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 허웅, 부친과 동생 이상의 커리어 남길까?
KCC 이지스가 전북 전주에서 부산으로 연고지를 이전한 가운데 허씨 삼부자 스토리가 재조명되고 있다. 이번 KCC는 3번째 부산 연고 농구팀이다. 기아 엔터프라이즈가 1997년에서~2001년까지 있었고 이후 kt가 2003년부터 2021년까지 부산 농구의 맥을 이었다. 현재 기아는 울산으로, kt는 수원으로 연고지를 옮긴 상태다. 잠깐씩의 공백기는 있었지만 꾸준하게 타지역팀이 넘어와 빈자리를 채우고있는 모습이다.
재미있는 것은 딱히 연관성이 없을 것 같은 해당 3팀에 숨어있는 흥미로운 스토리다. 다름아닌 허씨 삼부자와의 연관성이 바로 그것이다. 부친 허재(58‧188.3cm)는 기아의 레전드다. 프로생활의 마지막을 원주 TG삼보(현 DB)에서 보낸 것을 비롯 감독으로서 전주 KCC를 이끈 영향으로 원주, 전주색도 강하지만 선수 허재의 전성기는 기아시절이었다고 보는게 맞다.
한기범, 김유택, 강동희 등과 함께 했던 실업 기아자동차 시절이 황금기였으며 이후 프로화와 함께 기아가 부산 연고팀으로 들어오면서 자연스레 기아 엔터프라이즈 주축 선수로 뛰었다. 이후 kt에서는 차남 허훈(28‧180cm)이 프랜차이즈 스타로 명성을 떨친바 있다. 2017년 신인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kt에 지명된 이후 팀을 대표하는 간판으로 활약중이다.
허재는 부산 기아에서 짧지만 굵은 임팩트를 남기고 떠났다. 프로 원년 기아는 부산팀으로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당시 허재는 웃지못했다. 팀은 우승했지만 본인은 에이스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이유가 크다. 실업 시절부터 허재는 실력은 최고였지만 크고 작은 사고를 치며 당시 최인선 감독의 속을 적지않게 썩였다.
기아자동차 때는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악동 짓을 해도 코트에서의 영향력은 대체불가였기 때문이다. 프로 원년에는 달랐다. 허재없이도 기아는 충분히 강했다. 클리프 리드, 로버트 월커슨의 외국인 트윈타워가 골밑을 든든하게 지켜줬고 스윙맨 김영만이 차세대 에이스로서 막 전성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들을 지휘하는 것은 노련한 퓨어 포인트가드 강동희였다.
허재를 어르고 달래지않아도 우승이 가능했고 최감독은 실제로 이를 현실로 옮겼다. 허재는 자존심이 상했고 트레이드를 요청하며 새로운 팀에서의 재기를 꿈꾼다. 보통 책임감없는 선수같은 경우 트레이드가 성사되기까지 태업을 하거나 돌발행동을 반복하기 일쑤다. 허재는 달랐다.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고 다른 팀으로 가기로 마음먹는다.
이를 입증하듯 두 번째 시즌이었던 1997~98시즌 플레이오프와 챔피언 결정전에서 제대로 사고를 친다. 당시 기아는 주전 센터 저스틴 피닉스의 태업으로 인해 외국인 선수를 클리프 리드 한명 밖에 쓸수 없던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플레이오프에서 승승장구를 거듭한데는 허재가 외국인선수급 활약을 했던 영향이 컸다.
내외곽을 오가며 돌파, 미드레인지, 3점슛으로 상대 수비진을 폭격했고 기가막힌 타이밍에서 패스를 빼주며 동료의 득점을 도왔다. 버나드 블런트 등 외국인가드와의 맞대결에서도 전혀 밀리지않았다. 그리고 맞이한 챔피언결정전, 대부분 전문가들은 현대(현 KCC)의 우위를 점쳤다. 아무리 허재가 절정의 컨디션을 보였다해도 전성기가 저물어가던 상태였고 그로인해 체력적인 문제가 언제 터질지 몰랐다.
반면 상대팀 현대는 한창 물이 오른 '이조추 트리오'에 조니 맥도웰, 제이 웹의 외인 트윈타워가 건재했다. 노장 중심의 기아가 외인 센터가 없는 상태로 최강 전력의 현대에 맞서기에는 여러모로 불리해보였다. 워낙 전력차가 컸던지라 일방적인 시리즈가 될 것이다는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기아는 아쉽게 패하기는 했으나 7차전까지 가는 대혈전을 펼치며 현대를 턱밑까지 위협했다. 그러한 배경에는 노장 허재가 있었다. 허재는 플레이오프 들어 이를 악물었고 외인 포함 실질적 에이스로 팀을 이끌었다. 시리즈를 치르면서 오른손이 골절됐고, 발목과 허벅지에도 부상을 당했다.
5차전에서는 맥도웰의 팔꿈치에 맞아 눈썹 부위가 찢어지는 등 말 그대로 만신창이가 됐다. 그러나 허재는 간단한 지혈만 마치고 코트에 나서 팀의 승리를 이끄는 등 전천후로 맹활약을 펼쳤다. 현대의 두 외국인 사이를 뚫고 득점을 성공시키는가하면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한 패싱플레이를 통해 팀 전체를 이끌었다. 그 결과 준 우승팀 선수로는 처음으로 챔피언 결정전 MVP에 오르는 위엄을 토했다. 지금까지도 부산 농구의 명장면하면 빠지지않고 언급되고 있다.
이후 ‘조선의 슈터’ 조성민이 kt소속으로 부산 농구를 대표해서 이름을 떨쳤으며 그 뒤를 이은 선수가 바로 허재의 둘째 아들 허훈이다. 신장은 크지않지만 탄탄한 웨이트를 갖췄으며 빼어난 운동능력과 다양한 테크닉을 앞세워 듀얼가드로서 리그를 호령하고 있다. 어지간한 2~3번 에이스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의 폭발적 득점력에 가드로서의 시야, 패싱능력도 갈수록 성장하고 있다는 평가다.
현재는 김선형, 이정현 등과 함께 리그를 대표하는 특급 1번으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2경기 연속 30득점 이상, 9개 연속 3점슛 성공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번 발동이 걸리면 상대 수비진이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kt가 부산을 떠났음에도 적지않은 부산팬들의 응원을 받고있는 배경에는 원클럽맨 허훈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kt의 수원행으로 부산과 허씨 부자의 인연은 더 이상 없을 듯 싶었지만 이번에는 장남 허웅(30‧183.5cm)이 왔다. 허웅은 자유계약을 통해 KCC로 이적해 이제 막 한시즌을 뛰었을 뿐이지만 흡사 간판 선수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팀내 송교창(전역 예정), 최준용, 이승현 등 쟁쟁한 스타플레이어들이 있음에도 전혀 밀리지않는 존재감을 과시중이다. 전국구 인기스타이자 덕아웃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이유가 크다.
부산 농구는 기아, kt같은 강팀이 거쳐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번 밖에 우승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강력한 우승후보 KCC가 새로이 부산항에 정박했다. 멤버구성상 그 어느 때보다도 우승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부친 허재는 엄청난 임팩트는 보여줬지만 본인이 주축이 되어 부산팀을 우승으로 이끌지는 못했다. 동생 허훈도 마찬가지다. 이를 허웅이 해낼 수 있다면 나름대로 이채로운 스토리가 만들어질 것이 분명하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KBL 제공, 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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