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 인수전 '트로이목마' 걷어낸 산은…'승자의 저주' 사전 차단

2023. 8. 31.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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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필수컨테이너선 19척 중 8척 HMM 소유… 외국 자본으로 매각 시 지정 불가
최종입찰 참가하면 경영 사정 들여다볼 수 있는 실사 기회 주어져
일각에서 제기되던 국제투자분쟁 우려도 현실화될 가능성 매우 낮아
이 기사는 08월 30일 15:36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HMM 매각 예비입찰에 참여한 독일 최대 컨테이너선사 하파그로이드에 최종입찰 자격을 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하파그로이드의 탈락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반응이다. HMM이 전시 또는 국가비상사태 때 맡아야 하는 역할이 막중한 데다 입찰에 참여한 하파그로이드의 불순한 의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외국 자본으로의 매각은 애초에 불가능한 선택지였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HMM 인수전의 불청객이었던 '트로이목마' 하파그로이드가 제거되면서 산은의 HMM 매각은 본게임으로 접어들었다.

 국가필수컨테이너선 42% HMM 소유

30일 투자은행(IB) 업계와 해운업계에 따르면 HMM이 보유한 컨테이너선 중 8척은 국가필수선박으로 지정돼있다. 국가필수선박은 전시 또는 국가비상사태 때 쌀과 원유, 석탄 등 국민 경제에 중요한 물자와 군수물자 등을 운송하는 선박이다. 해양수산부 장관이 지정한다. 

현재 해수부가 국가필수선박으로 지정한 컨테이너선은 총 19척이다. 이 중 40% 이상이 HMM 소유인 셈이다. HMM이 외국 자본으로 넘어가면 이 배들을 국가필수선박으로 지정할 수 없다. 한국해양산업총연합회와 부산항발전협의회가 "해운은 국가 핵심 기간산업이며 전시에는 육·해·공군에 이은 제4군의 임무를 수행하는 국가안보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며 HMM의 해외 매각을 반대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파그로이드의 HMM 예비입찰 참여 소식이 알려졌을 때 업계에서 가장 우려한 점은 경영상의 중요한 정보 유출이다. 적격성 심사를 통과해 최종입찰에 참여하게 되면 해당 기업은 HMM의 경영 사정을 속속들이 뜯어볼 수 있는 실사 기회를 얻는다. 선복량 기준 세계 5위 컨테이너선사인 하파그로이드는 8위 HMM과 직접적인 경쟁자다. 경쟁자에게 실사 기회를 주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라는 게 해운업계의 시각이다. 

혹여 하파그로이드가 HMM의 인수 후보자로 결정되더라도 경쟁당국의 기업결합심사를 통과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하파크로이드가 HMM을 품으면 MSC, 머스크에 이어 글로벌 3위 선사에 올라 독점 우려가 커지기 때문이다.

 국제투자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 희박

일각에선 하파그로이드가 HMM 예비입찰에 참여한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입찰 과정에서 경쟁자들의 오버페이를 유도해 인수 후 HMM의 경영상의 어려움을 가중하려는 게 하파그로이드의 진짜 목적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외신에서도 이런 분석이 이어졌다. 덴마크 해운 전문 매체인 쉬핑워치는 해운 컨설팅업체 베스푸치 마리타임의 최고경영자(CEO)인 라스 얀센의 말을 인용해 "하파그로이드는 입찰에 참여함으로써 HMM이 다른 인수 후보자에게 싼 가격에 팔리는 걸 막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하파그로이드가 HMM을 품으면 국내 다른 해운사들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해운업황이 이미 꺾인 상황이지만 하파그로이드와 같은 글로벌 대형 선사는 아직 버틸 체력이 남아있다"며 "하파그로이드가 HMM을 품은 뒤 저가 운임 공세를 벌였다면 노선이 겹치는 국내 중·소형 해운사는 줄줄이 도산 위기에 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파그로이드가 적격인수후보(숏리스트)에 오르지 못하면서 이런 우려는 일단락됐다. 예정된 절차에 따라 예비입찰 단계에서 하파그로이드가 탈락했기 때문에 향후 세계무역기구(WTO)가 문제를 삼거나 국제투자분쟁(ISDS)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희박하다. 매각 공고 단계에서 외국계 자본의 투자를 원천적으로 막았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었지만 평가를 통한 적격인수후보 선정은 문제가 없다는 게 법조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크로스오버 인수합병(M&A)을 주로 자문하는 한 국제변호사는 "예비입찰은 구속력이 없는 초기 단계의 매각 절차"라며 "예비입찰에 떨어졌다고 소송을 하거나 가처분 신청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승소 가능성도 낮다"고 말했다.

하파그로이드가 탈락하고 하림, 동원, LX그룹 3파전으로 압축되면서 이들 기업은 최종입찰을 앞두고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다. 업계에선 산은이 만족할 만한 인수 후보자가 나오지 않아 매각 작업을 중단하고 유찰을 택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지만 산은 내부에선 연내 HMM 매각 작업을 마무리 짓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HMM의 매각가는 시장에서 정해지는 것이고, 산은은 공정한 절차에 따라 매각 작업을 완주하는 데 집중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종관/차준호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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