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논단] 아,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김정구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외과 교수 2023. 8. 3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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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구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외과 교수

한국의 경제성장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은 놀라울 수밖에 없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아무것도 없는 나라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일어났던 믿기 힘든 양적 성장은 '한강의 기적'이라고도 불리며 모든 개발도상국의 성공사례처럼 얘기돼 왔다. 실제로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달러가 넘은 지 수년이 지났고, 2021년에는 일시적으로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의 나라로 도약한 적도 있다. 이제 숫자상으로는 선진국으로 분류하는 것도 큰 무리는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 삶은 왜 이렇게 어렵고 팍팍하기만 할까? 예전과 비교해서 좋아진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기성세대를 포함한 대다수의 우리는 왜 선뜻 답을 하지 못할까?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 모든 연령층에서 볼 수 있는 불만과 불안감, 그리고 청년과 노년층의 높은 자살률도 성장의 이면에 있는 분명한 현실이다. 결국은 '잘 살아보자'는 목표로 앞만 보며 달여 왔던 우리의 노력과 시간이 아쉽고 허망해지기도 한다. 이제 억울해서라도 우리가 만든 성과를 찾아야겠다.

진료 현장에서 나는 조그마한 성과를 경험한다. 직접 환자를 대면 진찰하지 않고 보호자에게 대리 처방을 하거나, 본인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각종 의료 관련 증명 서류 등을 발급하는 일은 이제 거의 불가능해졌다. 개인정보보호나 약물의 오남용 방지 혹은 환자의 권리에 대한 개념이 강화되면서 법률로서 엄격히 관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인정에 호소하며 무작정 이런 일을 요구하는 일이 있다.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고 필요한 서류 없이는 절대 안된다며 거절한다. 급한 상황이나 안면이 있는 사람이 부탁을 하면 의사인 나도 그냥 해 줘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이러세요'라는 말을 하면서 결국은 돌려보낸다. 이것이 내가 느끼는 변화된 세상이다. 딱 이만큼이다. 지난 시절 우리 사회를 덩치만 키운 것이 아니라 약간은 철도 들게 했다는 위안이기도 하다.

진료실 말고도 우리들은 꽤 자주 이런 표현을 많이 쓴다. 공공장소에서 타인을 고려하는 예절과 매너, 미성년자, 장애인, 모성과 노년 등 약자를 배려하는 분위기가 일상화된 것을 생각하면 요즘 세상이 지난 수십 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실감한다. 들쑥날쑥하던 출발시간으로 고생한 지난 시절을 이야기하시면서 출발시간보다 1시간도 더 일찍 역에 도착하려 하시는 부모님에게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그러세요. 출발 시간에 맞춰 가시지요'라고 이야기를 한다. 또 내가 지지하지 않은 사람이 선거에서 이겼더라도 잠을 잘 수 있고 다음 날 일상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이제는 다른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나라가 망하거나 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법이나 제도 혹은 사회적 분위기가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일관성 있게 황당하거나 억울한 일을 최소화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의미다. 이것이 우리가 굳이 찾아낸 지난 시절 우리 노력의 성과다.

요즘은 이런 나의 소박한 위로가 실망이 되는 일이 많아졌다. 결국 '아직도 이렇구나, 예전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구나'라는 푸념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이제 단순한 수치에 우리 국민들이 더 이상 속지는 않는다. 양적 성장이 반드시 질적 성장을 동반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5만 달러 시대가 우리를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해주리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이런 단순한 성장주의 논리가 더 이상은 설 자리가 없다. 수학만 잘하면 다른 과목이 다 해결될 것 같다는 것은 큰 착각이다.

이제 곧 결실을 축복하는 명절인 추석이 다가온다. 번듯한 외형보다는 내실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요즘, 결실은 고사하고 과거보다 더 나빠진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이러고 계십니까? 김정구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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