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밈’ 유행에 따라 팔았는데 국정원까지 조사…김정은 티셔츠 ‘촌극’
윤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서
‘공산전체주의 선동’ 언급 후
보수층 ‘이적물 판매’ 고발
운영자 “7년간 처음 있는 일”
문제없지만 판매 중단키로
네이버에서 패러디 티셔츠를 판매하는 A씨는 지난 24일 의문의 번호가 찍힌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자신을 국가정보원 소속이라고 밝힌 발신자는 A씨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신고가 접수됐으며, 강원도 사무실을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A씨는 30일 “7년 동안 쇼핑몰만 운영했는데 보안법 위반이라고 해서 당황했다”고 말했다.
A씨가 판매한 ‘김정은 티셔츠’(사진)가 문제였다. A씨의 쇼핑몰은 명품 ‘GUCCI’의 철자를 ‘AGUCCIM(아구찜)’으로 바꾼 티셔츠 등 각종 패러디 티셔츠를 판매한다. 그중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얼굴이 인쇄된 상품이 있었는데, 일부 시민단체가 이를 “이적물 판매”라며 국정원과 경찰에 고발한 것이다.
A씨를 고발한 공권력감시센터(대표 문수정) 등 단체는 “해당 티셔츠는 김정은에 대한 친밀감을 증진하는 모습을 넘어 핵실험, 탄도미사일 발사, 간첩 남파, 무력도발 등 대한민국을 파괴, 전복하려는 활동을 일삼고 있는 반국가단체의 수괴를 찬양, 선전하는 것”이라면서 “결과적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고발장에 적었다.
공산주의 반국가단체 수괴 찬양이라는 단체의 주장과 달리 국정원 직원은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A씨에게 말했다. A씨는 “(국정원 직원이) 판매 수량도 200건밖에 안 되고 법적으로도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러나 국정원은 A씨에게 판매를 중단하라고 했다. A씨는 “당장 내리라고 할 권한은 없지만 판매량이 많아지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해 회의 끝에 상품을 내렸다”고 했다.
A씨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자 당시 온라인 커뮤니티엔 ‘전쟁 시 최고의 방탄복’이라며 김 위원장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 사진이 떠돌았다. 북한이 전쟁을 시작하더라도 김 위원장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는 쏘지 못할 것이라고 비웃는 내용이었다. 이런 ‘밈’이 유행하자 여러 업체가 ‘김정은 티셔츠’를 팔기 시작했고, A씨 역시 후발주자로 참여했다는 것이다.
1년 가까이 팔아온 티셔츠를 두고, 공격이 시작된 때는 광복절이었다고 한다. 지난 15일을 기점으로 “빨갱이는 북한으로 가라”라는 식의 상품평이 달리기 시작하더니, 지난 24일과 25일 신고와 고발이 이어졌다. 공교롭게도 윤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왔다”고 말한 뒤였다.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의 이런 발언이 여론의 분열을 심화할 것이라고 했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해놓고선 시민사회를 악마화했다”면서 “이념의 시대가 끝난 지 수십년이 지났는데도 정치 양극화를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자유민주주의라는 게 옛날처럼 ‘때려잡자 공산당’이 아니다”라고 했다.
A씨는 “업체끼리 특허를 놓고 다투다 신고하는 경우는 있어도 이런 식의 상황에 놓여본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회가 갑자기 경직된 기분”이라고 했다.
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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