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전 『민족의 장군 홍범도』 이동순 “장군은 탁월한 독립운동가⋯작금 사태, 돌아오지 말 걸 후회할지도”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학교 도서관 책장에는 많은 책들이 비치돼 있었다. 그 가운데 그의 눈길을 빼앗은 책들이 있었다. 누렇게 빛바랜 시집들이었다. 이름도 모르는 시인부터 시작해 김기림, 정지용, 백석 등의 시집까지.
“비오는 언덕길에 서서 그때 어머니를 부르던 나는 소년이었다./ 그 언덕길에서는 멀리 바다가 바라다 보였다./ 빗발 속에 검푸른 바다는 무서운 바다였다.”(신석정, 「어머니의 기억」 부문)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한국전쟁 직후 김천에서 태어났지만 10개월 만에 어머니를 먼 곳으로 서둘러 떠나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만삭의 몸으로 피난 생활을 하느라 제대로 산후 조리도 하지 못했다. 이후 어머니가 세 번이나 바뀌는 등 간난신고의 삶은 그를 칭칭 감아버렸고, 어머니라는 말만 나와도 그는 전율했다.
벽에 신석정의 시들을 붙여놓고 외우고 또 외웠다. 놀라고 기쁘고 슬픈 마음으로. 시를 읽던 그의 마음 한켠에서 어떤 소망 같은 게 연기처럼 피어났다. 나도 이렇게 써봤으면. 어느 새 시조를 시작으로 시를 흉내 내고 있었다. 글을, 시를 쓰는 세계로 들어가고 있었다.
1950년 김천에서 농부의 가정에서 2남2녀의 막내로 태어난 이동순은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마왕의 잠」이 당선돼 등단했다. 1989년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도 당선됐다. 등단 이후 『개밥풀』, 『물의 노래』, 『지금 그리운 사람은』, 『묵호』 등 이십여 권의 시집을 펴냈다. 김삿갓문학상을 비롯해 금복문화예술상, 시와시학상, 정지용문학상 등 많은 상도 받았고, 충북대와 영남대 등에서 문학을 가르쳤다.
시 창작이나 평론 활동을 성실하게 했지만, 특히 노래를 좋아했다. 충북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1985년 무렵 시인 김지하(1941~2022)와 다음 날 새벽까지 노래 대결을 벌인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술을 한 잔 하거나 강연이나 공연을 할 때면 아코디언을 어깨에 메고 연주도 한다. 천상 시인이었다.
오랫동안 시를 쓰고 시 평론을 해온 시인이기도 했지만, 그는 40년 넘게 홍범도 장군을 연구해온 홍범도 전문가다. 그러니까,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독립투사였던 조부 이명균 선생의 일대기를 들으며 자랐다. 조부는 김천에서 군자금을 모아 만주와 상해 등지로 보내다가 일경에 붙잡혀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20년대 숨졌다. 집안 어른들의 회고담과 유품, 서찰, 옛 신문기사를 읽고 독립 운동사를 공부해 가던 그에게 언젠가부터 인상적인 독립 운동가 한 명이 다가왔다. 바로 홍범도 장군이었다.
“언젠가 독립 운동가들의 일대기를 모아놓은 책을 읽다가 농민 출신 의병장 신돌석 장군과 산포수 출신 의병장 홍범도 장군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의병장이나 독립운동 지도자 90% 이상이 선비나 지식인, 유생 출신이었는데, 두 사람만은 특이했지요. 포수 출신이 왜 의병장이 됐을까? 그의 일대기를 더듬어 올라가게 됐지요.”
1980년대부터 홍범도 장군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고, 특히 2000년에는 미국 하버드대에 가서 국내에서 접하지 못한 많은 자료를 입수했다. 홍범도 장군의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성취와 풍모가 좀더 보이기 시작했다.
며칠 전, 그의 SNS에 자작시 「토왜타령(討倭 打令)-홍범도 장군 어법으로」이 내걸렸다. 『민족의 장군 홍범도』 북토크 당시 그가 행사장에서 낭송했던 시였다. 홍범도 장군과 그의 좌절과 통탄과 슬픔이 알려지면서, 시는 지금 수많은 이들에 의해서 퍼지고 또 퍼지고 있다. 마치 아리랑처럼.
⋯내가 돌아오지 말 걸/ 공연히 돌아와서 이 꼴을 보네⋯ 내가 돌아오지 말 걸/ 공연히 돌아와서 이 꼴을 보네/ 하지만 이 위기에 나 필요해서 불렀으리니/ 오늘은 숫돌에 장검을 들게 갈아/ 망나니처럼 덩실덩실 칼춤이나 출까나/ 너희 도깨비 무리를 단칼에 썩 베는/ 신나는 칼춤이나 출까나⋯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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