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장례식…사람을 지우는 일

신동욱 기자 2023. 8. 30. 22: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노 땡큐!]

일러스트레이션 슬로우어스

“혼인신고 하러 왔는데요.”

경기도 하남시청 민원실, 지난 2월의 어느 날 나는 이 말을 들으며 울음을 참고 있었다. 어머니의 사망신고를 하러 온 내 곁에서 누군가는 새로운 시작을 등록하고 있었다. 시청 가족관계등록부에서 하는 일이 사망신고·혼인신고·출생신고 같은 일이구나, 어머니도 저런 시절이 있었겠지, 생각이 스쳤다. 그렇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가장 하기 싫었던 일, 사망신고를 했다. 국가가 직계비속인 나에게 부여한 의무다. 사망 한 달 이내에 신고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내게 된다. 그렇게 어머니를 지우는 일이 시작됐다. 어머니의 가족관계증명서에 ‘사망’이란 글자가 찍히고, 내 주민등록등본은 한없이 외로워졌다. 20년 동안 어머니와 내가 두 줄로 나오던 주민등록등본이 나 홀로 한 줄이 되니 백년 동안의 고독이 밀려오는 듯했다.

군대 이후 가장 하기 싫은 의무

유산이 없지는 않으니 상속세 신고도 해야 한다. 역시 국가는 나에게 고인의 사망 뒤 6개월 이내에 상속세를 신고할 의무를 부과한다. 병역 이후에 가장 하기 싫은 의무다. 6개월을 넘기면, 상속세의 20% 가산세를 부과한다. 만약 상속세가 1천만원이면, 200만원이 가산세다. 대신해줄 사람도 없으니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 갑자기 사고로 어머니를 잃은 이에게 6개월은 길지 않다. 누구를 만나고 서류를 떼고 할 힘도 없고 쳐다보기도 싫어 미루고 미루다 6개월 만기를 코앞에 두고 세무사를 만났다. ‘다행히’ 상속세를 낼 만큼 유산이 많지는 않다고 한다. 그래도 가족이 해야 할 일은 남는다. 일단 어머니가 남기신 은행 잔고를 일일이 은행마다 상속인 모두가 주민등록등본, 기본증명서를 가지고 가서 찾아야 한다. 상속세 신고에 필요한 서류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 여기서 끝났으면 좋겠는데 끝이 아니다. 어머니 명의의 작은 부동산이 있는데 상속인에게 명의를 넘기고 취득세를 내야 한다. 상속세만 생각했지 이걸 잊고 있었다. 부랴부랴 법무사를 만나 등기 넘기는 일을 맡긴다. 이것도 역시 6개월 안에 끝내지 않으면 가산세 20%를 내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갔다가 취득세가 생각보다 많아 놀랐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40년 동안 어머니와 나는 경제적으로 보면 ‘배우자’ 관계에 가까웠지만 상속관계가 된다. 돈을 냈으니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지뢰밭의 연속이다. ‘국가 실수’의 피해자가 된다.

“신○○씨가 누군가요?”

취득세 신고 서류를 낸 다음날 법무사가 전화로 묻는다. 어머니의 가족관계등록부에는 나오지 않는 이름이다. 부동산 상속을 하려면 가족관계등록부만 아니라 증조할아버지까지 나오는 고릿적부터 호적등본을 떼서 내야 하는데, 거기에 이런 이름이 나와서 등기관이 명의이전을 보류했단다. 사연이 있어 30년 전 우리 부모님이 출생신고를 했으니 어머니 가족관계등록부에 그 누나의 이름이 나와야 하는데, 전산화 과정에서 오기로 누락된 것으로 추정된다. 정식 입양이 아니라서 이름이 나오지 않는 줄 알았다. 여하튼 수십 년이 지나 실수한 공무원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공무원의 실수를 바로잡을 ‘의무’는 유가족에게 주어진다. 지방에 있는 누나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필요한 서류를 받으러 고속철을 타고 내려갔다. 함께 주민센터에 가니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을 하려면 시청에 신청하고 법원을 거쳐야 한단다. 실수는 국가가 했는데 수고는 우리가 해야 한다. 내가 하면 차라리 괜찮은데 당사자가 실수를 일일이 고쳐야 하니 애먼 누나만 번거롭게 생겼다. 다행히 누나가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슬픈데 지친다

어쩌면 엄마의 이름을 지우는 일은 길게 보면 장례를 치르는 과정일 수 있겠다. 가족의 과거와 대면하는 일이기도 하다. 켜켜이 쌓인 국가의 실수를 국민이 고치는 수고도 해야 한다. 슬픈데 지친다. 이제 엄마의 휴대전화 번호가 남았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