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샷] 샌들 패션, 14만년 전부터 시작됐다
발가락 모양 없고 끈 매단 흔적 있어
인류가 14만년 전부터 신발을 신었다는 증거가 발견됐다. 지금까지 고인류의 발자국 화석은 많이 발견됐지만, 신발이 남긴 자국은 많지 않았다. 이번 발견을 통해 앞으로 고인류의 신발이 남긴 흔적을 더 많이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남아프리카 넬슨 만델라대의 찰스 헬름(Charles Helm) 박사 연구진은 28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이크노스(Ichnos)’에 “남아공 남부 해안에서 최대 14만8000년 전에 만들어진 신발 자국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크노스는 그리스어로 발자국이란 뜻으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발자국 화석 논문들을 발간하는 학술지이다.
◇발가락 흔적 없고 가죽 띠 자국 남아
헬름 박사 연구진은 남아공 남부 해안의 세 곳에서 고인류가 남긴 발자국들을 발견했다. 가든 루트 국립공원의 클라인크란츠(Kleinkrantz)에서는 55㎝ 길이의 석판을 발견했다. 그 위에는 발자국 두 개와 발자국으로 보이는 흔적 두 개가 있었다. 발자국은 모두 가장자리가 깨끗하고 발가락 흔적이 없어 신발을 신은 발이 남긴 것으로 추정됐다. 한 발자국에는 신발 밑창에 달린 끈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홈 세 개가 있었다.
연구진은 아도(Addo) 코끼리 국립공원에서도 발자국이 남은 석판을 발견했다. 여기에도 역시 발가락 흔적이 없는 발자국 네 개가 있었다. 구캄마(Goukamma) 자연 보호구역의 석판에는 발자국이 이어진 흔적이 있었는데, 그중 세 발자국은 가장자리가 깨끗하고 발가락 흔적이 없었다.
과학자들은 석판에 발뒤꿈치와 앞부분을 이어주는 곡선 형태의 호(弧, 아치)와 발가락 흔적이 있으면 고인류가 남긴 발자국으로 본다. 헬름 박사는 “해안가에서 찾은 고인류의 발자국에서는 그런 정보를 얻을 수 없어 신발을 신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바위에 남은 모양이 실제로 신발이 남긴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실험도 진행했다. 먼저 박물관에 있는 아프리카 남부 산족(族) 원주민의 샌들을 참조해 고인류가 신었을 만한 간단한 신발을 만들었다. 소가죽 두 겹을 이어 붙여 밑창을 만들었다. 여기에 구멍 세 개를 뚫고 소가죽 가닥을 끼워 발과 고정하는 끈을 만들었다.
연구진이 이 샌들을 신고 젖은 모래 언덕 위를 걷자 바위에 남은 흔적처럼 발가락이나 아치의 흔적이 남지 않았다. 또 발자국마다 끈이 달린 곳에 작은 홈 세 개가 남았다. 클라인크란츠에서 발견한 신발 자국과 같은 형태였다. 고인류가 신발 자국을 남긴 흙이 굳어 바위가 된 것이다.
◇네안데르탈인도 신발 신었을 수도
신발 자국이 언제 남겨졌는지는 불분명하다. 일단 클라인크란츠 석판 주변의 암석은 연대가 7만9000년에서 최대 14만8000년 전으로 측정됐지만, 구캄마 석판은 7만3000년에서 13만6000년 전으로 추정됐다. 이는 어디까지나 암석의 연대이지 발자국 연대는 아니다.
신발 자국의 연대를 직접 알기 어려운 것은 선사시대 신발이나 재료가 가죽과 같은 부드러운 소재여서 지금까지 남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신발 유물은 미국 오리건주의 포트 락(Fort Rock) 동굴에서 발견된 샌들로, 9200~1만500년 전의 것이다. 유럽의 아르메니아 아레니(Areni)-1 동굴에서는 기원전 3377년에서 3627년 사이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신발이 나왔다. 아프리카 산족이 남긴 2000년 전 벽화에는 제사장이 끈이 달린 샌들을 신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앞서 유럽에서도 신발 자국들이 발견됐다. 2021년 스페인 칸타브리아대 연구진은 프랑스 남서부의 쿠삭(Cussac) 동굴에서 2만8000~3만1000년 전 신발 자국을 발견했다. 그해 그리스의 테오페트라(Theopetra) 동굴에서는 13만5000년 된 바위에서 비슷한 발자국을 발견했다. 이번 남아공 신발 자국과 연대가 비슷하다.
그리스 신발 자국이 바위와 연대가 비슷하다면 인류의 사촌인 네안데르탈인이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때 유럽에는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없었기 때문이다. 네안데르탈인은 40만 년 전 아프리카를 떠나 유라시아에 정착했다. 3만 년 전 멸종하기까지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와 수만 년간 공존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7만 년 전쯤 아프리카를 떠나 중동으로 이주했다.
◇호모 사피엔스 발자국은 15만년 전 것이 最古
헬름 박사 연구진은 앞서 지난 4월 이크노스 저널에 남아프리카 가른 루트 국립공원의 절벽에서 15만3000년 된 발자국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발자국 유적지의 연대 측정을 위해 빛을 이용했다. 발자국 화석 안팎의 석영이나 장석 알갱이가 마지막으로 햇빛에 노출되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추정하는 방식이다.
연구진은 아프리카, 아시아와 유럽 전역에 다른 고인류가 남긴 더 오래된 발자국이 있지만, 남아공의 발자국은 약 3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진화한 호모 사피엔스가 만든 것 중 가장 오래된 발자국이라고 밝혔다. 호모 속 이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발자국은 360만년 전 것들도 발견됐다.
과학자들은 발자국 화석을 통해 고인류의 생활상도 추정한다. 지난 2016년 이탈리아 페루자대 연구진은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366만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무리가 남긴 발자국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발 크기를 통해 키가 큰 성인 남성 1명과 그보다 작은 성인 여성 3명, 아이 1명으로 구성된 무리가 남긴 발자국이라고 밝혔다.
이탈리아 연구진은 발자국 구성으로 볼 때 고릴라 사회에서 우두머리 수컷이 여러 암컷과 새끼들을 거느리듯 아파렌시스 역시 같은 일부다처(一夫多妻) 사회를 구성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오늘날 인류처럼 일부일처(一夫一妻) 사회를 구성했을 것이라는 가설을 뒤집는 것이다.
아파렌시스는 최초로 직립보행(直立步行)을 한 여성 인류 화석인 루시로 잘 알려졌다. 루시는 1974년 에티오피아에서 발굴된 320만 년 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화석이다. 복원 결과 키 120㎝의 20세 전후 여성으로, 발 모양을 통해 직립보행을 했다는 점이 밝혀졌다. 루시라는 별명은 발굴 당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비틀즈의 노래 ‘루시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즈’에서 땄다.
참고 자료
Ichnos(2023), DOI: https://doi.org/10.1080/10420940.2023.2249585
Ichnos(2023), DOI: https://doi.org/10.1080/10420940.2023.2204231
eLife(2016), DOI: https://doi.org/10.7554/eLife.19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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