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훈 칼럼] ‘한 나라 두 국민’ 걱정케 하는 정율성 문제
대한민국 말살하려 한 중공군의 상징 만든 인물
‘추모 공원 안 된다’ 외친 지역의 작은 목소리들
한 줄기 빛처럼 느껴져
과거 어느 자리에서 교수 한 분이 우리가 ‘한 지붕 두 가족’이 아니라 ‘한 나라 두 국민’이 됐다고 개탄했다. 극단적 몰표가 나오는 지역감정에 대한 걱정이었다. 그 걱정을 들으면서도 아직 ‘두 국민’까지는 아니지 않으냐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광주에 짓는다는 ‘정율성 공원’을 보면서 그분의 개탄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이미 윤이상 음악제를 하는 지역도 있고, 김원봉이 단장이었던 의열단 공원이 있는 지역도 있다. 그러나 윤이상은 친북 행위를 했지만 우리 국민을 죽이고 짓밟는 데 직접 간여하지는 않았다. 김원봉은 6·25 남침 공로로 김일성 훈장을 받았으나 의열단 공원은 그 한 명을 기리는 장소는 아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육사에 세운 홍범도 동상 이전 문제도 논란이지만 홍범도 역시 정율성과는 다르다. 1920년대에 공산주의 이념을 가졌다고 무조건 배척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정율성은 6·25 남침에 직접 참전한 인물이다. 중공군가와 북한군가를 작곡했다. 군가는 군의 정신이자 상징이다. 우리 국민을 죽이고 짓밟고 통일을 가로막은 적군의 상징을 만든 사람이다. 중국 공산당원이자 중국으로 귀화한 중국인이기도 하다. 그에게 대한민국은 평생의 적이자 원수였다. 그가 쓴 중공군가의 가사는 ‘적을 쓸어버리고 마오쩌둥의 깃발을 휘날리자’이다. 그 ‘적’이 바로 대한민국이고 대한민국 국민이다. 한국의 정율성 공원을 보고 제일 놀랄 사람은 바로 정율성일 것이다.
소수의 움직임이라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런데 광주시장은 정율성 공원이 ‘광주 정신’이라고 한다. 광주 정신이 ‘민주화’이지 어떻게 정율성 추앙이 되나. 광주시장은 정치인이다. 정치인은 표를 얻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은 하지 않는다. 정율성 공원이 ‘광주 정신’이라는 주장이 광주에서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그런 말을 할 리가 없다. 정율성 공원 추진과 반대를 보며 이것은 국가와 국민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 인식 차라고 느낀다.
한국 정치 지역감정의 기원은 1971년 박정희 대 김대중 대선이었다. 그 이전의 선거 양상에서 지역감정의 흔적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정치 지역감정은 권력을 놓고 벌인 지역 대결의 성격이었다. 어떻게 보면 정치 경제적 ‘이권’ 다툼이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세계 여러 나라에도 있는 현상이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이 대북 햇볕정책을 펴면서 지역감정에 ‘북한에 대한 인식’이라는 새로운 요소가 추가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 지지 지역은 북한 우호 경향을 갖게 됐다. 386 주사파 운동권이 김대중 민주당에 합류하면서 이 경향은 더 굳어졌다. 북한에 대한 인식이 개개인의 판단이나 생각이 아니라 지역에 따라 집단적으로 갈라졌다. 심각하고 위험한 일이다. 문재인 정권 때는 북한만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에 대한 인식차까지 더해졌다.
문재인 정부가 대북전단 금지법을 통과시키려 할 때 한 음식점에서 옆 자리 손님들이 대북전단을 날려보내는 사람들을 맹비난하는 것을 듣게 됐다. 그들에게는 김정은이 아니라 대북전단을 날리는 사람들이 문제의 근원이자 나쁜 사람들이었다. 같은 지역 출신 모임으로 보이는 이들이 모두 소리 높여 분개하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정율성 공원’ 뉴스를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도 이 모습이었다.
6·25 남침은 김일성이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승인을 받고 시작한 것이다. 시작은 김일성이 했지만 북한군은 낙동강 전투에서 거의 소진됐다. 남침 3개월 만에 사실상 전투력을 상실한 것이다. 그다음 3년 가까이는 전부 중공군과의 전투였다. 한마디로 6·25는 중공군과 싸운 전쟁이다. 중공군은 화력이 강한 미군은 피하고 아직 미숙하고 빈약한 국군만 집중적으로 노렸다. 언제나 돌파구는 국군을 공격해 열려고 했다. 62만명에 달하는 국군 전사상자는 대부분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나온 피해다. 이렇게 수백만 우리 국민을 죽이고 짓밟은 중공군의 핵심을 추앙하는 것은 우리의 자기 부정이나 마찬가지다.
과문한 탓에 이미 광주에 ‘정율성로’라는 거리가 있고 ‘정율성 음악제’가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거기에 6·25 남침을 ‘항미원조’(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돕다)라고 하는 중국식 역사 왜곡까지 적혀 있다고 한다. 마치 6·25가 미국의 북침인 것처럼 조작한 용어다. 6·25가 항미원조면 대한민국은 무엇이 되나. 정율성 동요제에서 우리 어린이들이 북한같은 옷을 입고 중국과 그 국기를 찬양하는 정율성 작곡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니 기가 막힌다. 중국 관광객 유치 목적이라고도 하지만 홍보 마케팅을 할 일이 따로 있다. 과거의 적과도 관계를 맺고 지내는 것이 국제 정치다. 지금 우리와 중국이 그런 관계다. 그러나 6·25 중공군을 미화하고 추앙하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세계에 이런 나라는 없다.
‘한 나라 두 국민’을 걱정하는 중에 연평도에서 전사한 광주 출신 서정우 해병대원의 어머니가 ‘정율성 공원이라니, 이것은 아니다’라고 절규하듯 말씀하셨다. 아직 ‘두 국민’은 아니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 5·18 단체 두 곳의 반대 성명도 나왔다. ‘한 나라 한 국민’을 향한 작지만 또렷한 한 줄기 빛을 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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