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한번 상원의원’은 영원한 상원의원?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2023. 8. 31.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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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인들의 고령화 문제가 화제로 떠올랐다. 올해 80세인 조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77)이 내년 11월 대선에서 맞붙을 가능성이 있어, 큰 관심사가 되었다.

의원 100명 가운데 ‘베이비부머’ 세대(59~77세)가 66명, ‘침묵의 세대’(78~95세)가 8명. 평균연령 65세. 의원 상당수가 초고령에 접어든 미국 연방 상원의원의 현주소다. 그 가운데는 1992년 당선된 이후 30년째 자리를 지켜온 민주당의 최고참 정치인 다이앤 파인스타인 의원(90)이 있고,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로 15년째 자당 의원들을 진두지휘 중인 미치 매코널 의원(81)도 있다.

공교롭게도 최근 두 중진 의원이 고령에 따른 건강 이상이 널리 알려지면서 미국 정치인들의 고령화 문제가 워싱턴 정가에 뜨거운 화제로 떠올랐다. 더구나 올해 80세인 조 바이든 대통령이 내년 11월 대선에 재선 도전을 천명하고, 80세를 바라보는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77)까지 ‘리턴매치’를 공식화하면서 정치인 고령화 문제가 과거 어느 때보다 큰 관심사가 되었다.

5월10일 파인스타인 민주당 의원이 상원으로 복귀하면서 휠체어로 이동하는 모습. ⓒAP Photo

미국은 각 주에서 두 명씩 상원의원을 선출한다. 상원의원은 ‘주 대통령’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이들이 의정활동을 성실히 수행하는 한 유권자들은 굳이 이들의 고령을 문제 삼지 않는다. 하지만 고령 때문에 언행에 문제가 생기면 차원이 다르다. 최근 화제가 된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와 파인스타인 민주당 상원의원이 여기에 해당한다. 매코널 원내대표가 7월 하순 기자회견 도중 20초 정도 말을 잇지 못하고 허공을 응시했다. 동료 의원들의 부축을 받아 잠시 퇴장했다 다시 돌아온 그는 “괜찮다”라고 했지만 이를 그대로 믿을 사람은 없다. 곧이어 파인스타인 의원에게도 문제가 생겼다. 소속 상임위원회 투표에서 ‘예’ ‘아니요’로 간단히 대답하면 될 걸 엉뚱하게 관련 법안을 낭독하다 보좌진의 귓속말을 들은 뒤에야 “예”라고 대답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앞서 매코널 원내대표는 약 6주 전 넘어져서 뇌진탕과 갈비뼈 골절로 일주일 동안 치료를 받았고, 파인스타인 의원은 지난 2월 대상포진 진단을 받고 몇 달간 의사당에 나오지 못했다. 그는 최근에는 기억상실증까지 겹쳐 의정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쯤 되면 당장이라도 은퇴하겠다는 말이 나올 법하지만 아직 두 의원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 적이 없다. 매코널 원내대표는 8월7일 연례 농촌 행사에 참가해 연설하던 도중 일부 군중으로부터 “은퇴하라”는 야유를 받았지만 꿈쩍도 안 했다. 오히려 그는 “켄터키 주민이 날 상원의원에 일곱 번이나 뽑아줬다. 이번 행사 참석이 끝이 아니다”라며 의정 활동을 지속할 뜻을 분명히 했다. 파인스타인 의원은 건강악화설이 나돌던 지난 2월, 임기가 내년 11월 끝나면 더 이상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건강에 문제가 있어도 임기를 채우겠다는 것이다.

7월26일 기자회견 중 매코널 의원(오른쪽)이 한동안 말을 잃어 건강악화설이 돌았다.ⓒAFP PHOTO

미국 의원들의 고령화는 얼마나 심각할까.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지난 1월 새로 개원한 118차 의회의 상원의원 100명과 하원의원 435명의 나이를 분석한 결과 상원의원 평균연령은 65세, 하원의원은 59세로 나타났다. 117차 의회와 비교하면, 상원의원 평균연령이 한 살 정도 높아졌고, 하원은 한 살 정도 낮아졌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상원의 경우 100명 가운데 59~77세에 해당하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66명으로 가장 많았고, 78세부터 95세에 해당하는 ‘침묵의 세대’도 8명이나 됐다. 반면 43~58세인 ‘X세대(1965~1980년생)’는 23명, 27~42세인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은 고작 세 명이었다. 반면 하원의 경우 1965년 이후 출생한 X세대가 219명으로 가장 많았고, ‘베이비부머’와 ‘침묵의 세대’ 출신이 215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특히 하원의원 435명 가운데는 민주당 맥스웰 프로스트 의원이 유일하게 Z세대(1996년 이후 출생자)다. 그는 플로리다주에서 25세에 당선된 최연소 의원이다.

물론 현역 정치인의 나이가 많다고 해서 무조건 은퇴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이를 강요할 수도 없다. 젊은 사람들이 고령 정치인을 밀어내고 대거 의회에 진출하는 걸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정치학자 노먼 온스테인 미국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은 〈워싱턴포스트〉에 “노련한 정치인 대신 이들이 의회에 진출하면 입법 경험 부족 때문에 참모진과 로비스트의 유혹에 빠질 위험이 크다”라며 신중론을 펴기도 한다.

트럼프, SNS에 ‘인생은 80부터’라고 써

결국 이들의 은퇴 여부는 유권자 손에 달렸다. 문제는 이들이 새 인물보다 기존 현역 의원을 선호하다 보니 물갈이가 사실상 힘들다는 점이다. 고령 정치인들의 건강 문제가 대두되자 공화당 유력 대권주자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정치인들은 자신의 전성시대가 지났으면 젊은 세대에게 바통을 넘겨줘야 하지만 전혀 그럴 기미를 안 보인다”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반향이 크지 않았다. 디샌티스의 라이벌이자 공화당 대선주자인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인생은 80부터!”라고 적기도 했다.

의원들 절대다수는 ‘평생 의원’이나 다름없다. 일단 당선되면 결정적 하자가 없는 한 2년(하원), 혹은 6년(상원)마다 선거가 열려도 낙선을 걱정하지 않는다. ‘현역 프리미엄’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올해 85세인 할 로저스 공화당 하원의원은 1981년 이후 스물두 번 내리 당선되며 올해로 42년째 의정 활동 중이다. 83세인 민주당 패트릭 레이히 상원의원은 1975년 버몬트주에서 처음 당선된 이후 지금까지 현역이다. 특히 다선에 나이가 많을수록 대접받는 상원의원의 경우 상임위 위원장을 맡으면 출신 주에 연방정부 예산을 왕창 끌어올 수 있다. 이는 은퇴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보좌진의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의원들이 은퇴를 꺼린다는 지적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전직 보좌관들의 말을 인용해 “고령의 나이에도 의원들이 은퇴를 하지 않는 이유 중에는 수십 명에 달하는 보좌진과의 ‘상호 의존적 관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의정 활동을 제대로 하려면 보좌진의 도움이 필요한데, 보좌진 입장에서 의원이 은퇴를 결정하면 실업자 신세가 될 수밖에 없어서 은퇴를 건의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공화당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이 자당 소속 마르코 루비오 의원 등과 함께 상원의원은 두 번, 하원의원은 세 번까지만 연임을 허용하도록 헌법을 수정하자는 법안을 지난 2월 제출했지만 진전이 없다. 크루즈 의원은 “너무 오랫동안 직업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봉사하기보다는 특정 이해집단의 비위를 맞추느라 여념이 없었다. 미국민은 압도적으로 의원의 임기 제한을 원한다”라고 주장했다. 실제 지난 3월의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3%가 임기 제한을 위한 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1994년 공화당이 의원 임기를 제한하는 법안을 제출했다가 소송이 제기된 바 있다. 연방 대법원이 헌법에 의원의 임기 제한에 관한 언급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유야무야 없던 일로 만들어버렸다.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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