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96] 견우직녀의 사랑 노래
이번 칠월칠석에도 비가 내렸다.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동쪽 견우와 서쪽 직녀 사이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 것이 견우직녀 설화다. 까마귀와 까치가 이날 은하수에 다리를 놓아주어 둘이 일 년에 한 번 겨우 만날 수 있다. 칠월칠석날에 내리는 비는 얼굴을 마주한 두 사람이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고, 다음 날 아침에 내리는 비는 헤어지는 것이 슬퍼서 뿌리는 눈물이라고 한다.
이들의 애틋한 사랑이 널리 공감을 얻었기에 견우직녀 설화는 대중가요의 소재로도 활용되었다. 1934년 강석연의 ‘견우화’, 1935년 김복희의 ‘직녀의 탄식’, 1941년 고운봉의 ‘칠석의 정’과 백난아의 ‘직녀성’ 등은 견우직녀의 설화를 다룬 광복 이전의 노래들이다. 이 중 백난아가 노래한 ‘직녀성’은 원래 박영호가 작사하고 김교성이 작곡한 것으로 광복 이후까지도 여러 차례 다시 발매될 만큼 크게 유행하였다. “오작교 허물어진 두 쪽 하늘에 절개로 얽어 놓은 견우 직녀성/ 기러기 편지 주어 소식을 주마기에 열 밤을 낮 삼아서 써놓은 글발이요”라는 2절의 노랫말에 직녀가 견우에게 전하는 간절한 그리움이 잘 나타나 있다. 본명이 오금숙인 제주도 출신의 백난아는 함흥에서 일하고 있을 당시 그곳에서 열린 콩쿠르 대회에 출전하여 가수로 데뷔했다. 광복 후 작사가 박영호가 월북하는 바람에 한동안 본래 노랫말 그대로 노래할 수 없게 되자, 반야월이 ‘추미림’이란 예명으로 노랫말을 수정하고 2절과 3절의 순서도 바꾸었다.
현대의 대중가요에서도 견우직녀 설화를 종종 볼 수 있는데, 가장 큰 인기를 얻은 노래는 김원중이 1985년에 발표한 ‘직녀에게’다. 시인 문병란이 1976년에 발표한 시를 바탕으로 김형성이 통일의 염원을 담아 가곡풍으로 작곡한 것이 재외 교포들에게 먼저 인기를 끌었다. 문병란은 국내에서도 이 노래가 퍼지길 희망했는데, 국내의 정서에 맞게끔 통기타 가수 박문옥이 새로이 작곡한 ‘직녀에게’를 통해 결국 결실을 보았다. “이별이 너무 길다”로 시작하여 “연인아 연인아 이별은 끝나야 한다. 슬픔은 끝나야 한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라는 견우의 절규로 끝나는 이 노래는 재회에 대한 비장한 의지와 신념을 담고 있다.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깝다지만 1년에 한 번이라도 만날 수 있으니 차라리 얼마나 좋은가. 하루의 만남을 위해 나머지 날들을 견디고 버틸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건 만날 수 없는 사랑, 기약 없는 이별이 아니겠는가. 중요한 것은 거리와 횟수가 아니라 마음이다. ‘기다린다’가 ‘사랑한다’의 다른 말이며,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 기실 그리움이라는 걸 견우직녀의 사랑은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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