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6.용인 백남준아트센터

경기일보 2023. 8. 31.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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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시 기흥읍 상갈리 야트막한 언덕에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예술혼이 살아 숨 쉬고 있는 백남준아트센터(관장 김성은)가 있다. 그랜드피아노를 닮은 이 건축물은 백남준(1932~2006)의 실험정신을 잘 보여준다. 건물을 감싸고 있는 검은 외벽은 백남준이 작품의 소재로 사용하던 TV 화면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이다. 2001년 경기도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건립 부지를 확정했을 때 백남준은 토지계획도에 ‘백남준 오래 사는 집’이라고 서명했다.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백남준미술관 건립추진위원회’를 발족해 뉴욕 브룸가의 작업실 백남준스튜디오의 소장품 67점과 비디오 아카이브 2천285점을 확보했다. 백남준아트센터는 2003년 430여명이 참여한 국제현상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한 독일 건축가 키르스텐 쉬멜과 마리나 스탄코비치가 함께 설계한 작품으로 2008년에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과 대한민국 토목건축기술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10월 백남준아트센터를 개관하고 이를 기념하는 페스티벌 ‘나우 점프’를 개최했다. 백남준이 직접 이름을 붙인 백남준아트센터는 국내 최초의 미디어 아트 전문 공공미술관답게 활기찬 행보를 시작한다. ‘작가들과 함께 바꾸는 미술관’을 지향하는 백남준아트센터는 ‘창작의 기운으로, 미술관을 생동하게’를 핵심가치로 삼고 있다.

백남준아트센터 전경. 윤원규기자

■ 사과 씨앗 같은 것, 너에게 닿기를

백남준아트센터 왼편 모서리에 전시를 알리는 대형 포스터가 붙어 있다. 지난 4월에 시작해 내년 2월까지 이어지는 ‘사과 씨앗 같은 것’과 8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열리는 ‘트랜스미션: 너에게 닿기를’이다. 건축물과 포스터에서도 예술적 상상력을 최첨단 과학 기술에 접목해 세계인들에게 놀라움과 즐거움을 동시에 선사한 백남준의 예술성이 느껴진다.

세계의 다양한 춤과 음악이 나오는 텔레비전들이 우거진 수풀 속 꽃송이처럼 피어있는 1974년 작품 'TV 정원'. 윤원규기자

센터 안으로 들어서면 만나는 ‘TV 정원’은 여전히 살아 움직이며 관람객의 마음을 파고드는 백남준의 예술혼과 만나게 해 준다. 온갖 꽃과 풀들이 가득한 아름다운 정원 속에 놓인 수십 대의 TV에서 보여주는 흑백 영상에서 백남준의 실험정신이 전달된다. 산책로처럼 낸 길을 걸으며 백남준이 관람객에게 건네는 메시지를 생각한다. 최첨단 과학기술의 응집물인 로봇을 비롯한 전시물에서 백남준의 상상력이 빛을 발하고 있다. 1960년대 세상에 처음 TV가 사람들의 가정으로 보급됐을 때 일방적 수용이 아니라 적극 소통하는 도구로 전환시켰으며, 세계인들이 공포로 맞이한 1984년에는 위성 퍼포먼스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펼쳐 세계인들을 안심시킨다. 모든 사물을 전복하고 변혁해 소통의 창으로 만드는 천재 예술가의 창조정신이 전시실에 펼쳐진다. 다양한 물고기가 헤엄치는 어항 속 화면에는 몸과 손발을 꺾어 굴리는 안무가 머스 커닝엄의 모습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백남준의 'TV 물고기'는 작품은 24개의 어항과 24개의 텔레비전이 중첩된 설치 구성으로 어항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물고기와 비디오 속의 물고기가 하나의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윤원규기자

■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만들다

2020년부터 3년 동안 이어진 코로나19는 현대인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만들었다. 세계인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줬지만 한편으로 인류의 장래는 물론 미술관의 역할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하고 상상하는 기회도 제공했다. 백남준아트센터는 코로나19로 관람객들의 발길이 줄어든 시기에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실험에 나선다. ‘백남준 63 전시 가상현실 체험 앱’을 개발하고, 온라인 전시 3종을 중국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캐나다 덴마크와 협업으로 진행한다. 이러한 실험은 TV를 비롯한 문명의 이기를 적극 활용해 새로운 예술로 재창조해 낸 백남준의 철학과 닮아 있다. 또한 이 기간에 온라인 아카이브 플랫폼 ‘백남준의 비디오 서재’를 구축하고, 온라인 협력 프로젝트 ‘다정한 이웃’(아르코미술관, 아트선재센터)을 진행했으며, 국제 협력전 ‘웃어’와 ‘오픈 코드’를 리투아니아와 독일에서 개최해 세계에 백남준의 예술정신을 적극 알린다. 전시 ‘침묵의 미래’로 2021 올해의 박물관∙미술관 기획전시부문을 수상하고, 7회 국제예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은 이러한 활동의 보상인 셈이다.

옥토끼가 자신이 살고 있는 달의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 보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달에사는 토끼'. 윤원규기자

백남준아트센터가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성장하기를 희망했던 백남준 작가의 바람을 현실화한 것이 ‘백남준의 비디오 서재’다. 이용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백남준의 비디오 아카이브에 접속해 감상하고 연구할 수 있다. ‘백남준의 비디오 서재’는 전 세계 유일한 백남준의 비디오 아카이브를 웹 환경에서 감상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백남준의 비디오 서재를 이루는 핵심은 백남준아트센터 비디오 아카이브에 소장돼 있는 영상들이다. 백남준의 싱글채널 비디오들의 다양한 편집 버전과 클립들, 비디오 조각과 설치에 사용된 소스 비디오들, 백남준과 동료 작가들의 인터뷰, 전시와 퍼포먼스의 영상 기록, 일상을 촬영한 기록, 방송과 싱글채널로 제작하기 위해 촬영한 푸티지 비디오들이다. 방송국의 프로그램으로 편성돼 송출된 이력이 있는 다큐멘터리, 교양 프로그램, 인터뷰와 뉴스 비디오도 포함된다. 개관 후 10여년 동안 이뤄진 백남준 작업에 관한 다양한 연구 성과를 이미지와 문서로 제공한다. 백남준의 비디오 서재를 통해 백남준의 예술적 사유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비디오 목록 저장 기능을 활용하면 나만의 비디오 서재를 만들 수 있다.

1969년 백남준 등 5명의 예술가가 참여해서 방영된 미국최초의 비디오아트 텔레비전 프로그램 매체는 매체다. 윤원규기자

■ 도민과 창조적으로 소통하는 공간

백남준아트센터는 2014년부터 지역 학생들을 대상으로 ‘종이 없는 사회를 위한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백남준이 1968년 쓴 ‘종이 없는 사회를 위한 확장된 교육’을 발전시킨 ‘종이 없는 사회를 위한 학교’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교사와 학생이 참여할 수 있는 ‘NJP 학교’와 동시대 예술가와 함께 다양한 형태의 예술 창작을 경험하는 창작 프로그램 ‘NJP 크리에이티브’도 호응이 좋다. 특히 ‘NJP 학교’는 학급 단위 초‧중‧고등학생 및 장애학생 단체와 교사를 대상으로 전시 연계를 통해 백남준과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다양한 감각을 깨우며 또래와 함께 생각을 나누도록 구성해 상생하는 미래사회를 꿈꾸도록 안내한다. ‘NJP 아카데미’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현대미술 강좌 프로그램이다. 백남준의 발자취를 따라 그의 예술세계를 중심으로 현재까지 이어지는 미디어 아트가 어떤 흐름과 주제에 집중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총 6강(상반기 4월, 하반기 9월)으로 구성해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전문가들이 출연해 흥미로운 뉴미디어 아트에 대한 강의를 이어간다. 전문 자원봉사자 양성을 위한 ‘도슨트 양성’도 주목된다.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심화 교육을 통해 백남준과 예술에 대해 학습하고, 전문해설을 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전문가 양성 과정이다. 현대미술을 청소년만의 시각으로 해석하고 해설하는 과정을 통해 깊이 있게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심화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오는 2024년 2월까지 열리는 특별전 '사과 씨앗 같은 것'이 열리고 있다. 백남준과 독일 예술가 마리 바우어마이스터가 주고받은 편지로 이뤄진 '피아노와 편지'. 윤원규기자

다음 달 12일부터 11월30일까지 진행되는 ‘피드백’, ‘옹기종기 모아보면’, ‘백남준의 작업실 탐방’은 급변하는 세상을 이해하며 주체적으로 대응하는 지혜와 자신감을 길러주는 프로그램이다. 매달 마지막 주 진행되는 ‘문화가 있는 날’에 펼치는 기획이 재미있다. “어쨌든, 당신이 나의 TV를 보게 된다면, 제발 30분 이상 지켜보기 바란다.” 1963년에 백남준이 관람객들에게 요구한 발언이다. ‘우리는 예술 작품 앞에서 얼마 동안 머무를까요?’는 백남준아트센터가 백남준이 제안한 감상법을 통해 관람객들이 보다 새롭게 예술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빠르게 스쳐보던 작품을 천천히 관람하면 ‘볼 수 있는 것’과 ‘느낄 수 있는 것’을 관람자 스스로가 경험하는 행복한 기회를 제공해준다.

2002년 뉴욕 록펠러센터 광장과 2004년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야외에서 단 두 번 전시됐던 백남준의 대형 레이저 설치작품 '트랜스미션 타워'가 20년 만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개되는 특별전 '트랜스미션: 너에게 닿기를'을 통해 오는 12월 3일까지 공개될 예정이다. 공연이 펼쳐지고 있는 '트랜스미션' 작품. 윤원규기자

백남준미아트센터에서 호젓한 산책로를 따라 언덕으로 이어진 숲길을 잠시 걸으면 경기도어린이박물관과 경기도박물관으로 이어진다. 여유를 가지고 찾으면 누구나 들국화처럼 짙은 문화예술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김준영(다사리행복평생교육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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