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사형 제도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7년 12월 29일, 검찰에 ‘사형 집행 지침’이 내려갔다는 얘기를 어느 법조 기자가 들었다. 당시 법무장관에게 확인차 전화를 걸었더니 장관이 펄펄 뛰었다고 한다. “먼저 보도하면 교도소 난리 난다. 사형수들이 가만히 있겠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 가족은 얼마나 큰 고통을 받겠냐. 기자도 사람 아니냐”고 했다. 결국 기자는 ‘사형 예고 기사’를 못 썼고, 다음 날 새벽 23명 사형이 집행됐다. 우리나라 마지막 사형 집행이었다.
▶그때부터 13년 후인 2010년 3월 다시 사형 집행이 논란이 됐다. 아내와 장모 등 여성 10명을 살해한 강호순이 기소된 이듬해였다. 당시 이귀남 법무장관은 청송교도소를 찾아 사형 집행 시설 설치 검토를 지시했다. 사형 집행 예고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나 결국 반대에 부딪혀 집행 시설 설치는 무산됐다.
▶다시 13년 뒤인 최근 한동훈 법무장관이 사형 시설을 갖춘 교정 기관 4곳에 “집행 시설을 점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최근 흉악 범죄가 잇따르는 상황을 감안했을 것이다. 한 장관은 사형 집행 여부에 대해 “기본적으로 주권적 결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사형제에 대한 찬반 논란이 거세 집행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원래 사형제는 국가가 피해자 가족을 대신해 살인범에게 공적(公的)으로 보복하는 제도다. 그게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길이라는 생각에서 나왔다. 철학자 칸트는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사형을 집행해야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인권 의식이 높아지면서 반대론이 거세졌다. 법원이 오판(誤判)할 수 있고, 사형제가 범죄 예방에 효과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이탈리아 형법학자 체사레 베카리아가 했다. 오래된 논쟁인데 여전히 평행선이다. 이미 두 차례 사형제 합헌 결정을 내린 우리 헌법재판소도 세 번째 사건을 심리 중이다.
▶현재 국내 사형수는 59명이다. 노인과 부녀자 21명을 연쇄 살해하고 “장기 일부를 먹었다”는 말까지 한 유영철, 노인과 부녀자 9명을 살해한 정두영 등 연쇄 살인범도 포함돼 있다. 이 중엔 사형 외에 합당한 벌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유영철은 오심 가능성이 전혀 없다. 그에게 사형 외에 무엇이 합당한 처벌인지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국가에 의한 살인’인 사형이 정당하냐는 주장 또한 여전하다. 개인적으로는 국민투표로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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