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일본인들, 집단에 매몰돼 폭주...그것이 학살이고 전쟁”

도쿄/성호철 특파원 2023. 8. 30.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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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대지진 때 ‘후쿠다무라 사건’ 日서 9월 1일 영화 개봉... 모리 다쓰야 감독 인터뷰
일본 영화 ‘후쿠다무라 사건(福田村事件)’은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인 9명이 조선인으로 오인돼 일본인들에 의해 살해된 사건을 다뤘다. 관동대지진 100년인 오는 9월 1일 영화 개봉을 앞둔 모리 다쓰야(森達也·67) 감독. /성호철 특파원

“관동대지진이 터지고 5일 뒤, (도쿄 옆에 있는) 지바현의 후쿠다(福田)라는 작은 마을(村·무라)에 일본인 보따리상 15명이 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들을 조선인이라고 착각하고는 유아와 임신부를 포함해 9명을 살해했습니다. 살해 현장에는 마을 사람들 수백 명이 모였다고 합니다. 개인일 때는 선량한 일본인들이 집단으로서는 얼마나 잔혹했는지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30일 도쿄의 한 사무실에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후쿠다무라 사건(福田村事件)’을 제작한 모리 다쓰야(森達也·67) 감독을 만났다. 영화는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의 광기가 만들어낸 뒤틀린 일본사(史)를 다뤘다. 대지진 직후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에 수많은 조선인이 학살되는 와중에 일부 일본인 피해자도 있었던 것이다. ‘후쿠다무라 사건’은 관동대지진 100년인 9월 1일 일본 상영관 100곳가량에서 개봉한다. 다음 달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초청받았다.

모리 감독은 사건에 대해 “집단 살인인데도 재판에선 8명이 수년에서 최대 10년 형량을 선고받았고 그마저도 3년 뒤에 모두 석방됐다”며 “후쿠다 마을의 주민들은 돈을 갹출해 살해범 재판의 변호사비를 댔고 나중에도 지원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을 마을을 지킨 영웅으로 보는 마을 사람들도 있던 것 같다”며 “결국 현장에 있던 수백 명 주민들은 모두 공범(共犯)이자 가해자였다”고 했다.

-당시 (한국인이 정확하게 발음하기 어려웠던) ‘주고엔(15엔)’ 발음을 잘 못하면 학살당했다는데.

“멀리 있는 시코쿠섬의 가가와현(香川縣)에서 온 보따리상 가운데 9명이 자경단에게 살해된 사건이다. 지바현의 작은 마을인 후쿠다 사람들은 평소에 조선인과 만난 적이 없었을 것이다. 시코쿠 사투리를 듣고는 조선인으로 착각한 것이다. 보따리상들은 자신들은 일본인이라고 살려달라며 기미가요(일본 국가)를 불렀다. 마을의 자경단은 거짓말이라며 살해했다.”

-이 사건은 명백히 재판 기록이 있는 사실이다.

“8명이 살인죄로 기소됐다. 지바현의 현지 신문도 기사를 썼다. 당시 조선인을 살해한 사건 재판도 몇 개 있었는데 다들 집행유예였다. 하지만 후쿠다무라의 가해자들은 전원 실형 선고를 받긴 했다. 이들은 3년 뒤에 모두 풀려났다. 마을 사람들은 돈을 모아 변호사 비용을 댔다. 은연중 본인도 공범이라고 인식하고 있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왜 ‘조선인은 죽여도 된다’고 믿었을까.

“당시 일본은 식민지 병합한 조선인에게서 땅을 뺏고 지배하면서 2·3등 국민으로 취급하면서도 한편으론 꺼림칙했을 것이다. 당시 일본 경찰 권력의 상층부는 직전에 조선총독부에 근무한 사람들로, 3·1운동을 경험했다.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킬까봐 속으로 두려웠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것도, 당시 일본 지배세력에겐 충격이었을 것이다. 조선인을 하찮게 보면서도 두려웠던 것이다. 관동대지진이 터지고 일본 내각부가 조선인 폭동설을 전파했고, 혼란과 두려움에 싸인 일본인들 사이에 단숨에 불이 붙었다.”

-일본인 집단에 대한 사건을 영화로 만든 이유는.

“이전에 옴진리교의 살인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취재하면서 옴진리교 신자들이 온화하고 선량한 걸 알고 충격받았다. 사악하고 흉포한 신자들이 아니었다. 장애인 시설에서 자원봉사하던 한 신자는 ‘진정으로 장애인의 영혼을 구하고 싶다’고 고민하다가 ‘세계를 구제한다’는 교리를 믿고 옴진리교에 들어왔다. 후쿠다무라 사건도 마찬가지다. 평범한 사람이 잔학한 짓을 할 때, ‘집단’이 하나의 키워드다. 집단에 매몰될 때 폭주한다. 그게 학살이고 전쟁이라고 본다.”

-일본 관객이 싫어할 주제인데 제작비는 어떻게 마련했나.

“총 1억엔(약 9억원) 정도 들었다.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2400명에게서 기부를 받았다. 배급사 등 7개 회사가 일부 댔고 일본 예술문화진흥기금에서 1000만엔(약 9000만원)을 받았다. 모든 일본인들이 봤으면 좋겠다. 요즘 ‘조선인 학살은 없었다’고 진짜로 믿는 일본인이 늘고 있다. 심지어 ‘당시 조선인이 진짜 우물에 독을 탔다’고 믿는 일본인도 있다. 당장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조선인 희생자 추모식 때 추모사도 안 보낸다. 아베 신조 전 총리 때부터, 일본에 안 좋은 얘기는 ‘자학 사관’이라며 없던 것으로 하자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난징대학살도, 종군위안부도 없었다면서. 그 이유는 선량한 일본인이 그런 일을 할 리 없다는 식이다.”

-한국에서는 언제 개봉하나.

“한국의 여러 배급사와 접촉하고 있지만 개봉 결정된 곳은 아직 없다. 작년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프레젠테이션했는데 한국인들은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다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잘 알지도 못했고, 얘기해도 무관심이었다. 지인에게서 ‘한국인 사이에는 어차피 당시 학살당한 조선인은 반(半) 쪽발이(일본인을 비하하는 표현)라는 인식이 없지 않다’라는 말을 들었다. 충격이었다. 수천명에 이르는 조선인 학살 피해자들이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잊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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