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책, 모을 것이냐 읽을 것이냐
일주일에 한 번 도서관에 간다. 책장을 가득 채운 책을 보면 기분이 좋다. 우주를 바라보는 것처럼 경이롭다. 나를 읽으라고 하는 책의 목소리가 들린다. 읽고 싶은 책 중 두 권만 빌렸다. 그런데 작업실 책꽂이에 안 읽은 책이 수두룩하다. 이북 리더에도 안 읽은 전자책이 많다. 산 책은 책꽂이에 얌전히 방치하고,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을 반납일까지 못 읽고 반납한 적 있다. 하도 이런 일을 반복하다 보니, 독서가 아니라 책 수집이 취미가 됐다. 책을 읽고 소화하는 속도가 책을 수집하고 싶은 의욕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런데 비상식량을 모으는 것처럼 책을 수집하고 있다. 책 수집을 멈출 수 없다. 어디선가 또 새 책을 샀냐고 하는 책의 호통이 들리는 것 같다.
이제 책 수집은 습관이 됐다. 책을 많이 모으면 지적 수준이 올라가는 것도 아닌데, 나는 계속 책을 모았다. 책을 펼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책은 읽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여러 가지 역할을 해준다. 방대한 지식 창고, 무엇이든 자세하게 보여주는 렌즈, 마음의 안정제, 옳고 그름과 좋고 싫음을 판단하는 기준, 기쁨과 감동을 주고 한없이 우울할 때 안아 주는 친구…. 당장 읽지 않아도 책을 곁에 두고 싶다. 독서로 얻은 게 많다. 책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수집만 하고 책을 안 읽으면, 책을 괴롭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책 속을 탐험하고, 그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책 수집을 멈추고, 수집한 책부터 먼저 읽기로 했다. 책을 많이 읽겠다는 목표 대신, 한 권 읽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문장 한 줄, 단어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읽었다. 간신히 책 한 권을 다 끝내고 나니 마음이 놓인다. 책 한 권만 읽어도 좋지만, 어쩐지 한 권만 읽기는 허전하다. 얼른 다른 책도 읽고 싶다. 이 세상에 책이 얼마나 많은데. 앞으로도 더 많은 책이 세상에 나오겠지. 책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래서 나는 책 수집을 멈출 수 없다. 책 수집도 좋지만, 그동안 모은 책부터 읽어야지. 수집만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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