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조성의 해체 그리고 점묘주의 음악 미술

2023. 8. 31.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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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산수화에서 인간은 대부분 자연의 일부처럼 묘사되어있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에서도 인간은 그림 속 무언가 특별한 의미를 가진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이런 특징은 주제가 단순히 풍경이기 때문만은 아니며,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서양의 풍경화와 많은 차이를 보여준다. 

다비드 프리드리히(David Friedrich)나 컨스터블(John Constable)등 서양 풍경화대가들의 작품 또한 인물이 종종 등장하는데 그들 대부분은 동양 풍경화와는 다르게 인간이 그림 속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편이다. 

이는 아마도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과 관념의 차이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과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우주를 각각 독립적이며 개별적인 사물들의 조합으로 보았지만, 동양의 철학자들은 우주를 끊임없이 순환하는 하나의 맥락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 서양의학에서는 문제를 일으키는 부분만을 따로 떼어내어 그 부분을 고치는 적극적 개입을 특징으로 하고 있지만, 동양의 의학은 모든 것 연결되어있으며 각기 다른 부분끼리 상호작용을 한다는 관계론적 사고방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저명한 심리학과 교수인 리처드 니스벳(Richard Nisbett)은 동서양의 사고방식을 연구한 그의 저서 <생각의 지도>에서 그 차이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동양인의 전반적 사고는 세상을 가변적이라고 바라보며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서로의 관계성을 파악하는 종합적 사고에 익숙한 반면, 서양인들은 사물을 주변환경과 떨어진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것으로 이해하며 분석적이고 원자론적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고 말하고 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는 서양의 분석적 사고가 동양으로 뻗어나가며 세상을 지배하던 시기였다. 

모든 것을 과학적이고 논리적이며 분석적 사고 위에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시기, 빛의 해체와 조성의 해체를 통해 분석적이며 논리적 예술세계를 추구한 예술가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점묘주의(Pointillisme) 음악과 미술을 대표하는 안톤 베베른(Anton Webern)과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였다. 

시카고 미술관이 무료 다운로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장 작품 중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그림=아트인스티튜트 오브 시카고)

◆ 혁신의 멘토들 : 쇤베르크와 괴테

베베른과 쇠라가 자신의 이론을 정립하기까지는 그들의 생각에 영감을 준 인물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쇤베르크(A.Schonberg)와 괴테(J.Goethe)로, 각각 무조음악과 색채론을 토대로 점묘주의 음악과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먼저 쇤베르크의 무조주의는 20세기 음악의 혁신적 변화라 할 수 있다. 르네상스 후기와 바로크 시대 이후, 약 3세기 동안을 음악역사가들은 <공통음악어법 시대(common practice era)>라고 부르고 있다. 

이 시기 음악들은 보통 협화음(Consonance)에 익숙하며 불협화음 (Dissonance)으로 음악이 진행하더라도 결국에는 협화음으로 해결되고 있다. 

이는 인간의 본능이 불협화음보다 협화음이 주는 소리에 심리적 안정감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19세기 후반 바그너(Wagner)와 드뷔시(Debussy), 말러(Mahler) 등 미묘한 화성으로 색채감과 심리적 묘사를 하는 작곡가들이 나타난다. 

그들의 음악은 꼭 협화음으로 해결되어야 할 필요성을 가지지 못했으며 이는 기능화성적 조성으로부터의 결별을 보여주는 조짐이라 할 수 있었다. 

20세기초 음악이 점점 복잡해지고 미묘한 음들을 안정적인 화음으로 해결해주기 쉽지 않아지자 쇤베르크는 협화음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는 무조음악을 고안하였다. 

즉 조성이라는 것이 없다면 해결할 음도 필요 없어진다는 논리이며 이는 이후 전통음악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언젠가는 시도될 수밖에 없는 시대적 흐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쇤베르크의 무조음악은 이후 제자인 베베른에 의해 더욱더 정립되었으며 음을 일정한 순서로 배열화한 그의 음렬주의(serialism)는 이후 셈여림까지도 포함한 총렬주의(total serialism)로 이어졌다. 

괴테의 색채론 역시 쇠라와 신인상파 탄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대문호인 괴테는 자신이 시인으로 이룩한 것에 대해서는 더 좋은 시인이 현재도 후세에도 있을 것이라며 겸손하였지만 색채론에 관하여는 굉장한 자부심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의 광학이론과 대척점에 있었던 괴테는 백색광 안에 여러 가지 색깔의 빛이 존재한다는 뉴턴의 이론에 반기를 들었다. 

그가 20년 동안 연구하여 발표한 색채론에서 색채는 광학이론만으로 접근하여서는 안되고 그 색채가 일으키는 효과를 뇌에서 어떻게 시각정보로 받아들여 이미지를 형성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괴테에게 색채는 물리적 특성으로부터 유추되는 것이 아닌 개별 감각의 문제, 즉 관찰자와 현상을 전제로 한 것이다. 

또한 색채는 밝음과 어둠의 만남 그 경계선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이를 원현상(原現像)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하였다. 

인간 감각의 중요성과 연관된 괴테의 색채론은 이후 색채를 연구한 여러 과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 중 <색의 조화와 대비의 법칙>을 저술한 프랑스의 화학자 슈브뢸(Michel Chevreul)은 괴테의 색채론으로부터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으며, 젊은 화가 쇠라는 슈브륄의 색채에 관한 연구를 통해 분할주의(Divisionism)라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확고히 하게 되었다.   

◆ 수학적 사고 : 12음 기법과 분할주의 기법

수학이 예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고대 피타고라스가 음계와 음악에 대한 이론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플라톤의 기록 등 여러 문헌에서 확인되고 있으며, 중세 수학자 피보나치의 수열은 가장 아름다운 황금비를 만들어내며 음악, 회화, 건축 등 위대한 예술작품의 탄생을 이끌어 내었다. 

우리 인체에도 반영되어있는 피보나치의 수열은 고둥이나 소라의 나선 구조에도 나타나고 있으며 해바라기, 데이지꽃 머리의 씨앗 배치 등 모든 자연 속에 존재하고 있다. 

이렇듯 수학은 자연을 설명하는 도구로써 예술적 창의성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철저한 계산과 수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탄생한 12음 기법과 분할주의는 베베른과 쇠라의 예술세계를 만들어준 이론적 토대라 할 수 있다. 

12음 기법의 창시자는 베베른의 스승인 쇤베르크이다. 하지만 그의 이론을 철저하게 지키며 음악을 발전시킨 인물은 베베른이라 할 수 있다. 

12음 기법 역시 피보나치 수열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옥타브 안의 모든 음, 즉 반음(피아노의 검은 건반)까지 합한 12개의 음을 중복이 없이 사용하여 음렬을 만들고 그것을 여러 방향으로 뒤집어가며 작곡하는 기법이다. 

다시 말하자면 주가 되는 음률을 데칼코마니처럼 뒤집어서 음률을 만들어 내고 또 역순 방향으로도 음률을 배치시켜 작곡에 이용하는 기법이다.

베베른은 이 12음 기법의 논리적 사고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모든 음악적 표현의 수단을 단순화하였으며 이는 곧 점묘주의 음악의 탄생으로 이어지게 된다.  

분할주의 또한 과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분할주의라는 용어는 색을 분리해서 사용한다는 뜻에서 나온 단어다. 

팔레트 위에서 원색을 섞어서 표현했던 이전의 화가들과 다르게 분할주의 화가들은 원하는 색을 원색으로 분할한 다음, 그 원색으로 작은 점들을 찍어 시각적으로 다시 혼합되어 보이도록 했다. 

즉 보색관계 등을 이용하여 작은 점들이 눈 속에서 시각적으로 혼합하도록 만든 정교한 기법으로 좀 더 생생하고 역동적인 표현력을 보여준다. 

이는 슈브륄(Michel Chevreul)과 오그든 루드(Ogden Rood)등 19세기 과학자들의 광학적 연구가 밑바탕이 되었다. 

분할주의는 점묘파와 동일시되는 단어로 인식되지만 단순히 점(pixel)을 찍는 행위 자체인 점묘파와는 차별화된 과학과 광학이론을 기초로 하고 있다. 

신인상파 화가들은 점묘파보다는 회화에 광학적 요소를 대입한 분할주의자로 불리길 원했다. 이렇듯 점묘주의 예술세계에서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수학적 사고는 이들을 특징지어주는 요소 중 하나이다.

◆ 모형

걸작 또는 명작을 뜻하는 ‘마스터피스(Masterpiece)’는 중세 길드(guild)에 소속된 장인들이 만들어내는 물품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하나의 마스터피스가 나오기까지는 오랜 동안의 도제생활이 필수적이며 무엇보다 롤모델인 스승의 영향력이 크다 할 수 있다. 스승의 작품이 자신의 기술을 발전시켜주는 하나의 ‘모형’이 되기 때문이다. 

가장 완벽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 바이올린인 스트라디바리우스(Antonio Stradivari) 또한 스승 아마티(Nicolo Amati) 바이올린을 모형 삼아서 수많은 음향적 실험을 통해 만들어졌다. 

베베른과 쇠라 작품의 탄생에도 모형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베베른의 작품은 후기로 갈수록 스승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을 철저히 따르고 있는데, 음렬구조와 리듬패턴, 셈여림 등을 철저한 계산하에 작곡하였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감정을 그대로 옮겼다기보다는 모형을 구축하고 그 안에서 이성적이며 논리적인 접근방법으로 음들을 배치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습작인 <Summer wind>를 제외하고 쇤베르크와 사제지간을 맺은 이후 작품들은 조직적이고 대칭적이며 비율적인 마디 수를 갖고 있다. 이는 이미 그가 생각해둔 철저한 모형을 전제로 작곡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쇠라의 작품 또한 모형은 명작의 탄생에 중요한 디딤돌 역할을 하였다. 시카고 뮤지엄에 소장되어있는 그의 걸작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신인상파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 한 켠에는 쇠라가 작품을 시작하기 전 그렸던 작은 모형이 걸려있는데 이는 자신의 생각을 줄여 일정한 물리적 크기 안에 담아낼 수 있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쇠라는 이 모형을 통해 전체적인 구도를 가늠해 볼 수 있었으며, 캔버스에 수십만 개의 색점을 찍는 고통스러운 작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예상되는 문제를 점검했다고 하였다. 

그는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20점 이상의 소묘와 40점 이상의 색채 스케치를 그렸다. 

노벨 화학상과 평화상 수상자인 미국의 화학자 라이너스 폴링(Linus Carl Pauling)은 모형에 대해 “모형이 지닌 가장 큰 가치는 새로운 생각의 탄생에 기여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 간결함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Steven Jobs)는 복잡함보다는 간결함이 훨씬 어렵다고 하였다. 간결하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F=ma’라는 물리학의 간결한 수식이 뉴턴으로부터 나오기까지 많은 과학자의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는 “간결함은 지혜의 정수”라고 말하고 있다. 

베베른과 쇠라의 예술세계에서 간결함은 그들 작품세계를 특징지어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베베른의 모든 작품은 음반 3장에 담을 수 있을 정도이며 4시간을 넘지 않는다. 

그만큼 그의 작품세계는 응축적이며 높은 음악적 밀도감을 보여준다. 음악적 구성은 긴밀하며 절제되어있지만 짧은 모티브가 소개되면 곧이어 다른 성부 역시 비슷한 패턴으로 구성된다. 

전체적으로 보면 여기저기 점을 찍어 놓은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점묘주의 음악이라고 한다. 

그의 곡 대부분이 6분 미만이 많으며 어떤 악장은 불과 몇 초 만에 끝나기도 하지만 구성은 치밀하고 정교하며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음악의 본질을 간결하게 보여주고 있다. 

쇠라의 작품 또한 간결함을 통해 자신의 의도를 표현하고 있다. 그의 회화적 목표는 섞이면 섞일수록 탁해지는 물감의 특성인 감산 혼합을 빛의 성질인 섞일수록 밝아지는 가산 혼합으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그는 색상을 도식화하였으며 수많은 점을 색상과의 관계를 사용하여 우리 눈 안에서 빛의 효과 즉 가산혼합으로 만들어 내었다. 

그가 보색관계를 이용하여 만든 테두리는 그림을 좀더 눈에 띄게 만드는 효과 주었으며 세로로 그리면 생동감이 넘치고 가로선으로 그리면 차분해지는 특성 또한 작품을 통해 구현하였다. 

쇠라는 수많은 점을 찍는 고통 속에 작품을 완성하였지만 그의 작품이 간결해 보이는 이유는 다양한 실험을 통한 수많은 과학적 이론들이 바탕 되었기 때문이다. 

감각적이기보다는 분석적이고 즉흥적이기보다는 논리적인 베베른과 쇠라의 예술세계는 결국 간결함이라는 응축된 정수로 귀결되고 있다. 그들은 간결함이 가진 힘과 본질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 음반추천

베베른의 전집음반은 불레즈(Pierre Boulez)의 레코딩을, 피아노 변주곡 (Variations for Piano op.27)은 글렌굴드(Glenn Gould)의 연주를 추천 드린다.

◆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최우수 졸업. 이 후 Memphis 심포니, Chicago civic오케스트라, Ohio필하모닉 악장 등을 역임하고 London 심포니, Royal Flemisch 심포니 오디션선발 및 국내외 악장, 솔리스트, 챔버연주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igenarti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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