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존의 窓] 승리보다 전우애… 세계 상이군인들의 스포츠 정신을 응원합니다

에릭 존 보잉코리아 사장·前 주태국 미국 대사 2023. 8. 31. 03: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러스트=이철원

어느 국가에서 자랐는지와 무관하게 스포츠는 많은 이의 인생에서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내 고향인 미국 인디애나주(州)는 농구에 대한 열정이 각별한 것으로 유명하다. 학교 체육관, 공원이나 놀이터 등지는 언제나 농구를 즐기는 사람들로 붐비고, 각 집 차량 진입로에 농구대 하나쯤은 기본으로 설치되어 있다. 여름이면 베이커 파크라는 동네 공원, 겨울이면 YMCA 센터에서 농구 리그전이 열린다. 10대 청소년 시절 나는 20대 ‘늙은이들’ 경기하는 걸 보겠다며 저녁 어스름이 깔릴 때까지 체육관에 남곤 했다.

스포츠에서 참 많은 걸 배웠다.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코트로 향했고, 종일 지치는 줄도 모르고 농구하며 심신을 단련했다. 팀의 승리를 위해 남다른 각오로 경기에 임할 때 배운 것은 나눔, 리더십 그리고 희생정신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특별한 잔상으로 남은 것이 있다면 바로 지역사회가 스포츠로 하나 되는 모습이다. 여름밤이면 동네 공원은 늘 북적였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코트를 에워싸고 동네 최정예 선수의 플레이 구경에 여념이 없었다. 사이드라인에 아이들이 양반 다리를 하고 앉으면 그 뒤로 어른들이 두세 열을 이루고 서서 목청을 높이며 응원했다.

한국에서도 이런 스포츠의 영향력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1980년대의 권투, 야구, 그리고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의 승리를 부르짖던 붉은 악마의 물결은 스포츠를 통한 단합 효과를 확인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공동체 의식을 고취하고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도록 하는 스포츠의 순기능을 다시 한번 확인할 기회가 있었다. 올해 9월 6일부터 16일까지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릴 ‘2023 인빅터스 게임(세계상이군인체육대회)’ 출전을 앞두고 훈련에 매진하고 있는 한국 대표 선수단 11명을 예방하느라 얼마 전 수원에 있는 보훈재활체육센터를 방문했다. 2014년에 창설된 인빅터스 게임은 복무 중 부상당한 현역·퇴역 군인들을 위한 스포츠 대회로 2년마다 열린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을 중심으로 경기가 이루어지다 22국으로 규모가 확대됐다. 특히 올해 대회는 한국이 두 번째 참가한다.

보훈재활체육센터에서 즐겁게 훈련하는 선수들과, 이들의 능력을 믿고 전폭 지원을 아끼지 않는 스태프들을 만났다. 선수들의 부상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청력 손상부터 사지 상실, 척추 손상에 이르기까지 누군가의 삶을 한순간에 완전히 무너뜨릴 만한 고난이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스포츠와 팀워크의 힘을 이용해 상이군인 선수들의 회복과 재활, 역경 극복을 위해 힘쓰는 모습은 실로 감동적이었다. 훈련 현장은 절망과 무기력은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삶에 대한 희망과 활기, 생동감으로 가득했다.

탁구 훈련장에 들어서니 선수 대부분이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역대 패럴림픽에서 금메달을 여럿 따낸 선수도 있었다. 핸드 사이클링, 사격, 럭비 역시 마찬가지였다. 훈련은 고강도였다. 꾸준한 운동으로 완성한 다부진 체격과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집중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눔, 리더십 및 희생정신을 실천하는 선수단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선수단과 지원단은 종목과 무관하게 동료들의 컨디션과 대회 준비 경과를 면밀히 살피고 있었다. 오늘 이 자리에 오기까지 따른 두 가지 방식의 희생에 대해 누구보다 서로를 잘 이해하기 때문이었다. 대회를 앞두고 매일 반복되는 고강도 훈련, 그리고 조국을 위해 싸우다 부상을 입고 송두리째 변해버린 삶을 고스란히 인정하고 감당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내게 깊은 울림을 준 것은 연세 많은 선수에 대한 배려와 스포츠를 대하는 이들의 자세였다. 베트남 전쟁에서 부상당한 어르신은 대부분이 70대였고, 더 이상 격렬한 스포츠에 몸담기엔 무리였다. 하지만 론볼 팀 수장으로 활약하며 여전히 세계 경기에 출전해 순위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가중되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휠체어에 앉은 몸으로 여느 선수와 마찬가지로 근력 유지를 위해 체력 단련실에서 역기를 들고 유연성과 순발력 강화를 위해 에어로빅 등 다양한 훈련을 병행하고 있었다.

이번에 상이군인 선수단을 만난 것은 나 역시 독일 인빅터스 게임에 참석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한국 대표단에게 그곳에서 한국 팀의 승리를 응원할 것이라 약속하자 그들은 되레 인빅터스 게임은 특정 팀의 승리보다는 스포츠 정신을 응원하는 자리라고 일깨워 주었다. 물론 경기에서 이기길 바라지만 전 세계 상이군인 선수들과 전우애를 다지고 한 공동체를 형성하기를 더욱 기대하고 있었다. 상이군인 선수들이 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당당히 수행할 수 있도록 모두가 진심 어린 격려와 성원을 보내주길 바란다. 전 세계 상이군인의 숭고한 공헌과 희생에 깊은 감사와 찬사를 보낸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