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대못] 文 ‘알박기 인사’에 계속 늦어지는 인허가

박성우 기자 2023. 8. 31.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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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안위 9명 중 5명이 文 정부 때 임명
합의제로 안건 처리… 속도 늦어져

작년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전면 폐지하고 ‘원전 최강국’을 건설하겠다고 공언했다. 새 정부는 2018년 65%까지 추락했던 원전 가동률을 81%대까지 끌어올리고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등을 추진하며 원전 정상화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을 위해 심어놓은 대못 탓에 원전 산업 정상화는 예상보다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원전 산업 회복에 걸림돌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편집자주]

지난달 27일 열린 제 180회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전체회의. 공정률 99.6%로 사실상 완공을 앞둔 신한울 2호기 운영허가 심의에서 A위원은 ‘원전의 항공기 충돌 대응’을 언급했다. 항공기 충돌 대응은 2021년 신한울 1호기 심의를 지연시켰던 쟁점이다. 당시 원전 업계에서는 1000만년에 한번 일어나는 상황을 가정해 절차를 지연시킨다는 비판이 나왔다. A위원은 이날 ‘개인적 궁금증’이라며 신한울 부지 평가에 동해안의 해안 침식이 반영됐는지도 물었다.

B위원은 신한울 인근의 울진 죽변비상활주로 폐쇄와 항공기 재해 빈도를 문제 삼았다. B위원은 또 신한울에 사용되는 광섬유 케이블의 화재 가능성을 언급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관계자는 “광케이블, 전기 케이블은 내부의 신호를 어떻게 보내느냐의 차이다. 모두 내화 성능이 확보됐다”라고 답했다.

일부 위원이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이날 신한울 2호기 운영 허가 합의는 불발됐고 원안위는 9월 7일 전체회의에서 신한울 2호기 운영 허가를 다시 논의하기로 했으나 또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원자력안전위원회 제공

◇ 합의제 원안위… 일부 위원이 인허가 지연

원전과 관련한 각종 인허가권을 가진 원안위를 비롯해 원전 관련 공공기관에는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인사들이 여전히 포진해 있다. 업계에서는 정권이 바뀌기 직전에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인사를 관련 기관에 대거 임명한 게 원전 산업 회복에 걸림돌이 된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원안위 회의에서 문제점을 지적한 A위원과 B위원도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인사다.

원안위에는 총 9명(상임위원 2명, 비상임위원 7명)이 있는데, 이 중 절반이 넘는 5명이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됐다. 정권교체 이후 임명된 4명 중 한명도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추천을 받은 인물이다.

원안위 회의는 통상 합의제로 진행되나 위원들간 이견이 큰 경우 출석위원 3분의 2 동의를 받은 뒤 안건을 투표에 부친다. 투표를 통해 과반수 이상이 찬성해야 운영허가를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탈원전에 찬성하는 인사가 많을 수록 의사결정 속도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 또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인사 중 임기가 가장 많이 남은 사람은 2024년 말에 임기가 끝난다.

그래픽=정서희

지난 2021년 신한울 1호기 승인 심사 과정에서 C위원은 ‘항공기 테러’ 등에 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운영허가를 늦춰야 한다고 했다. 당시 원안위에 참석한 정부 측 인사가 확률이 낮다고 하자 이 위원은 북한의 장사정포 공격을 언급하기도 했다. D위원은 50년간 일어났던 홍수 피해의 최대치를 원전이 버틸 수 있도록 규정한 기준이 부적합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신한울 1호기는 11차례나 회의를 반복했고 지난해 12월에야 정식 가동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일각에서는 이런 원안위 구조 때문에 신한울 2호기의 준공 시기가 늦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는 신한울 2호기 준공 시기를 연내 마무리할 계획이었으나 원안위의 허가 심의 등 행정 절차가 지연되면서 내년으로 넘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원안위는 지난해 정부평가에서 최하점수인 C등급을 맞았다. 정부는 개선사항으로 “원전 생태계 복원을 위해 기존 원전 수명연장, 신규 원전 인허가 결정이 필요하나 대국민 소통 노력 부족으로 안전성 논란이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제남 한국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이 SNS에 올린 프로필 사진. /페이스북 캡처

◇ 원자력 공공기관장이 ‘탈원전 인사’

원안위 뿐만 아니라 산하 원전 관련 공공기관장들도 전 정부에서 선임된 인사가 남아있다. 김제남 한국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과 김석철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장이 대표적이다.

대표적인 탈원전 인사로 꼽히는 김 이사장은 재단 취임 전 정의당에서 탈핵에너지전환위원장, 문 정부에서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을 지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여당 의원들의 사퇴 요구에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마찰을 빚기도 했다. 김 원장은 문재인 정부 시절 2018년 7월부터 3년간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원장을 지낸 뒤 2021년 12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장으로 취임했다. 임기는 2024년 12월까지다.

문재인 정부는 새 정부 출범 직전인 작년 3월 당시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의 4연임을 시도하기도 했다. 국내 유일의 원전 발전소 운영사인 한수원이 움직이지 않으면 원전 생태계 복원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 정 전 사장은 새 정부의 재가를 얻지 못해 연임이 불발됐다. 정 전 사장은 탈원전 정책의 대표적인 무리수로 꼽히는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있다.

한 원전 업계 관계자는 “현 정부의 원전 정책 기조에 역행하는 인사들이 관련 기관장 자리를 꿰차고 있으면 정책 엇박자가 날 수밖에 없다”며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알박기 인사가 발목을 잡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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