랬지"
코스닥 시장 개화 후 첫 테마주는 IT벤처다. 'IT 버블'로도 통하는데, 1995년부터 2001년 인터넷 산업 성장시기 글로벌 IT기업들이 인기를 끌면서 한국에도 닷컴 열풍이 불었다.

미국 닷컴버블의 시작이 '넷스케이프'였다면 국내는 1998년 10월 상장한 '골드뱅크커뮤니케이션즈(이하 골드뱅크)'가 있다. 당시 인터넷 광고를 보면 현금을 준다는 사업 모델을 내세웠는데 이것이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듬해 2월에 15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며 시장의 이목을 끌었다. 상장후 시초가 800원이었던 주가가 이듬해 3만원대까지 뛰자, 주가 급등 배후를 밝혀야 한다며 국정감사 대상이 되는 웃지못할 일도 있었다.
이어 1999년 중순 상장한 새롬기술(현 솔본)이 상장 6개월만에 150배 올랐고 장미디어, 드림라인, 한글과컴퓨터, 다음커뮤니케이션(카카오에 합병), 네이버컴(현 NAVER) 등의 주가가 줄줄이 급등했다. IT버블로 인해 다음, 네이버, 한게임, 엔씨소프트 등 걸출한 기업들이 배출되기도 했지만, 당시 인터넷이나 IT기업이 연상되는 이름만 달면 주가가 미친듯 급등하면서 많은 피해자를 양산했다.

한때 PER(주가수익비율) 9999배에 달했던 골드뱅크는 11년만인 2009년 상장 폐지됐다. 증시에 남아있는 솔본의 주가도 2000년 3월 최고가인 17만9889원(수정주가 기준)을 찍은후 현재는 4000원대까지 떨어져 회복이 요원하다. 덩달아 급등했던 코스닥 지수도 같은 시기 최고점인 2925.50을 찍은후 거품이 급격히 꺼지면서 그해 말 520선까지 떨어졌다. 아직 1000선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진짜 원조는 '만리장성'에? 황우석이 이끈 줄기세포 열풍도
베이징 팔달령 만리장성 /사진=이지혜
코스닥 시장에 국한하지 않고 테마주 원조를 찾는다면 1987년으로 거슬러 간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가 북방외교에 공을 들였고, 중국 관계 개선 기대감이 커지는 와중에 '만리장성' 테마가 등장했다. 중국 정부가 만리장성에 바람막이를 설치하기로 했고 대한알루미늄이 알루미늄 창호를 전량 납품하기로 했다는 소문에 주가가 급등했다. 공사 노동자들에게 고무신을 지급한다는 소식에 태화도 올랐다. 인부들의 간식과 소화제를 대는 국내 업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삼립식품(현 SPC삼립)과 한독약품(현 한독)도 급등했다. 대한알루미늄과 태화는 이후 증시에서 퇴출당했다.

과학 테마주의 원조격을 찾는다면 2004년 황우석 테마주를 꼽을 수 있다. 서울대 수의대 황우석 교수와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사람 난자를 이용해 체세포를 복제,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었다고 밝히면서 관련주가 급등하기 시작했다. 대표 테마주는 홈캐스트다. 홈캐스트는 황우석 박사가 대표로 있는 바이오회사 '에이치바이온'이 최대주주여서 테마주에 꼽혔다. 황 교수가 줄기세포 복제에 성공했다는 소식에 홈캐스트의 주가는 10배 이상 치솟았다. 당시 주가 급등 배경에는 주가조작 세력이 있었고, 이들은 모두 실형을 선고받은 상태다. 홈캐스트의 주가는 한때 3만원대까지 치솟았지만 현재 4000원대로 급락했다.

황우석 후배 격인 줄기세포 테마도 2011년 증시를 달궜다. 메디포스트, 알앤엘바이오, 엔케이바이오, 젬백스앤카엘(현 젬백스), 이노셀(현 파미셀), 조아제약, 오리엔트바이오, 차바이오앤디오스텍(현 차바이오텍) 등이다. 이중 알앤엘바이오, 엔케이바이오는 상장폐지됐다.
뜬구름 잡는 테마주..'폭탄돌리기' 조심해야

2013년에는 3D프린터가 과학 테마주로 바통을 넘겨받았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래 유망 산업으로 3D프린터를 언급한 것이 계기가 돼 TPC, 코렌텍, 세중, 신도리코 등이 급등했다. 이들 모두 2013년 최고가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2014년에는 박근혜 정부의 핵심 정책인 창조경제의 일환으로 사물인터넷이 주목을 받으면서 에스넷, 기가레인, 유비쿼스 등이 주목받았고 그해 말에는 홀로그램주까지 가세해 지엠피, 한국큐빅 등이 급등했다.

2014년 서울 동대문구 롯데 피트인 9층에 열었던 홀로그램 콘서트 홀 '클라이브'.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가장 최근인 2018년에는 비트코인 투자 열풍 속 암호화폐 관련주가 모조리 급등하기도 했다. 비덴트, 티사이언티픽, 위지트, 버킷스튜디오 등이 모두 2018년 역대 최고가를 찍은 후 주가가 급락하며 제 가치를 찾아갔다.

테마주에 잘 올라타면 며칠만에 계좌 원금이 몇배로 불어나는 마법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에 한번 재미를 본 개인투자자들은 쉽게 테마주에 중독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테마주 투자는 '폭탄 돌리기'와 같아서 급락할 때는 손실이 걷잡을수 없이 커지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 금융당국도 최근 테마주 난립과 관련해 불공정거래 행위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시장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잠깐만 수익보고 나오면 된다는 심리에 테마주 투자에 뛰어드는 개인들이 많다"며 "기업가치와 본질적으로 관련이 없는 이슈로 급등했다면 결국 주가는 제 가치를 찾아 내려오기 때문에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소연 기자 nicks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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