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당기’ 권율, 배종옥처럼 또 한 명의 ‘인간 사용자’ 될까? [김재동의 나무와 숲]

김재동 2023. 8. 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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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재동 객원기자] “인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어!”

ENA 수목드라마 ‘오랫동안 당신을 기다렸습니다’(극본 권민수, 연출 한철수·김용민)의 박기영(이규한 분)이 납치해온 고영주(김지은 분)에게 한 말이다.

이 대사는 상당히 이질적이다. ‘사용’이란 단어는 비록 ‘사용자’·‘사용인’ 등의 표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격을 대상으로 흔히 쓰이는 표현은 아니다. 보통 ‘그를 이용했다’ 하지 ‘그를 사용했다’고는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굳이 ‘사용’이란 표현을 쓴 것은 인간을 사물처럼 취급하는 비인간성을 강조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사람을 사용하는 인간들이 있어" 쪽이 뉘앙스상 더 적절해 보인다. '인간'은 멸칭으로도 사용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인간을 사용하는 대표적 인물이 유정숙(배종옥 분)이다. 그는 선천적으로 심장병을 앓고 있는 외아들 차영운(권율 분)을 위해 오진우(렌 분)를 뇌사에 빠뜨리고 그 심장을 영운에게 이식했다. 유정숙이 오진우를 차영운의 도너로 점 찍은 이유는 진우가 영운의 이복동생임을 알아서다. 부계가 같으니 거부반응도 상대적으로 덜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진우의 존재를 확인한 이후 성공적인 이식을 위해서 추영춘(김형묵 분)을 ‘사용’해 마치 축산물 이력 관리하듯 장기간 오진우의 임상일지를 보고도 받아왔다. 그리고 차영운의 심장 부하가 한계에 달한 듯 싶자 정우노(김철기 분)에게 말한다. “생명연장술 시작하죠.”

유정숙이 버튼을 눌렀고 정우노가 움직였다. 특수부대 살인병기 출신의 정우노는 오진우를 딱 뇌사상태로 만들어 합법적인 장기공여를 유도했다.

내막을 알고 “차라리 죽게 내버려두지 그랬냐”고 따져오는 차영운에게 유정숙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신의 영역에 도전할만큼 엄마로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고 떳떳해한다. 유정숙에게 차영운은 종교였던만큼 그를 위해서라면 누구든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남편의 혼외자, 영운의 이복동생일지라도.

그런 유정숙이 종교인 남자가 정우노다. 군 시절 죽을 고비에서 유정숙이 살려낸 후 유정숙은 정우노에게 신앙이 됐다. 오진우가 됐건 박기영이 됐건 유정숙이 원한다면 누구라도 제물로 ‘사용’할 수 있다.

인간 사용자 중엔 차진철(최광일 분)도 빠질 수 없다. 진진그룹이란 자신의 아성에 둘러싸여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고 다니지만 자신의 안락이 0순위다. 젊어서 한때 바람도 피웠고 혼외자도 두었지만 의학박사 아내 유정숙과 촉망받는 검사 아들 차영운과 함께 하는 완벽한 가정을 깨트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한때의 바람의 흔적은 깨끗이 정리됐다. 혼외자의 존재는 알았지만 그저 궁금한 정도다. 진진그룹 회장 힘으로 알자면 못알리 없고 돕자면 못 도울리 없지만 아무 짓도 안했다.

그 아들이 죽었고 그 심장이 자신의 또다른 아들 가슴에서 뛰고있단들 그저 눈만 꾸먹꾸먹하는 정도의 애도만 표할 따름이다. 여전히 자신의 완벽한 가정은 건재하다. 과거의 인연에 연연해 현재의 안락을 깰 생각은 추호도 없다.

희생당한 이복동생의 일로 괴로워하는 영운이 섣부르게 평화를 깨지 않도록 제 어미의 오랜 희생만을 강조해 다독인다. 어쩌면 죽은 진우도 제 심장이 형에게 ‘사용’된 것을, 그래서 제 친부와 형 가정의 행복을 지켜낸 것을 다행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니까.

이런 이들 틈바구니에 차영운이 있다. 자신에게 “형!”이라 불러줬던 동생이다. 저는 내막을 다 알면서도 모른 체 하며 그저 다정과 친절만을 베풀었던 동생이다. 그 동생이 죽었다. 자신을 위해 죽임을 당했다. 그 심장이 제 가슴 속에서 뛰고 있다. 그 끔찍한 일을 벌인 이가 평생을 저로 인해 노심초사하던 엄마고 친형처럼 따르던 정우노다.

“그러니 영운아, 너는 어디로 갈래?”

과연 차영운이 양심을 따라 친인을 단죄하는 검사 본연의 길을 걸을 지, 유정숙·차진철처럼 또 한 명의 ‘인간 사용자’가 될 지 ‘오랫동안 당신을 기다렸습니다’의 뒷 얘기가 궁금해진다.

/zaitu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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