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게임은 어떻게 ADHD 치료제가 됐나[홀리테크]

박건형 기자 2023. 8. 31.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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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페타민 부족이 만들어낸 대안… 어린이는 물론 성인에도 처방
어린이 ADHD 치료제로 FDA 승인을 받은 인데버 알엑스 /아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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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만큼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받는 서비스도 없을 겁니다. 수많은 사람이 게임에 열광하고 블리자드, 소니, 넥슨, 엔씨소프트 같은 회사의 신작 발표는 전 세계적인 화제가 됩니다. 일부 게임은 아시안게임 종목으로 정식 스포츠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반면 부모들은 아이의 게임 중독을 항상 걱정하고, 어떻게든 게임 시간을 줄이려 애씁니다. 강력 사건이 발생하면 폭력적인 게임이 원인이라는 주장도 끊이지 않습니다. 게임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단순한 여가 이외에 게임의 순기능이 무엇인지 되묻습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마약단속국(DEA)이 여기에 새로운 답을 내놓았습니다. 게임이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 이른바 ADHD(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로 불리는 질환 개선에 치료제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의사가 게임을 처방하는 이른바 ‘디지털 치료제’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죠.

◇철저히 통제되는 ADHD 치료제

성인용 ADHD 치료제로 처방되는 애더럴. 암페타민으로도 불린다.

ADHD는 지속적으로 주의력이 부족하고 산만하며 과다활동, 충동성을 보이는 상태를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어린 나이에 많이 나타나는데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성인이 되어서도 증상이 남아있게 됩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2018년 ADHD 진단을 받은 6~18세 어린이와 청소년은 4만4741명이었는데, 지난해에는 8만1512명까지 늘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ADHD 진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성인 ADHD 역시 매년 10% 이상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 등 서구권에서는 성인 ADHD 치료에 애더럴(Adderall)이라는 각성제가 주로 처방됐습니다. 이 애더럴의 주성분이 암페타민입니다. 중추신경계를 흥분시키고, 기민성을 증가시키는 효능을 갖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아돌프 히틀러가 애용한 것으로 유명했고, 집중력을 높여준다는 점 때문에 미국 대학생들이나 메이저리그를 비롯한 스포츠 선수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됐던 오래된 약물입니다. 암페타민은 흔히 필로폰으로 불리는 메스암페타민과는 전혀 다른 물질입니다. 하지만 부작용이 뚜렷하고 남용 우려가 있기 때문에 2급 규제 약물로 처방전이 필요하죠. 테바 파마슈티컬 같은 암페타민 제조 업체들은 DEA의 철저한 모니터링을 받고 각 회사에서 생산할 수 있는 약물의 양에 대해서도 엄격한 제한을 받습니다.

◇해법으로 떠오른 비디오 게임

FDA 승인을 받은 최초의 디지털 치료제 리셋

문제는 성인 ADHD 환자 수가 급증하고 애더럴이 인기를 끌면서 심각한 부족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와이어드에 따르면 2006년에서 2016년 사이 애더럴 처방은 두 배 이상 늘었습니다. 특히 22~44세 성인 ADHD 처방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22% 늘었습니다. 애더럴은 기면증, 코로나 후유증 등에도 사용됩니다. FDA와 DEA는 애더럴 생산 허용량을 늘리는 데 부정적입니다.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남용 우려가 커진다는 논리입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FDA와 DEA는 8월1일(현지 시각) “암페타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약회사와 의논하고 있으며, 디지털 치료제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디지털 치료제가 바로 일종의 게임입니다. 사실 의학의 역사에서 디지털 도구를 활용하는 것은 생각보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2017년 FDA는 알코올 등 약물 사용 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는 페어 테라퓨틱스의 모바일 앱 리셋(reSET)을 승인했습니다. 리셋은 환자가 자신의 행동을 기록하고 의사의 상담과 보상을 받으며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형태의 앱입니다. 12주간 4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에서 40.3%가 효과를 봤고, 대조군의 17.6%와 비교하면 확실한 효과가 입증된 것이죠.

◇어린이용 이어 성인용도 출시

게티이미지뱅크

2020년에는 어린이 ADHD를 치료할 수 있는 아킬리 인터랙티브의 비디오 게임 ‘인데버 알엑스’가 FDA 승인을 받았습니다. 호버 보트를 타고 함정을 피하며 달리는 일종의 레이싱 게임인데 얼핏 보면 다른 게임과 다를 바 없는 화려한 그래픽과 재미 요소를 갖추고 있습니다. 다만 설명서는 게임 소개보다는 ‘약물 사용 설명서’에 가깝습니다. 이 게임은 7년간의 임상을 거쳤는데 일주일에 5일, 하루에 25분씩 게임을 한 어린이의 3분의 1은 4주 뒤 주의력 결핍이 기준치보다 개선되는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부모의 68%는 “자녀의 증상이 나아진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다만 인데버 알엑스는 약물 등 다른 유형의 치료와 병행해야 하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아킬리 인터랙티브는 “인데버 알엑스는 휴대전화나 태블릿을 좌우로 기울이면서 동시에 엄지로 화면 하단 모서리를 눌러야 하는 등 한 번에 수행하기 힘든 작업으로 구성돼 있다”면서 “이런 강제적인 환경은 사람의 두뇌가 수행하기 어렵고, 이 덕분에 모든 종류의 주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성인용 ADHD 디지털 치료제 역시 아킬리 인터랙티브에서 만들었습니다. ‘인데버OTC’는 ‘인데버 알엑스’와 비슷한 구조이지만, 비처방 치료제로 누구나 앱스토어에서 내려받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가격은 한 달에 10달러로 하루 25분씩 주 5일, 최소 6주간 사용이 권장됩니다.

◇게임 자체가 아닌 치료가 목적

시애틀 어린이병원에서 게임 치료를 받고 있는 청소년 환자들

게임의 치료 효과는 수많은 연구를 통해 이미 인정되고 있습니다. 로블록스와 마인크래프트 같은 인기 게임이 어린이의 문제 해결, 자제력, 계획 작성 등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시애틀 아동병원은 2018년부터 비디오 게임을 치료에 전면 도입해 통증 감소, 사회화, 창의성 향상 등에서 다양한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채혈이나 드레싱 교환 같은 상황에서 게임으로 주의를 분산시켜 통증을 줄이는 식입니다.

과학자들은 다만 비디오 게임은 항상 남용의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의 신경과학자 애덤 가잘리는 와이어드에 “디지털 치료제로서의 게임은 제한된 시간 동안 의도적으로 뇌 기능을 향상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디까지나 디지털 치료제는 ‘치료’에 목적을 맞춰 수단으로 게임을 사용하는 것이지 게임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겁니다. 치료 효과를 강하게 오래 지속시키는 것도 숙제입니다. 애더럴을 복용한 환자의 70%가 증상 개선을 직접 경험한 데 비해 게임의 치료 효과는 30% 정도에서만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확실한 것은 디지털 치료제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발전한다면 치료제를 복용할 수 없는 사람, 구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훌륭한 대안이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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