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욱의 술기행] (102) ‘404 not found’ 이런 이름 막걸리 아세요?
프로그래밍 코드 용어인 404 not found 이름 딴 막걸리 최근 내놓아
C막걸리, 프로그래밍 유튜버 조코딩, 주류 온라인 플랫폼 ‘3자’ 콜라보 제품
개똥쑥, 블루베리, 도라지 등 지역 농산물 10여가지로 컬러플한 막걸리 빚어
“C막걸리 특유의 향을 살린 증류주도 개발 중, 기대하시라”
404가 무슨 뜻인지 아는가? 404는 응용 프로그래밍에서 흔히 사용하는 오류 코드를 말한다. 영어로는 Not found, 혹은 요청한 페이지를 찾을 수 없습니다 등의 뜻으로 쓰이는 용어(에러 코드)다.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원치는 않지만 숱하게 만나게 되는 친숙한 용어다. 하지만, 관련 업무를 하지 않는 사람들 대부분은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 용어다.
최근에 이 용어(404 not found)를 술 이름으로 한 막걸리를 내놓은 양조장이 있어 화제다. 술병의 라벨(404 not found) 역시, 프로그래밍 폰트 그대로 가져왔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 사이에서 친숙한 코드인 404를 그대로 술 이름으로 썼다는 의미는, 다시 말해 특정 직업군(소프트웨어 개발자)을 염두에 둔 최초의 술이란 뜻이다. 서울 개포동에서 소규모 양조장으로 시작했다가, 2022년 경기도 양평으로 둥지를 옮긴 C막걸리 최영은 대표 이야기다.
“이 술은 저 혼자 만든 게 아니라, 개발자 프로그래밍 인기 유투버로 활동하고 있는 조코딩님, 그리고 주류 스마트오더 플랫폼 업체, 이렇게 ‘3인’이 콜라보해서 만든 막걸리입니다. 조코딩님이 이 술의 스토리텔링을 맡았어요. 대개 개발자들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며칠 밤을 꼴딱 새워가며 일한다더군요. 프로그래밍을 짤 때마다 수도없이 만나는 에러코드가 404이고요. 이런 에러코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다보면 시간 가는줄 모르고, 또 결국 사무실에서 날밤 새고 아침을 맞는 힘든 과정, 그런 스토리를 ‘404 not found’ 막걸리에 담았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전통주 이름이 404 not found라니? 이 뜻을 모르는 사람은 아예 이 술에 관심도 갖지 말란 말인가? 막걸리 이름치고는 가장 이상한 경우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느린마을 막걸리, 장수 막걸리, 지평 막걸리 같은 이름에 익숙한 4050세대는 어쩌라고? 그러나, 술 이름이야 양조장 맘대로 짓는 것이니, 괜히 더 불평했다가는 ‘꼰대’ 소리밖에 더 듣겠는가.
그럼, 404 not found 막걸리 맛은 어떻고 또 시장 반응은 어땠을지가 궁금했다. 쌀을 주재료로 한 이 술에는 도라지와 둥글레가 부재료로 들어갔다. C막걸리 술들은 죄다 다채로운 부재료가 특징이다. 2020년 서울 강남 개포동에서 소규모 양조장으로 출발한 C막걸리는 건포도, 블루베리, 라벤더, 당근, 카카오닙스 등을 넣어 전통주 시장에 ‘부재료 막걸리’ 시대를 활짝 연 주역이다. 부재료 막걸리란 곡물에서 비롯되는 고소한 향과 단맛 외에 다양한 향, 풍미, 색상을 내기 위해 쌀을 주원료로 하되, 다양한 원료들을 소량 첨가한 막걸리를 말한다. C막걸리 술들은 나란히 옆으로 세워두면 무지개빛이 연상될 정도로 술 색깔도 다채롭다.
‘막걸리 맛을 한가지로 규정짓지 말자’며 수제맥주 빚듯이, 실험정신으로 빚은 다양한 술들이 C막걸리 술들이다. C막걸리 이전 부재료 막걸리로는 오미자 같은 과일 막걸리가 대부분이었다. C막걸리 양조장은 전 제품이 부재료 막걸리들로서, 순곡주(쌀로만 빚은 술) 제품 자체가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라지와 둥글레를 넣은 404 not found 막걸리를 내놓았다. 최영은 대표의 설명을 더 들어보자.
“지금까지 C막걸리에는 다양한 과일과 꽃잎을 넣었던 것과는 대조적인 술이 404 not found(알코올 도수 9도)입니다. 도라지, 둥글레를 넣어 약간 나무 뿌리향, 흙향(earthy)을 내고 싶었어요. 여기에 쌀 본래의 곡물향이 더해져 미숫가루 같은 구수함도 있어요. 단맛은 최대한 억제돼 있어요.”
전문가의 평가도 후하다. 한국주류안전협회(회장 문세희 화요 대표) 권나경 본부장(국가대표 전통주 소믈리에)의 시음평이다.
“404 not found는 한마디로 아무 생각없이 벌컥벌컥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술이다. 도라지의 개운하고도 쌉싸름함을 둥글레의 구수함이 은은하고 부드럽게 받쳐준다. 술이 워낙 깔끔해서, 마시고 나면 내가 언제 술을 마셨나 싶게 또 마시게 되는 그런 술이다.”
올 5월에 출시된 이 술의 시장 반응도 괜찮은 편이다. 2000병씩 두차례 런칭 행사가 조기에 마감됐고, 3차 행사도 순항 중이다. 최영은 대표는 “소프트웨어 개발 종사자들뿐 아니라, 새로운 맛에 즐겨 도전하는 MZ세대들도 술 이름(404 not found)과 맛이 독특하다고 좋아들 한다”고 말했다.
C막걸리 술들은 최근 더 다채로워졌다. 2020년 서울에서 양조장을 열었다가 2년 뒤인 2022년 4월 경기도 양평으로 이전하면서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을 더욱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선 양평산 재료를 보면, 쌀은 기본이고 배즙, 딸기, 블루베리, 둥글레, 도라지를 술에 넣고 있다. 인근 가평의 건포도, 여주 고구마, 광주의 토마토, 그리고 강원도 홍천의 도라지도 사용하고 있다. 최 대표는 “현재 사용 중인 지역 농산물만 10여가지이고, 앞으로 술에 사용하겠다고 허가를 받은 농산물까지 치면 37개에 이른다”며 “인근 강원도 농산물까지 합치면 40가지가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막걸리 만드는 방법은 전통 주조방식을 따르지만, 지금까지 전통주에 사용하지 않았던 다양한 부재료를 조합해서 술을 만드는 것이 C막걸리 양조장의 특징이다. 2020년 서울 강남에서 막걸리를 출시할 때부터 ‘부재료 막걸리’ 정체성은 변함이 없고, 오히려 부재료의 넓이와 깊이는 더 확대됐다. 이런 관계로 C막걸리 술은 스테디셀러 술이 많지 않다. 매 시즌 새롭게 한정수량만 나오는 제품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레시피 변경없이 첫 출시 때부터 지금껏 똑같이 만드는 술은 시그니처큐베 막걸리 한제품 뿐이다.
다양한 부재료가 특징인 반면, 인공감미료, 색소, 정제효소는 전혀 들어가지 않는 것도 C막걸리의 특징이다. 무지개빛 다양한 술 색깔 역시, 다양한 부재료에서 비롯된다. 양조장 시작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부재료 막걸리만 만들어온 최영은 대표의 말을 더 들어보자.
“한가지 술을 많이, 그것도 오랫동안 꾸준히 팔 수 있으면 제일 좋죠. 몇백개가 넘는 막걸리 양조장 중 새카만 후발주자로 뛰어들었으니, 어떻게든 선배 양조장과 차별화를 꾀하려하다 보니까, 부재료 막걸리를 만들기로 했어요. 또, 쌀로만 빚은 순수 쌀막걸리는 이미 좋은 제품들이 차고 넘쳐 가망이 없어 보인 탓도 컸고요.”
C막걸리의 터줏대감 시그니처큐베 막걸리는 어떻게 만드는지 살펴보자. 이 제품은 일년 내내 생산되는, 몇 안되는 ‘상시 생산 제품’이다. 주니퍼베리, 건포도 그리고 배즙을 가미해 유쾌한 산미를 강조한 술이다. 알코올 도수가 12도나 돼 일반 막걸리의 두배로, 애주가를 겨냥한 제품이다. 시그니처큐베의 알코올 도수가 다소 부담스럽다면, 새로 나온 시그니처나인 막걸리는 어떨까? 우선 알코올 도수가 9도로 큐베보다는 많이 낮다. 특히, 배즙 함량을 높여 단맛이 큐베보다 더 도드라진다. 그래서 C막걸리의 캐릭터는 그대로 담으면서도 훨씬 순하고 담백한 제품이 시그니처나인이다.
C막걸리 제품 중 알코올 도수가 가장 높은 술은 ‘와일드그린 15′다. 쌀을 주원료로, 이번에는 케일과 개똥쑥을 넣었다. 그래서 색상이 그린에 가깝다. 양조장이 있는 양평의 개똥쑥 생초를 넣어, 술맛이 다소 쌉싸름하다. 알코올 도수가 15도나 되는 것은 발효 끝난 술에 물을 전혀 타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도수가 워낙 높아 호불호가 있을 줄 알면서도 매니아층을 염두에 두고 높은 도수의 막걸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C막걸리 제품 중 물을 전혀 타지 않는 술은 와일드그린 15 제품이 유일하다.
이 제품이 다른 제품과 다른 점 하나는 제조기간이 무려 6개월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대개 C막걸리 제품은 발효 2주, 숙성 4주 포함해 총 6주가 지나면 술이 완성된다. 하지만 와일드그린 15는 여기에 5개월 더 추가숙성을 거친 다음에 병입한다. 장기 숙성을 하는 이유는 향 때문이다. 향이 깊어지면서 동시에 부드러워진다. 개똥쑥의 진한 향이 조금 더 안정감있게 변한다. 높고 거친 알코올도 많이 순해진다. 가격은 착하지 않다. 500ml 한병이 3만원.
기자는 지금으로부터 딱 3년 전인 2020년 8월, C막걸리 취재기를 게재했다. ‘욕망의 땅’ 서울 강남에 1인 막걸리 양조장을 차려, 남다른 색상과 향을 내기 위해 다양한 부재료를 넣은 막걸리를 빚고 있다는 내용을 자세히 전했다. “술이야말로 대표적인 문화콘텐츠의 하나인 만큼, 이곳 강남의 작은 양조장이 앞으로 시음회를 비롯한 다양한 이벤트를 여는 ‘문화 사랑방’ 구실을 했으면 한다”는 양조장 대표의 바람도 기사 말미에 넣었다. 그런데, 2년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양평으로 양조장을 옮긴 사연이 궁금했다.
“코로나 때문이었죠. 개포동에 양조장을 막 차렸을 때부터 슬금슬금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어요. 식당, 주점 영업시간이 제한되다보니 술을 팔 데가 없었어요. 코로나 때문에 양조장 안에서도 시음회를 열 수 없었고요. 지역특산주 면허가 아닌 소규모 양조장 면허라서, 온라인 판매도 할 수 없었으니 매출이 반토막으로 떨어졌어요.”
그래서 대안으로 찾은 곳이 지금의 양평 양조장이다. 이제는 지역특산주 면허(지역농산물로 술을 빚어야 한다)를 받았기 때문에 인터넷 판매가 가능해, 매출은 크게 늘었다. 3개로 시작한 발효탱크가 지금은 20개에 이른다. 코로나 영향도 크게 줄었지만, 매출의 75%가 온라인일 정도로 인터넷 판매 반응이 좋다. 스토리(개성)를 좋아하는 MZ세대들이 주요 고객이다. 전국 팔도에 널린 게 막걸리이지만, C막걸리 제품만큼 개성 강한 막걸리들은 흔치 않다.
C막걸리 최영은 대표의 다음 목표는 증류주다. 막걸리를 증류하면 쌀증류주, 소주가 된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 어렵다. 왜냐면 증류를 거치면 발효주인 막걸리가 갖고 있는 향들이 대부분 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색상도 살릴 수 없다. 증류주는 맑고 투명하기 때문에 항아리에 숙성할 경우, ‘무색’이다. C막걸리의 정체성인 다양한 색상과 향을 증류주로 살리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이걸 누구보다 잘 아는 이가 최영은 대표다. 그래서 고민도 깊다.
“증류주 레시피는 일단 만들어놨는데, 계속 테스트를 거치고 있어요. 증류를 하더라도 향을 살릴 수 있는 부재료를 열심히 찾고 있어요. 저희 막걸리 제품 시그니처큐베에 들어가 있는 주니퍼베리는 증류주 진을 만드는 주요 원료잖아요. 주니퍼베리, 그리고 쌉싸름한 향이 강한 개똥쑥 같은 원료는 증류 후에도 특유의 향을 살릴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막걸리 레시피와 증류주 레시피는 처음부터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적어도 2년 이상 개발기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기대하세요. C막걸리 제품답게 톡톡 튀는 증류주를 꼭 만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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