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팬들은 졸지에 '명문구단 KCC'를 잃었다[초점]

이정철 기자 2023. 8. 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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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이정철 기자] 믿기 힘든 사건이 벌어졌다. 전주 KCC가 부산 KCC로 바뀌었다. 

KBL은 30일 서울 KBL센터에서 이사회를 열어 "KCC의 연고지를 전주에서 부산으로 옮기는 것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KCC는 최근 전주시와 체육관 신축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었다. 전주시는 KCC에게 약속했던 홈 체육관 신축을 차일피일 미뤘고 이에 실망한 KCC는 전주시의 체육관 건립 약속 미이행을 꼬집으며 연고지 이전을 검토했다.

하승진(왼쪽)·추승균. ⓒ스포츠코리아

KCC는 결국 연고지를 부산으로 이전하며 전주시와의 인연을 끝냈다. 2001년 5월부터 22년간 유지됐던 전주시와 KCC의 동행은 마무리됐다.

대다수의 전주팬들은 전주시를 향해 분노를 표출했다. 전주시청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전주팬들의 불만글들이 쏟아졌고 이로 인해 30일 전주시청 홈페이지 접속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사실 전주팬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전주시가 명문구단을 놓쳤기 때문이다. KCC는 평범한 프로농구단이 아니다. 울산 현대모비스와 함께 KBL을 대표하는 최고의 명문팀이다.

전주 KCC의 전신 대전 현대 시절부터 이미 2번의 챔피언결정전 우승과 정규리그 우승 3연패을 달성했다. 1997년 프로농구 탄생 후, KBL을 주름 잡았던 것은 현대의 이상민, 조성원, 추승균, 맥도웰이었다. 이상민이 경기를 조율하고 조성원과 추승균이 외곽포를 터뜨리며 맥도웰이 골밑을 지켰다.

이상민. ⓒ스포츠코리아

2001~02시즌 전주 KCC 시대에 돌입한 뒤 맥도웰이 떠났지만 이상민과 추승균, 신선우 감독은 팀에 남아있었다. 2003~04시즌엔 팀을 잠시 떠났던 조성원도 복귀해 이상민, 추승균과 다시 '이조추 트리오'를 이뤘다. 결국 신선우 감독과 '이조추 트리오'는 2003~04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합작하며 전주팬들에게 우승을 선물했다.

전주팬들은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2004~05시즌까지 2시즌 연속 평균 좌석점유율이 100%를 상회했다. 결국 KCC는 KBL에서 수여하는 '스포츠 마케팅상'을 수상했다. 비록 2004~05 챔피언결정전에서는 패배했지만 KBL 최고 인기팀으로 자리매김했다.

KCC는 이후 리빌딩에도 성공했다. 2005~06시즌부터 KCC의 지휘봉을 잡은 허재 감독은 과감한 리빌딩을 시도했다. 결국 팀의 상징이었던 조성원과 이상민이 팀을 떠났다. 2007~08시즌 이상민을 보상선수로 내주면서까지 영입했던 '국보급 센터' 서장훈도 2008~09시즌 트레이드로 KCC의 유니폼을 벗었다.

허재 감독은 대신 '최초의 한국인 NBA리거' 하승진을 필두로 외곽포를 겸비한 강병현을 추가하며 2008~09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이뤄냈다. 이후 최고의 테크니션 가드 전태풍까지 영입하면서 최고의 강팀으로 도약했다. 외곽에서는 전태풍이 흔들고 골밑은 하승진이 지배했다. '백전노장' 추승균은 뛰어난 리더십으로 팀을 하나로 묶었다.

결국 KCC는 2010~11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도 거머쥐었다. 다섯손가락에 챔피언결정전 반지를 모두 끼운 추승균의 모습은 아직도 많은 전주팬들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KCC가 시대를 지배하고 KBL 최고 명문팀으로 우뚝 선 순간이었다.

전태풍. ⓒ스포츠코리아

KCC는 이후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이뤄내지 못했다. 하지만 추승균호가 탄생하고 하승진과 전태풍이 다시 의기투합했던 2015~16시즌 정규시즌 우승을 달성했다. 이어 2020~21시즌에서도 전창진호가 송교창을 필두로 리빌딩에 성공하며 정규시즌 우승을 이뤄낸 바 있다. 명문팀의 자존심을 지속적으로 지켜온 셈이다.

KCC는 특히 올 시즌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 중 한 팀으로 꼽혔다. 허웅부터 이승현, 최준용, 송교창까지. 모두 MVP를 수상할 수 있는 국가대표 선수들로 구성했다. 다시 왕조를 꾸릴 수 있는 전력을 구축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주시는 KCC를 놓쳤다. 추후 다른 구단을 유치할 수 있어도, KCC와의 인연은 되돌리기 힘들다. KCC의 찬란한 역사도 장밋빛 미래도 이제 공유할 수 없다. 

프로농구 초창기부터 찬란한 역사를 쌓아온 KCC. 그들의 가치는 누구도 흉내내기 힘들다. 전주팬들과도 수많은 하이라이트 필름을 공유했다. 그런데 전주시는 부산시에게 KCC를 뺏겼다. 전주팬들은 졸지에 명문구단을 잃었다. 전주의 자랑이었던 KCC가 아픈 역사로 남게 됐다.

 

스포츠한국 이정철 기자 2jch422@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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