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소득재분배’는 공정한가요?…월급쟁이에 의존하는 연금복지 [국민연금]⑤

유원중 2023. 8. 31.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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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획] 국민연금에 ‘국가’는 없다
[국민연금]① 국민연금 고갈 위기라면서…정부는 왜 쌈짓돈처럼 빼쓰나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749434
[국민연금]② ‘국민연금 크레딧’은 빛 좋은 개살구? 정부가 미래에 떠넘긴 빚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750345
[국민연금]③ “국민연금 100년 이상 끄떡없다”…‘3-1-1.5’ 개혁안, 내용은?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751360
[국민연금]④ 공무원연금에는 국고 5조 원 투입…국민연금엔?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757050
[국민연금]⑤ 국민연금 ‘소득재분배’는 공정한가요?…월급쟁이에 의존하는 연금복지
https://news.kbs.co.kr/ne…


국민연금 제도는 소득재분배 기능이 꽤 크다. 소득과 연금 수령액을 따져보면 평균 소득 이상의 가입자들이 자기 몫의 약 25%를 저소득층에게 넘겨주는 식으로 제도가 설계되어 있다. 이 액수가 지난해 연간 8.5조 원으로 추산된다. 반면 정부가 저소득층 가입자를 위해 연금재정에 기여하는 예산은 1조 원에 불과하다. 공무원연금 적자를 메우는 데 한 해 5조 원을 쓴다.

소득재분배는 사회보험의 순기능이지만 한 걸음 들어가면 구조적인 문제가 보인다. 소득을 넘겨주는 가입자는 대부분 월급생활자이고 소득을 넘겨받는 가입자의 상당수는 자영업자와 주부들이다. 그런데 혜택을 받는 사람이 주는 사람보다 실제로는 형편이 더 나은 처지라면? 애초 잘못된 설계로 국민연금 재정을 악화시키고 국민에게 부담시키는 꼴은 아닌지 면밀하게 살펴 보자.

■ 국민연금 소득재분배 효과를 부자가 누린다?

국민연금 급여 = 1.2 (A+B)(1+0.05n)
※ A = 전체 가입자 평균소득 / B = 가입자 소득 /n =가입 기간

국민연금 가입자가 받을 연금액 계산식이다. 연금 급여는 자기의 소득(B값)과 전체 가입자의 평균소득(A값), 이 두 가지와 연동되어 결정된다. 따라서 자기 소득이 평균보다 높으면 소득에 비해 적게 돌려받고, 평균보다 낮으면 많이 돌려받는 구조이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 기준소득 상한선인 월 530만 원인 최고 소득자는 퇴직 후 월 연금액에서 약 58만 원을 저소득자에게 넘겨주는 셈이다. 자기 소득에만 비례해 받을 경우 212만 원을 받을 수 있는 연금을 154만 원만 받는다. 이는 연간 700만 원, 평균 수명(84.3세)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한 명이 총 1억 3천만 원이 넘는 소득을 저소득자에게 주는 결과가 된다.
자료: 국민연금공단 통계 이용 자체 계산


소득재분배 효과는 공동체의 연대를 강화하는 사회보험의 순기능이다. 그러나 소득재분배 효과가 정작 저소득층이 아니라 오히려 부자인 사람에게 돌아간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민연금의 경우 월 1백만 원 소득 수준에 매우 많은 가입자가 몰려 있는데, 이 중 절반 이상은 지역가입자(주로 자영업자)와 임의가입자(주로 주부), 임의계속가입자(60세 이후 계속 근로소득이 있는 사람)들이다.

자료:국민연금공단 홈페이지


먼저, 자영업자 중에는 소득 파악이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다. 4인 미만의 직원을 가진 사업주 중에는 평균적인 월급생활자보다 소득이 많은 사람이 섞여 있을 가능성이 있다.

자료:국민연금연구원 연구보고서 발췌


국민연금에 가입할 의무가 없는데도 자발적으로 가입하는 임의가입자 중에는 가정주부가 많다. 이들은 대부분 공적연금 가입자의 배우자라고 국민연금연구원 조사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만 27세 미만인데도 보험료를 내고 있는 임의가입자, 만 60세 이후에도 계속 보험료를 내는 임의계속가입자들도 국민연금의 평균소득자보다 경제적 사정이 나쁘지 않고 오히려 좋을 가능성마저 있다.

자료: 국민연금연구원 연구보고서 발췌


그렇다면 이들은, 국민연금을 꼭 필요한 노후보장 때문이 아니라 수익률 높은 금융상품처럼 이용하는 셈이다. 성실한 근로소득자들이 이들을 공연히 지원하고 있는 꼴이다. 이러한 소득재분배 혜택이 공정하다고 볼 수 있을까? 자영업자와 임의가입자를 국민연금에 편입한 주체는 분명 정부이다. 제도 설계의 맹점에서 부실이 발생한다면, 그 해결 책임도 정부에 있다.

■ 국민연금 개편 4대 위원회...위원장들은 모두 국민연금 가입자가 아니다

올해는 5년에 한 번 하는 국민연금 재정 추계를 실시한 해이기 때문에 보건복지부가 연금 개편안을 만들어 10월 말까지 국회에 보고하고 개편안을 확정해야 하는 해이다. 국민연금 개편안을 만들기 위해 보건복지부 산하의 여러 조직이 움직이고 있고, 국회 연금특위와 민간자문위원회도 열리고 있다.

그런데 국민연금 관련 4대 주요 위원회(국회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 기금운용위원회, 재정계산위원회)의 위원장 4명 중에 국민연금 가입자는 한 명도 없다. 각각 공무원연금 가입자 2명, 사학연금 가입자 2명이다. 4대 위원회의 위원들은 총 68명인데 이 중 국민연금 가입자는 정확하게 50%인 34명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국민 대표로 참여하고 있는 국회 연금특위 위원들 13명을 제외하면, 나머지 55명 위원 중에 국민연금 가입자는 23명으로 절반에 못 미친다. 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도 공무원연금 가입자이다.

자료: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


이러한 구성은 각 위원회에 당연직으로 참가하는 정부 관료들이 공무원연금 대상자이고, 민간 전문가 자격으로 참여하는 위원 대부분이 대학의 교수들로 사학연금 대상자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연금 가입 형태가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진 않겠지만, 이들이 과연 국민연금 가입자의 입장에서 판단할 대표성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국민연금 개편 논의에 국민연금 가입자의 생각이 충분히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은 단순한 기우가 아니다. 2015년 공무원연금 개편 논의 때에는 정부 관료를 포함해 공무원과 교사 등 상당수 이해관계자가 대거 참여한 바 있다.

■ 평균 연금액, 국민연금 58만 원 vs 공무원연금 250만 원

2015년 공무원연금 개혁으로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의 차이가 크게 좁혀졌다고 한다. 퇴직금이 연금에 포함돼 있는 공무원연금의 특수성도 고려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평균 연금액은 국민연금이 58만 원, 공무원연금이 250만 원으로 4배 넘게 차이가 난다.

공무원들은 일반 직장인들이 많이 가입하는 개인연금에 많이 가입하지 않는다. 노후소득이 어느 정도 확보됐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은 보험료를 두 배나 많이 낸다고 하소연하지만, 수익비가 1을 훨씬 넘는 상황에선 산술적으로 많이 내는 게 결국 이득이다. 게다가 공무원연금 보험료 18%의 절반은 사업주인 정부가 내고 있기에 체감 수익률은 더 높아진다.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은 성격이 많이 다르다는 주장도 있지만, 국민연금 내에서 월급생활자와 자영업자(또는 주부)의 차이만큼 심하다고 보기도 힘들다.

자료:국민연금연구원 정책보고서(공적연금 제도 간 격차와 해소방안 중 발췌)


국민연금 개편에 맞춰 공무원과 사학, 군인 등 공적연금의 통합 논의도 나오길 기대한다. 전 세계에서 국민연금과 완전히 분리된 공무원연금을 유지하는 나라는 한국을 빼면 독일과 프랑스, 벨기에 등 세 나라에 불과하다. OECD도 보험료율과 지급률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을 통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여기에 더해 공무원연금의 적자를 국민연금 기금으로 메워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공무원연금의 소득재분배 기능은 국민연금에 비해 훨씬 적다. 또 소득 편차가 적은 공무원사회 안에서 재분배 효과가 일부 나타날 뿐, 일반 국민들과는 담을 쌓아 놓고 있다. 국민연금 개편은 정부와 전문가들이 주도하고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국민연금 가입자가 아니라는 사실. 국민연금 제도를 건강하게 유지할 책임을 다하지 못한 정부가 그동안 '인구 고령화' 타령만 하다가, '더 내고 덜 받고 더 늦게 받으라'는 주문만 하니 국민 여론이 좋을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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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중 기자 (iou@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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