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달린 오케스트라 트럭…함신익 "소년원·소록도 60곳 누벼"

강애란 2023. 8. 31.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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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소외지역서 '심포니 송' 지휘…내달 1일부터 새 트럭으로 공연
"클래식은 나눔 없이 존재할 수 없어…예능처럼 재미있게 전달해야"
함신익 지휘자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지휘자 함신익이 지난 30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한 카페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가 끝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3.8.30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아무 데나 가서 트럭 날개를 펼치면 공연장이 돼요. 강원도 산골, 소록도, 소년원 곳곳을 다녔죠."

미국 예일대 음대 교수, KBS교향악단 상임지휘자 등을 지낸 지휘자 함신익이 이끄는 오케스트라 '심포니 송'이 트럭을 몰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닌 지 벌써 9년째가 됐다. 국립소록도병원, 육군3사관학교, 대구대학교, 진천여자중학교, 석현전원마을…. 심포니 송이 2015년부터 시작한 사회공헌 프로젝트 '더 윙'(The Wing)의 발자취다.

지난 30일 서울 서초구 한 카페에서 만난 함신익은 보라색으로 래핑 된 트럭 사진을 보여주며 "트럭을 새로 구입해 단장했다. 바닥이 3단으로 펼쳐지고, 천장도 위로 올라간다. 음향 장비도 2억원이나 들여 최신 사양으로 바꿨다"고 자랑했다.

새로 개조한 9.5톤(t) 트럭은 말 그대로 '이동하는 공연장'이다. 지난 9년간 사용하던 5.5톤 트럭보다 공간이 넓어졌다. 트럭의 덮개 부분을 펼치면 길이 11m, 높이 5m의 공연장이 된다. 이 무대에 45명의 오케스트라 단원과 협연자가 올라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낸다.

새 트럭은 다음 달 1일 서울 동작구 보라매병원역 앞 전문건설공제조합 광장에서 첫 공연을 선보인다.

함신익은 "선거 때마다 트럭에서 사람들이 에어로빅하고, 팻말을 흔들며 선거운동을 하는 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9년간 클래식 공연장이 없는 학교, 지역아동센터, 요양원, 군부대, 소년원 등 60여 곳을 찾아가 연주했다"고 돌아봤다.

이어 "소록도에서는 네다섯명 환자(한센인)를 두고 40여 명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했다. 원래 움직임이 없는 분들인데 공연이 끝나고, 앙코르곡을 원하냐고 물으니 몸을 마구 흔들어댔다"며 "군부대 공연에선 평생 큰 도시에서 떨어져 살았다는 한 군인 가족이 '클래식이 이렇게 재미있는지 몰랐다'고 고마워했다"고 떠올렸다.

심포니 송의 사회공헌 프로젝트 '더 윙' [심포니 송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문화 소외 지역을 찾아가는 '더 윙'은 프로그램부터 분위기까지 일반 공연장 공연과는 다르다.

비발디의 '사계' 같은 친숙한 곡을 통해 클래식을 쉽게 설명하고, 퀴즈를 함께 풀기도 한다. 관객들이 클래식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하고, 트럭에 올라와 직접 지휘봉을 휘두를 기회도 있다.

함신익은 "클래식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이질감'이 아닌 '동질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며 "품격 있는 클래식 곡을 연주하지만 이를 전달하는 방식은 예능처럼 재미있어야 공감을 살 수 있다. 목포 수산물 시장 김씨 아줌마가 '모차르트가 이렇게 좋아 부렸는가?'라는 반응이 나오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음악은 '서빙'(serving)이다. 듣는 이들을 섬겨야 하는데 자꾸 오케스트라가 주인처럼 군림하려고 든다. 자기들이 정한 프로그램을 듣고 느끼라는 식은 안 된다"며 "심포니 송은 '주인(오케스트라) 위주로 가지 말자'는 콘셉트를 갖고 있다. 이를 타협하지 않고 지켜나가려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더 윙'은 심포니 송 단원들에게도 뜻깊은 프로젝트다.

심포니 송은 함신익이 2014년 인재 양성을 목표로 창단한 오케스트라다. 그렇다고 학생 오케스트라는 아니다. 음악 교육을 모두 마친 젊은 연주자들에게 연주 경험을 쌓을 기회를 준다. 단원들은 최대 5년간 활동한 뒤 오케스트라를 떠난다.

함신익은 "예술인들에게는 봉사 정신이 필요하다. 클래식 음악은 나눔 없이 존재할 수 없다"며 "나 역시 미국에서 어렵게 공부할 때 후원자를 만나 성장할 수 있었다. 나중에 신세를 갚겠다고 찾아가니 '패스 잇 온'(Pass it on)이라고 하더라. 다른 사람들에게 갚아주란 것이다. '더 윙'도 그렇게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포니 송의 사회공헌 활동 '더 윙' [심포니 송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다만 민간 오케스트라가 사회공헌 사업을 이어가려다 보니 재정적인 후원이 절실하다. '더 윙' 초창기에는 3년간 노루페인트가 첫 트럭 마련과 활동비를 후원해줬고, 이후에는 기업 초청 연주회 등에서 남은 수익금으로 활동비를 채워나가고 있다.

함신익은 "우리나라는 유독 음악 분야의 사회공헌 사업이 부족하다"며 "스포츠는 유니폼에 후원사 로고를 달 수도 있으니 기업 후원이 많은데, 음악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기업 후원도 적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화 소외지역에 클래식 음악을 전파하고자 하는 뜻에 공감하는 기업이 있다면 적극 후원해주면 좋겠다"며 "트럭은 이미 준비됐으니 '○○은행과 함께하는 음악회', '△△그룹과 함께하는 공연'이라고 타이틀을 붙일 수 있다"고 웃음 지었다.

ae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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