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낚시와 술, 그리고 골프

방민준 2023. 8. 3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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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서 낚시하는 사람의 모습이다. 칼럼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어느 분야에서건 수준의 단계 또는 등급이 있기 마련이다. 장기 바둑 태권도 등은 객관적인 기준을 엄격히 적용해 등급을 부여하고 음주 노름 낚시 등 객관적 기준 설정이 어려운 분야에서도 나름대로 만인이 공감할 기준으로 급수를 매긴다. 



 



낚시꾼들 사이에선 '구조오작위(九釣五爵位)'가 꾼들의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로 애용된다. 



 



마음가짐이나 행동거지가 아직 치졸함을 벗어나지 못한 초보단계를 조졸(釣卒), 몇 번의 낚시질에 재미를 붙여 장비도 갖추 가면서 목에 힘이 들어가는 조사(釣肆),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어디서든 찌가 보여서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는 조마(釣痲), 아내를 일요과부로 만드는 것은 물론 낚시 때문에 사업에도 소홀해지고 부부싸움 끝에 이혼도 불사하는 조상(釣孀), 낚시에 대해 공포감을 느끼는 조포(釣怖), 행동도 마음가짐도 무르익어 고기가 잡히건 잡히지 않건 상관하지 않는 조차(釣且), 낚시를 통해서 도를 닦기 시작하는 조궁(釣窮), 바구니를 고기로 채우지 않고 마음 안에 큰 바구니를 만드는 남작(藍作), 마음속에 자비심을 키우는 자작(慈作), 마음속에 백 사람의 어른을 만드는 백작(百作), 마음속에 후함을 채우는 후작(厚作), 모든 것을 비우는 공작(空作), 비움을 완성한 조성(釣聖), 비움조차 뛰어넘은 신선의 경지인 조선(釣仙) 등 14단계가 있다고 한다. 



 



낚시의 구조오작위(九釣五作慰)를 골프에 적용해 '구골오작위(九骨五作慰)'로 패러디한 글도 떠돌고 있다. 



 



매너와 샷 모두 치졸함을 벗어나지 못한 초보단계인 골졸(骨卒), 100타를 겨우 깨고 가끔 90대를 치면서 기고만장하는 골사(骨肆), 홍역을 앓듯 초원과 깃발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골마(骨麻), 골프에 미쳐 직장은 물론 가정까지 잊는 골상(骨孀), 싱글을 눈앞에 두고 좌절을 겪는 골포(骨怖), 겁나던 골프채가 다시 동반자로 보이는 골차(骨且), 자신의 샷을 분석하며 연습하면서 남에게 훈수할 수 있는 골궁(骨窮), 70대 스코어를 내면서 필드에서 겸손할 줄 아는 남작(藍作), 자연 속에서 동반자와 함께 라운드하는 그 자체에 감사하는 자작(慈作), 골프의 지혜를 깨우치는 기쁨에 세월의 흐름도 잊으며 가끔 언더파를 경험하는 백작(百作), 섣불리 골퍼임을 말하지도 드러내지도 않으며 행동 하나하나에 연륜과 무게가 엿보이는 후작(厚作), 골프를 통해 삶의 진리를 깨닫고 거치는 데가 없는 입신 경지 초입에 이른 공작(空作), 나도 없고 골프도 없고 골퍼도 없어지는 무상의 세상이 펼쳐지는 골선(骨仙), 무아의 경지로 접어들어 골프든 아니든 모든 것과 일체가 될 수 있는 골성(骨聖) 등이 있는데 대부분의 골퍼들에겐 남작(藍作) 이상의 단계를 경험하기는 쉽지 않다.



 



골프의 단계를 술꾼에 비유하면 주선(酒仙)으로 유명한 조지훈 시인의 주도(酒道) 18단계가 원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주도 18단계는 다음과 같다. 



1단계 불주(不酒)- 술을 아주 못 먹진 않으나 안 먹는 사람 (바둑으로 치면 9급)
2단계 외주(畏酒)- 술을 마시긴 하지만 겁내는 사람 (8급)
3단계 민주(憫酒)-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으나, 취하는 걸 민망이 여기는 사람 (7급)
4단계 은주(隱酒)-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고 취할 줄도 알지만, 돈 아까워 숨어서 마시는 사람 (6급)
5단계 상주(商酒)- 마실 줄도 알고 좋아도 하지만 무슨 이득이 있을 때만 술을 내는 사람 (5급)
6단계 색주(色酒)- 성생활을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 (4급)
7단계 수주(睡酒)- 잠이 안 와서 술을 마시는 사람 (3급)
8단계 반주(飯酒)- 밥맛을 돋우기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 (2급)
9단계 학주(學酒)- 술의 진경을 배우는 단계로 주졸(酒卒) (1급)
10단계 애주(愛酒)- 술을 취미로 즐기는 사람. 주도(酒徒) (1단)
11단계 기주(嗜酒)- 술의 미에 반한 사람. 주객(酒客) (2단)
12단계 탐주(眈酒)- 술의 진경을 체득한 사람. 주호(酒豪) (3단)
13단계 폭주(暴週)- 주도를 수련하는 사람. 주광(酒狂) (4단)
14단계 장주(長酒)- 주도 삼매에 들어 술을 끼고 사는 사람. 주선(酒仙) (5단)
15단계 석주(惜酒)- 술 아끼고 인정도 아끼는 사람. 주현(酒賢) (6단)
16단계 낙주(樂酒)-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 주성(週聖) (7단)
17단계 관주(觀酒)- 술을 즐거워는 하되 이미 마실 수 없는 사람. 주종(酒宗) (8단)
18단계 폐주(廢酒)- 술로 말미암아 다른 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9단)



 



골프에 대입하면 9단계쯤은 되어야 골프를 제대로 알기 시작하는 단계가 아닐까 싶다. 나는 과연 어느 단계에 있을까 궁금하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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