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올림픽 보안 위해 ‘450년 역사’ 센강 부키니스트 철거 논란[글로벌 현장을 가다]

조은아 파리 특파원 2023. 8. 30.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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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근처의 헌책 노점상 ‘부키니스트’에서 시민들이 오래된 책과 잡지 등을 살펴보고 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조은아 파리 특파원
24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성당 근처 센 강가에 있는 헌책 노점상 부키니스트(Bouquinistes) 거리. 짙은 초록색 매대가 강변 둑을 따라 줄줄이 설치돼 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프랑스계 미국 작가 조너선 리텔의 ‘호의적인 사람들’ 같은 명작들이 누렇게 바래긴 했지만 비닐로 깔끔하게 포장돼 꽂혀 있다.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헌책과 파리 풍경을 담은 포스터나 엽서를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이곳에서 만난 인도인 여성 관광객은 “이곳에 오니 파리 분위기를 물씬 느끼게 된다”고 했다.

관광객들은 한껏 들뜬 분위기지만 이들을 맞는 부키니스트들 속내는 복잡했다. 경찰 당국이 내년 파리 올림픽 기간(7월 26일∼8월 11일)에 일시적으로 매대 철거를 명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지식인들을 비롯한 사회 각계에서는 부키니스트 철거를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부키니스트는 450년 전통을 자랑하는 프랑스 상징이기 때문이다.》



당국 “테러 방지 위해 불가피”

부키니스트는 파리 센강 좌안(左岸) 퐁마리에서 루브르박물관 건너편까지 이어진다. 부키니스트란 말은 헌책이란 뜻인 ‘부캥(bouquin)’에서 유래했다. 16세기 센강 둑에 처음 등장해 군주제를 반대하고 시민 의식을 고취하는 서적들을 전파하는 창구가 됐다. 하지만 절대왕정이 이들을 탄압하며 1649년 운영이 금지됐다. 이후 귀족과 성직자 전유물이던 서적이 대중화되며 부키니스트도 다시 명맥을 잇게 됐다.

1762년에는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사전에 처음 이름을 올렸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번성하게 된 부키니스트는 1859년 드디어 합법적으로 영업할 수 있게 됐다. 1991년 센 강변 약 3km에 늘어선 부키니스트 900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450년 역사를 자랑하는 부키니스트에 프랑스 경찰 당국이 일시 철거 명령을 내린 까닭은 올림픽 개막식이 여름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주경기장 밖인 센강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각국 선수단이 센강에서 배를 타고 입장하기 때문에 보안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파리 경찰은 부키니스트 매대에 테러리스트가 폭탄이나 무기를 숨길 확률이 낮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부키니스트들은 개막식 때 문을 닫는 정도는 협조할 수 있지만 아예 매대를 들어내는 것은 과하다고 주장한다. 프랑스 AFP통신에 따르면 전체 부키니스트 88%인 200명이 당국 퇴거 요청에 반발하고 있다. 제롬 칼레 부키니스트협회장은 “우리는 파리의 주요 상징이고 450년간 센강에 자리하고 있었다”며 “우리를 사라지게 하는 건 에펠탑이나 노트르담 대성당을 해체하는 것만큼 터무니 없는 일”이라고 일간 르몽드에 밝혔다.

“철거 15일간 생계 막막”

현장에서 만난 부키니스트들은 당국 방침대로 올림픽 기간 15일 동안 문을 닫으면 생계에 큰 지장이 생긴다고 우려했다. 생 미셸 둑 부근 부키니스트에서 6년째 일하는 브누아르 솔태니 씨는 기자에게 “15일간 돈을 벌 수 없는데 정부는 철거하라고 하니 너무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매대용 박스가 손상될 것이란 지적도 있다. 2년째 부키니스트를 하는 필리프 뒤센 씨는 “헌책이 진열된 상자는 매우 약해서 한번 뜯어내면 손상될 우려가 있다”며 “경찰 당국이 우리를 철거시킬 게 아니라 안전사고를 예방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칼레 협회장은 퇴거 과정에서 상당한 비용이 발생된다고도 했다. 부키니스트협회는 철거할 경우 전체 매대의 59%에 해당하는 박스 약 570개가 파손될 것으로 추정했다. 파손된 박스를 수리하고 개조하는 데만 150만 유로(약 21억5400만 원)가 들 것이라고 추산한다.

지식인 사회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저명한 사회학자이자 철학자 에드가르 모랭과 역사학자 모나 오주프 등 프랑스 지식인 40여 명은 9일 르몽드 기고를 통해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대중문화유산을 보존하기는커녕 소중히 여기는 경향도 거의 없다”며 “진정한 가치를 충분히 숙고하지 않고 있다”고 당국의 부키니스트 철거 방침을 비판했다.

논란이 커지자 파리시는 유화책을 내놓고 있다. 부키니스트 매대 철거 및 재설치 비용은 물론이고 잠재적 파손 비용도 지불하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센 강변에서 밀려나는 부키니스트들이 올림픽 기간 관광객을 맞을 수 있는 ‘서점 마을’을 조성하자는 아이디어도 제시했다.

노숙인 퇴거 방침도 논란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부키니스트들과 함께 도심 노숙인들도 퇴거 요구를 받고 있다. AFP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는 올림픽 개막 전에 이 노숙인들을 파리 밖으로 내보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올 3월부터 프랑스 전역에 노숙인 임시 수용 시설 설치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림픽을 앞두고 파리에 숙박난이 예상돼 지금처럼 노숙인에게 저렴한 호텔을 임시 숙소로 제공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올리비에 클라인 주택장관은 최근 의회에서 “노숙인을 받을 수 있는 호텔 수용 능력이 3000∼4000곳 줄어들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 대비할 의무가 있다. 긴급 숙박이 필요한 이들에게 지방 숙박 공간을 제공하려 한다”고 노숙인 이주 방침 취지를 설명했다.

이에 대해 권위주의적 정책이란 비판이 나온다. 극좌 성향 정당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 아드리앙 클루에 의원은 “프랑스 정부가 2024년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와 관광객들 눈에 띄지 않도록 노숙인을 강제로 숨기는 권위주의 정권 방식을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방정부에서도 중앙정부의 일방적인 정책이라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인구 1만8000명인 프랑스 북서부 소도시 브뤼의 필리프 살몽 시장은 다음 달부터 2024년 말까지 3주마다 노숙인 50명을 수용하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밝혔다. 살몽 시장은 “우리 시는 이미 과포화 상태”라고 강조했다.

노숙인이 열악한 주거 환경으로 떠밀리면서 인권 문제가 불거질 조짐도 보인다. 살몽 시장은 파리 노숙인이 이주할 땅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노숙인에게 주택을 제공하는 건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절한 조건을 갖춘 다음 (주택이) 제공돼야 하는데 (해당 지역은) 중금속과 휘발유로 오염돼 있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주거 및 빈곤 관련 비영리단체 아베피에르재단은 파리 노숙인 퇴거 정책에 대해 “투명성이 그다지 높지 않다”며 “이주가 급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노숙인 이주 문제는 과거 여러 올림픽 때도 해당 국가의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중국 정부는 베이징 노숙인을 고향으로 돌려보냈고 2016년 리우 올림픽 당시에는 노숙인이 한밤중에 도심 관광지에서 쫓겨났다고 AFP는 전했다.

조은아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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