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백신서 반도체까지···'나노단위'로 첨단산업 꿰뚫는다
전자현미경으로 바이러스 등 관측
코로나 백신 등 신약 연구 새 지평
삼성전자 등 반도체 연구·공정에서
첨단현미경 수백 대 초정밀 탐지
韓, 세계 현미경 점유율 1%도 안돼
"내달 IMC20 발판 기술력 높여야"
2017년 노벨 화학상은 영하 200도 이하로 동결한 생체분자를 정밀하게 관찰할 수 있는 초저온 전자현미경(Cryo-EM) 기술 발전에 기여한 리처드 헨더슨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요하임 프랑크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등 3명에게 돌아갔다. 역동적인 생체분자를 급속 동결시킨 뒤 원자 수준의 3차원 구조를 관찰해 생화학 분야의 새 지평을 연 것이다.
이를 통해 살모넬라균이 세포를 공격하거나 지카바이러스가 움직이는 모습을 파악해 신약 연구의 전기를 마련했다. 항생제 등 화학물질에 저항성을 띠는 단백질, 생체리듬을 조절하는 분자, 식물이 광합성을 하도록 빛을 인식하는 분자 등도 눈으로 볼 수 있게 됐다.
앞서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팀은 1950년대 처음으로 X선으로 단백질을 관찰했다. 1980년대 초에는 세계 연구자들이 X선 결정법과 핵자기공명 분광기를 통해 각 분자들의 상호작용을 보면서 단백질·DNA·RNA 같은 나선형의 생체분자를 볼 수 있게 됐다.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분자량이 큰 단백질의 관찰에 한계가 있었다.
그 대안으로 나온 게 투과전자현미경이다. 이 현미경은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짧은 가속이 이뤄진 전자빔을 시료에 투과시켜 회절돼 나오는 전자빔을 검출해 이미지를 만든다. 원자의 구조는 물론 배열까지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헨더슨·프랑크 교수 등이 발상의 전환을 통해 큰 역할을 했다. 여기에 노벨상 공동 수상자인 자크 뒤보셰 스위스 로잔대 교수가 전자빔에서 불안정한 생체분자를 급속도로 동결하는 기술을 개발해 고해상도의 3차원 구조 분석이 가능하도록 했다. 권희석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전자현미경·분광분석팀 책임연구원은 “바이오 연구 현장에서는 첨단 현미경이 필수재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됐다”며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전자현미경의 경우 세포와 단백질 등의 고해상 3차원 구조를 분석해 의생명과학에 기여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3년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초저온 투과전자현미경(Cryo-TEM)을 통해 구조를 밝혀내면서 백신 개발에 탄력이 붙었다.
현미경은 바이오헬스 외에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에너지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도 널리 활용된다. 이제는 주사탐침현미경까지 발달하며 Å(옹스트롬·100억분의 1m) 단위까지 관측 범위가 넓어졌다. 김동익 KIST 에너지소재연구센터장은 “반도체·배터리의 구조를 ㎚(나노미터·10억분의 1m) 단위로 설계한 뒤 작동 원리와 문제 발생 여부를 초정밀 탐지한다”며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사의 연구·공정 현장에서 수백 대의 첨단 현미경이 활용될 정도”라고 했다.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등이 2010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것도 현미경을 통해 ‘꿈의 나노 물질’로 불리는 그래핀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래핀은 탄소 원자들이 벌집 모양으로 연결된 0.2㎚ 두께의 얇은 막으로 전기전도성이 뛰어나고 잘 휘어진다. 노보셀로프 교수는 당시 “재미로 세상에서 가장 얇은 막을 만드는 데 도전하다가 흑연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였다 떼어내는 간단한 방법으로 그래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고 설명했다.
현미경의 역사는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의 화학자·물리학자·천문학자인 로버트 훅은 1665년 현미경으로 코르크에서 식물세포 구조를 본 뒤 세포라는 말을 만들었다. 이후 광학현미경이 발전하며 생물의 미세 조직과 미생물을 연구하는 데 쓰였다. 1930년대부터 선보인 전자현미경은 현재 관찰 배율이 무려 수백만 배에 달한다. 다만 전자현미경은 가속된 전자가 갖는 높은 에너지로 자칫 시료 손상 우려가 있어 광원이 없는 신개념의 주사탐침현미경으로 발전하게 된다. 주사탐침현미경의 일종인 원자힘현미경의 경우 원자 지름의 수십분의 1까지 관찰할 수 있다.
프레시던스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현미경 시장은 지난해 약 120억 달러(약 15조 8300억 원)에 달한다. 이 중 전자현미경의 비중이 41.5%나 된다. 원자힘현미경의 비중은 15%가량이나 연평균 9.4% 이상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현미경 부문 세계 1위인 미국 써모피셔사이언티픽을 비롯해 미국·일본 기업이 세계 시장을 주름잡고 국산 점유율은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국내 원자힘현미경 분야를 개척한 박상일 파크시스템스 대표는 “스탠퍼드대 박사 시절 원자힘현미경 스타트업을 창업한 뒤 고도화 과정을 거쳤다”며 “반도체 분야 등 글로벌 계측장비사가 점유한 전자현미경 시장을 대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약·미세플라스틱·수질환경 분석 현미경 개발사인 LTIS의 김준휘 대표는 “스타트업 기술을 정부 조달 사업을 통해 대학과 출연연, 대기업에서 먼저 사용하는 길이 넓어졌으면 한다”고 했다.
한국현미경학회장인 신훈규 포스텍 교수는 “9월 10~15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제20회 세계현미경총회(IMC20)를 통해 국내 현미경 기술을 업그레이드하고 저변을 확대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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