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도시라는 회집체

기자 2023. 8. 30.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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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파트엔 주민들끼리 소통하는 단톡방이 있다. 아파트 개·보수 등 정보 공유는 물론이고 그 안에서 무료 나눔도 이루어진다. 어느날 아파트 화재경보가 울렸을 때 경보 발원지를 찾는 데에도 단톡방이 한몫 톡톡히 했다. 단순한 단톡방 하나만으로도 도시를 살아가는 재미가 느껴진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최근 ‘스마트 도시’라는 개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스마트 도시란 정보시스템 연결망을 통해 네트워크화된 도시를 일컫는다. 주로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교통 흐름, 공기 오염, 에너지 사용 등의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그로부터 산출되는 데이터를 통해 시민 생활의 편의성을 높인다는 개념으로 출발한 정책 사업이다. 이 사업의 핵심에는 ‘도시의 문제’를 ‘테크놀로지’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문제를 기술이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은 일종의 테크노피아적 믿음에 근거한다.

이런 발상 뒤에 자본과 비즈니스적 구상이 숨어 있음은 당연하다. 민간 거대 정보통신 업체들이 지자체의 도시 설계 과정에 깊숙하게 결합해 도시를 기반으로 하는 투자 시장을 창출한다. 그 안에서 기업과 비즈니스는 도시를 하나의 거대한 상품시장이자 고용시장으로 만들어간다. 물론 이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도시 전체를 각종 센서, 디지털 키오스크, 사물인터넷, 공공 와이파이, 감시카메라 등으로 채워가는 것이 과연 도시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길인지는 불분명하다. 투자 대비 효과가 얼마나 되는지는 검증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부지불식간에 도시는 ‘테크놀로지 팩터’ 중심이 되었고, 반대로 ‘휴먼 팩터’는 오히려 간과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사람 중심의 거버넌스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2010년 이후 시민 거버넌스 개념으로서 ‘스마트 시티즌’ 개념이 등장했지만, 그 비중은 여전히 미약하다.

현대 사회에 들어서면서 모든 것이 테크놀로지 중심으로 전개되는 반면, 왠지 모르게 인간은 늘 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이거나 혹은 ‘버그’를 일으키는 존재로 인식된다. 테크놀로지는 그 문제를 ‘해결’하고 휴먼 에러를 최소화하는 해결자를 자처한다. 예컨대 IBM, CISCO 또는 Siemens 등이 도시를 살리는 슈퍼맨이 되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단지 데이터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원자화된 개별자들로 인식된다. 살아가는 ‘시민’들의 참여나 집합지성은 점차적으로 후경화된다.

나는 스마트 도시의 테크놀로지 집중 모형이 정말로 ‘도시 문제들’을 해결해 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지금까지 세계의 스마트 도시들이 주목해온 문제들은 주로 도시 행정, 교통, 환경, 에너지 등의 부문에 집중돼 있었다. 반면 도시가 진정으로 맞닥뜨리고 있는 또 다른 중핵적 문제들, 예컨대 지방도시 소멸, 부동산 가격급등(락), 계층 양극화, 청소년 일탈과 마약, 과잉 교육경쟁과 사교육,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 등은 회피되고 있다. 왜냐하면 이런 문제들은 센서와 데이터 혹은 인공지능(AI)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시란 일종의 ‘집합적 지능’을 가진 생명체 같은 것일 수 있으며, 그러한 도시 전체가 감각과 신경망, 지능을 가진 회집체(assemblage)처럼 작동하는 것을 상상해 본다. 이때 기술이 도시 문제를 모니터링할 수는 있지만 해결을 위한 결단은 시민들의 몫이다. 도시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휴먼 팩터가 전면에 나설 수 있는 플랫폼과 프로토콜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민들의 집단지성을 성장시키고, 그것과 ‘스마트’ 인공지능의 연결을 통한 공진화를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답은 ‘연결’과 ‘소통’ ‘학습’에 있을지 모른다. ‘스마트’ 테크놀로지가 연결성을 통해 현실을 감지하고 학습하는 것처럼, 도시의 시민들도 서로 연결되고 토론하며 집합적 생각을 진화시켜 갈 수 있는 기회와 플랫폼이 적극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갈라진 이해관계를 이어 붙이고 공존할 수 있는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도시 플랫폼이 요청된다.

최근 포스트 휴먼적 관점에서 도시는 생명과 물질, 인간과 비인간이 공생하며 공진화하는 공간이다. 그 공간 자체가 하나의 거대 기억체이며 학습하는 체계이다. 도시라는 회집체는 인간을 가르치는 학습공간이 된다. 예컨대 독일 베를린에 가면 유대인 묘지, 나치 박물관이 도시 한가운데 있으며, 베를린 장벽의 유적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도시 전체가 역사성과 미래적 가치를 가르치는 커다란 학교이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 기껏 세워놓은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치워버리지 못해 저리도 난리를 치고 있지 않는가?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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