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MB 땐 '불온서적' 23권 지정…이번엔 홍범도 장군
국방부가 지정했던 '불온서적' 23권
● 북한찬양
〈북한의 미사일 전략〉 〈북한의 우리식 문화〉 〈지상에 숟가락 하나〉
〈역사는 한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
〈북한의 경제발전 전략〉 〈통일 우리 민족의 마지막 블루오션〉 〈벗〉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대학시절〉 〈핵과 한반도〉
● 반정부·반미
〈미군 범죄와 SOFA〉 〈소금 꽃나무〉 〈꽃 속에 피가 흐른다〉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 〈우리 역사 이야기〉 〈나쁜 사마리아인들〉
〈김남주 평전〉 〈21세기 철학이야기〉 〈대한민국사〉 〈우리들의 하느님〉
● 반자본주의
〈세계화의 덫〉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이명박 정부 첫해인 지난 2008년 7월, 국방부가 지정한 '불온서적' 목록이다. 당시 이상희 국방부 장관 지시로 이뤄졌다. 국방부 보안정책과는 육·해·공군에 [군내 불온서적 차단 대책 강구(지시)]라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공문은 "불온서적 무단 반입 시 장병 정신전력 저해 요소가 될 수 있어 수거 지시하니 적극 시행"하라고 명시돼 있었다.
이른바 '불온서적' 23권은 [북한찬양]과 [반정부·반미], [반자본주의] 세 분류로 나뉘어 정리됐다. 당시 원태제 국방부 대변인은 "책이 사회적으로는 다양한 시각을 담을 수 있어도 군내 시각에서 장병들의 정신 교육에 있어 부분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불온서적 선정 취지를 언론에 설명했다. 이 논란 이후 이상희 국방부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 회의에서 "매년 입대하는 20만 명의 장병 중에는 국가관, 대적관, 역사관이 편향된 인원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는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23권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베스트셀러, 대중 서적, 그리고 세계 석학의 저서들까지 다양하게 포함됐다. 먼저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가 쓴 〈나쁜 사마리아인들〉. 출판 첫해인 2007년 1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다. 여러 언론사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반정부·반미'로 분류됐다. 이 책은 미국을 반대한 게 아니라 신자유주의를 반대한 경제학서이다.
세계적인 석학 노엄 촘스키의 저서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도 국방부에 의해 '반정부·반미 딱지'가 붙었다. 촘스키는 미국인이다. 여기서 반정부는 어떤 정부를 말하는지 그리고 미국인이 자국을 비판하는 것까지 우리 국방부가 금지시켜야 하는 것인지 갸우뚱하게 했다. 그의 또 다른 저서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은 '북한찬양'으로 분류됐다. 미국인이 북한을 찬양했다는 게 문제인지, 아니면 미국인이 쓴 책 내용을 보면 우리 장병들이 북한을 찬양할 수도 있다는 것인지도 논란이었다. 이전부터 세계 각국에서 나온 북한 관련 서적들은 왜 불온서적으로 지정을 안 했는지도 의문이었다.
독일 슈피겔 기자 출신과 오스트리아 법학자가 함께 쓴 〈세계화의 덫〉은 서구식 세계화를 비판한 책이다. 저자들은 책을 통해 '20대 80 사회'라는 양극화의 화두를 던졌다. 이때 나온 양극화의 대중적 표현은 지금도 널리 통용되고 있다. 어쨌든 국방부에 의해 '반자본주의' 낙인이 찍혔다.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은 저자들의 반발과 황당함을 불러왔다. 노엄 촘스키는 국내 인터넷 카페 운영진과의 인터뷰에서 "독재자들을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세우기 위한 (한국인의) 투쟁은 세계에 영감을 주었으나 항상 자유를 두려워하고 생각과 표현을 다시 통제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며 "국방부가 그에 속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국방부(Ministry of National Defense)라는 이름을 '자유·민주주의 방해부'(Ministry of Defense against Freedom and Democracy)로 바꿔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끝으로 "나의 책들은 고르바초프 이전 소련에서도 금지된 바 있다"며 "나는 그것을 영광으로 여겼다"고 답했다. 그에겐 '영광'이었다지만 우리 국민으로선 그렇지 못했다.
장하준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직도 불온서적 개념이 있는지 몰랐는데 놀랍다"며 "책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세히 보지도 않고 싫어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또 "책에서 19·20 세기에 미국이 이룬 경제발전을 칭찬했는데 어떻게 반미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내 책은 반미, 반자본주의, 쇄국을 지지하는 내용이 전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어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반정부, 반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장 교수는 불온서적 논란이 있던 시기에 펴낸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라는 책을 통해 신자유주의의 대안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했다. 일부 학계와 노동계에선 이 책이 박정희식 개발 독재를 찬양한다고 비판하기까지 했다.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은 출판계 반발과 함께 판매량 급증을 불러왔다. 출판계에선 "이미 수많은 사람이 읽은 역사 교양서와 문학 작품까지 불온서적으로 지정한 것은 다양성과 창의성, 비판력을 모두 봉쇄하려는 의도"라는 비판이 나왔다. 동시에 해당 도서 판매량은 두 배 이상 늘었고, 〈나쁜 사마리인들〉의 경우 첫 기사가 나온 다음 날 판매량이 10배 이상 급증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당시 인터넷 서점 알라딘은 '국방부 선정 불온서적 23선'과 관련해 독자 리뷰 이벤트까지 진행했다. 군 밖에선 '불온서적 붐'이 일었다.
국방부가 불온서적으로 지정했다고 해도 장병들이 휴가 때 밖에 나가 이 책들을 읽는 것까지 금지하지 못했다. 영내에서만 읽지 못하도록 금지한 건 데 전형적인 '눈 가리고 아웅'식 조치였다. 또 국방부의 '불온서적 차단' 지시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가 강제 전역당했던 군 법무관이 14년간의 소송 끝에 대법원에서 전역의 부당함과 현역 신분을 인정받았다. 2008년 국방부가 던진 '불온서적'이란 화두는 한국 사회에 작지 않은 파장을 낳았다. 그리고 15년 후 국방부는 어떤 모습일까?
2023년 여름, 국방부는 80년 전 사망한 홍범도 장군과 마주하고 있다. 국방부는 육군사관학교 내 '독립영웅 5명' 흉상 철거 방침을 밝힌 데 이어 청사 앞에 설치돼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까지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해군잠수함 '홍범도함' 명칭 변경도 필요하다면 검토하겠다고 설명했다. 흉상 철수와 이전 근거는 그의 소련공산당 가입 이력과 자유시 참변 의혹 등이다. 홍 장군이 사망한 건 광복 전이니 북한 정권과는 관련이 없고 자유시 참변 의혹도 '관련성 의혹 관련 자료가 있다'는 식으로 국방부는 설명하고 있다.
여러 비판기사가 쏟아졌다. 홍 장군 행적에 대한 역사적 고증과 철저한 사실관계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국방부는 이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남조선노동당(남로당) 조직책 출신인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물도 검토 대상이 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박 전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고 국가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신 분"이라며 빗겨 갔다. 홍 장군은 스탈린의 강제 정책에 따라 카자흐스탄으로 이주됐다가 해방 전인 1943년에 사망했다. 광복 이후 자유민주주의가 뿌리내린 국가를 경험할 수도 없었다.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과 관련해 학계 협의가 있었냐는 언론의 질문에 국방부는 "군 내부 판단으로 가능하다"는 답변을 내놨다. 군 외부의 기준과 판단은 고려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역사 관련 논란에 대한 해명이 명확하지 않으면 논란은 이념의 파도를 타고 세포 분열하듯 확산한다. 그리고 국론은 또 분열한다. 이번 논란 중심에도 국방부가 있다. 우리 군이 쏘아 올린 홍범도 장군 흉상 논란은 15년 전 불온서적 지정 논란 때를 떠올리게 한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도 아니고 더 시급한 과제도 산적해 있는데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처리해야 할 사안인지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YTN 이대건 (dgle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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