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말고 우리도 있다” ‘윤심’으로 운명 엇갈린 與 여섯 잠룡들
총선에서 갈릴 희비…“정권 후반기엔 힘의 균형 달라질 수도”
(시사저널=구민주 기자)
지금 여권의 권력 지형은 오로지 '윤심(尹心)', 즉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 그리고 윤 대통령과의 관계에 따라 짜이고 있다. 어떤 이는 윤 대통령과 싱크로율을 맞춰가며 빠르게 권력의 중심으로 향한다. 또 다른 이는 윤심과 날카롭게 각을 세우며 바닥을 다져 나간다. 그 중간 어딘가에서 조심스레 기회를 살피는 이들도 있다. 목표는 모두 같다. '넥스트 윤석열'이 되는 것. 4년 뒤 대권에 좌표를 찍은 여권 잠룡들의 시선은 일제히 내년 총선으로 쏠리고 있다. 여당의 승패에 따라, 그로 인해 달라질 윤심의 입지에 따라 이들의 운명 또한 한 차례 크게 엇갈릴 전망이다.
여권의 차기 대권주자 선두는 윤석열 정부 황태자로 불리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사수하고 있다. 하지만 한 장관이 부상하기 전부터 여권의 '얼굴'이 되기 위해 뛰어 온 잠룡들이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안철수 의원‧유승민 전 의원‧홍준표 대구시장‧오세훈 서울시장‧이준석 전 대표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 모두 한 장관이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 경우 그에 대한 집중 견제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원희룡, 윤심과 맞바꾼 절반의 민심
현재 한 장관과 가장 비슷한 노선을 걸으면서 친(親)윤석열계의 대표주자로 떠오르고 있는 인물은 단연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다. 2000년대 초반 이른바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으로 불리며 합리적인 소장파의 대명사로 꼽혀 온 원 장관은 지난 대선을 기점으로 윤 대통령과 한 배에 오르며 주류의 길을 걷고 있다.
오랜 기간 비주류에 머물렀던 원 장관은 전통 보수층의 탄탄한 지지를 얻으며 현 정부 실세 장관으로 부상했다. 지난 7월 김건희 여사 일가 특혜 의혹이 불거진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 백지화를 선언한 이후 지지자들로부터 화환 세례를 받는 등 20여 년 정치 여정에서 가장 열띤 응원을 경험하기도 했다. 야당에 맞서 윤석열 정부를 엄호하는 '최전방 공격수'로 나서면서 한 장관과 함께 내년 총선을 앞장서 지휘할 '구원 투수'로도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날로 '강경 보수'의 길을 걸으며 윤심과 당심을 얻었지만 절반의 민심을 잃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원 장관은 이번 총선에서 수도권 지역구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당장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총선에선 '배지'를 달 수 있지만 궁극적 목표인 대권주자로선 지금의 노선이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 장관과 반대의 길을 걸으며 존재감을 키워가는 잠룡들도 있다. 원외에서 윤 대통령에 날을 세우며 '여당 내 야당' 역할을 하고 있는 유승민 전 의원과 이준석 전 대표가 대표적이다. 이들의 정치적 호흡은 비교적 길 수 밖에 없다. 집권 초 윤 대통령의 권력이 서슬 퍼런 지금, 이들의 입지는 좁디좁다. 당도 친윤 단일대오가 공고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잘 보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는 즉 용산과 여의도에 구축된 '친윤 공동체'에 균열이 생겼을 때, 이들에게 기회가 열린다는 말로 치환된다. 그런 의미에서 내년 총선이 이들에게 첫 번째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당이 총선에서 패배할 경우 당장 친윤 지도부가 흔들리고 권력의 무게추가 이들에게로 급격히 쏠릴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이들에겐 총선에서 당선돼야 한다는 난제가 있다. 원외에서 세력을 키우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내에선 여전히 이들에게 공천을 줄 수 없다며 비토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이 때문에 유 전 의원과 이 전 대표의 무소속 출마‧신당 창당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만일 총선서 원내 입성이 좌절되고, 여당이 총선에서 기대했던 성적까지 얻을 경우 이들의 설 자리는 더욱 사라질 전망이다. 이 경우 또 한 번 기회가 찾아올 때까지 암흑의 시기를 견뎌야 한다.
윤심 향해 날 세운 반윤, 날 숨긴 비윤
윤 대통령과 뚜렷하게 각을 세우진 않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친윤과는 거리를 두고 있는 잠룡들도 있다. 이른바 '비(非) 친윤' 또는 '비윤'으로 분류되는 홍준표 대구시장과 안철수 의원, 그리고 오세훈 서울시장이다. 이들은 대선 당시 윤 대통령과 '원팀'을 선언했지만 '화학적 결합'까진 이루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 중에서도 홍 시장과 안 의원은 그동안 유독 윤심에 의해 희비가 엇갈려왔다. 홍 시장은 지난 4월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의 설전으로 김기현 대표로부터 '상임고문 해촉' 통보를 받았다. 이어 '수해 중 골프' 논란으로 지난 7월엔 '10개월 당원권 정지'라는 중징계까지 받은 상태다. 이를 두고 그동안 정부와 당을 향해 쓴 소리를 이어 온 홍 시장을 향한 윤 대통령의 경고 신호란 분석이 잇따랐다. 적어도 총선 전까지 정부와 당에 '듣기 싫은 소리'를 하지 말라는 일종의 '기강잡기'란 것이다.
안 의원은 윤심으로부터 더욱 노골적인 '견제'를 받았다. 올해 초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치르며 대통령실과 여당 친윤계로부터 "가짜 윤심 팔이"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등의 공격을 당한 바 있다.
이들의 경우 집권 초인 만큼 윤 대통령을 향한 견제 의식을 가라앉히고 있을 뿐, 정권 후반으로 갈수록 비윤 결집에 앞장설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친윤인 당 지도부나 대통령실 참모들을 향하고 있는 이들의 쓴 소리가 점차 윤 대통령에게로 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공세 수위와 반경 역시 내년 총선 결과에 따라 크게 달라질 거란 전망이다.
결국 출마 여부와 관계없이 여권 여섯 잠룡들의 존재감은 내년 총선으로 크게 갈릴 것으로 보인다. 총선 결과에 따른 윤심의 영향력 변화가 곧 이들의 입지 또한 변화시킬 거란 관측이다. 다만 총선 후 희비로 4년 후 대선 지형을 예단해선 안 된다는 게 중론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취재진에 "권력 지형은 대통령과 당의 지지율에 따라 출렁일 것이고 몇 번의 선거를 더 치르며 계속 변화할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윤심과의 거리와 관계없이 지금의 대권주자들 모두 존재감을 잃을 수도 있다. 지난 총선 때 윤석열이란 존재가 대통령이 될지 예상한 사람 있었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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