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서 들불처럼 번지는 쿠데타, 서방 영향력 급감
식민지 겪었던 허울뿐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군부가 권력 대체
서방 대신 러시아, 중국 등 다른 열강 세력 확장
'쿠데타 벨트' 길어질 수록 아프리카 내 서방 영향력 급감할 듯
[파이낸셜뉴스] 지난 7월 니제르에 이어 8월 가봉에서도 쿠데타가 터지면서 아프리카 중부의 군사정권이 늘어나고 있다. 외신들은 서방 식민지였던 허울뿐인 민주주의 국가들이 쿠데타에 쓰러지고 있다며 아프리카 내 서방의 영향력이 갈수록 줄어든다고 지적했다.
이날 '과도 국가 재건 위원회'를 자칭하는 쿠데타 세력은 국영 방송을 통해 자신들이 권력을 장악했다며 모든 국가 기관을 해산한다고 밝혔다. 쿠데타 군부는 알리 봉고 온딤바 가봉 대통령을 반역죄로 체포하여 가택 연금했다고 밝혔다. 이어 대통령 경호부대 사령관이자 온딤바와 친척 관계로 알려진 브리스 올리귀 은구마 장군을 재건 위원회 의장으로 선출했다. 이 과정에서 영부인 비서관으로 근무하던 한국인 1명이 군부에 체포됐다고 알려졌다. 현재 가봉에 체류 중인 한국 교민은 44명이다.
약 56년 동안 이어진 봉고 가문의 세습 정권은 이번 쿠데타로 막을 내릴 전망이다. 가봉은 1960년 프랑스에게서 독립했지만 1967년 오마르 봉고 온딤바 전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그가 사망한 2009년까지 약 42년 동안 철권통치를 겪었다. 이후 오마르의 아들인 알리가 2009년 대선에서 당선되어 다시 14년 동안 집권했다. 알리는 부정선거 의혹에도 집권을 이어 갔으며 8월 26일 다시 대선을 치렀다. 가봉 당국은 대선 결과 알리가 64.27%를 득표해 당선됐다고 밝혔다. 쿠데타 군부는 8월 30일 발표에서 8월 선거 결과가 무효라고 주장했다. 수도 리브르빌에서는 쿠데타 당일 수백명의 시민들이 군부를 지지하는 시위를 벌였다.
같은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성명을 통해 "선거 이후의 위기를 해결하려는 수단으로써 벌어진 쿠데타 시도를 단호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미국 백악관의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도 브리핑을 통해 "우리는 민주적 통치에 대한 가봉 국민의 요구를 계속 지지할 것이며, 상황을 계속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프리카연합(AU)과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도 의장들 역시 이번 쿠데타를 규탄했으며 중국과 러시아의 외교부도 조속한 질서 회복을 촉구했다.
가봉의 쿠데타는 2020년 이후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8번째 쿠데타로 2017년부터 계산하면 17번째다.
홍해에 접한 수단에서는 지난 2019년 쿠데타로 약 30년 동안 집권한 오마르 알 바시르 전 대통령이 물렀으나 2021년에 또다시 군부의 내분으로 쿠데타가 일어났다. 사하라 사막 남쪽의 말리에서도 2020~2021년에 걸쳐 연속으로 쿠데타가 일어났고 서아프리카 기니에서도 2021년 쿠데타가 발생했다. 지난해에는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2차례의 쿠데타가 터졌다. 니제르에서는 올해 7월 쿠데타로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이 억류되었다.
유럽연합(EU)의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8월 30일 가봉 상황에 대해 "확인된다면 지역 전체 불안정을 증가시키는 또 다른 군사 쿠데타가 된다"고 말했다.
보렐은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을 시작으로 말리,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가봉 등 전 지역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들 국가와 관련해 우리 정책을 어떻게 개선할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아프리카의 쿠데타들은 대부분 군부가 독재 정권 혹은 독재 이후 과도 정부를 대체하는 형태였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8월 30일 보도에서 식민 지배를 겪었던 아프리카 국가들이 허울뿐인 민주주의를 운영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이들이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의 지지를 받았지만 폭증하는 젊은 세대에게 부와 기회를 주지 못해 인기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WSJ는 이처럼 중부 아프리카에서 쿠데타가 급증한다면 아프리카에서 서방의 영향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니제르와 가봉 모두 프랑스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던 국가였다.
최근 러시아는 민간군사기업 바그너그룹을 내세워 아프리카 내 영향력을 키우고 있으며 말리와 부르키나파소의 쿠데타 정권들은 바그너그룹의 병력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지난달 니제르 쿠데타 당시 쿠데타를 지지하는 시위대는 러시아 국기를 들고 프랑스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신문은 아프리카에서 러시아 외에도 튀르키예,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중국의 영향력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반면 유럽은 아프리카의 옛 식민지들을 예전만큼 신경 쓰지 않았다. 가봉의 치안과 안보를 지원하던 프랑스군 주둔 규모는 2009년 당시 1100명에서 현재 350명으로 줄었다.
앞서 가봉 대선에서 알리 정부의 재선 담당을 맡았던 영국 홍보대행사 BTP어드바이저스의 마크 프루시 최고경영자(CEO)는 "일반적인 가봉 국민들은 현재 프랑스에 대해 매우 나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 정치인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지정학적인 정책 역시 인기가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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