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빈센트 반지하
레크리에이션 강사도 아닌데, ‘놀고먹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라고. 다들 열심히 살지. 하필 퇴근길 병목 구간. 차 안에서 울리는 노래 ‘빈센트’가 ‘스타리 스타리 나이트’. 돈 매클린의 노래가 ‘돈 막 꿀래’로 들리기도 하는 빚쟁이들의 슬픈 노래. 인생을 빚쟁이로 살았던 빈센트는 동생에게 물감 살 돈을 부탁하는 편지를 자주 썼어.
“별이 빛나는 밤이에요. 팔레트에 파란색과 회색을 칠해봐요. 여름날 문밖을 내다봐요. 영혼 속 어둠까지 아는 눈으로 말이죠. 언덕 위의 그림자들, 나무와 수선화를 스케치해봐요. 산들바람과 겨울의 추위를 그려요. 눈처럼 새하얀 아마포 세상도요. 이제 내게 하려는 말을 알 거 같아요. 맑은 영혼을 가지려고 당신이 얼마나 아팠을까요.”
돈 매클린이 히트 쳤던 노래 ‘아메리칸 파이’를 외워 부르던 요쪽 ‘최고 존엄’. 반지하 침수 현장에서 죽어간 분들이 살던 집을 마치 구경꾼처럼 내려다보던 국정홍보용 사진이 떠올라. 빈센트 반 고흐, 아니 빈센트 반지하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깔았을 법했던 사진.
“이전 세입자가 신발장에 붙여 놓은 해바라기 스티커, 싱크대 밑 붉은 야식 배달 스티커를 보며 (…) 진하게 섞어 놓은 퀴퀴한 냄새가 나를 자꾸 뭉개 내고 있었습니다 (…) 전깃줄이 걸어 놓은 느슨한 오후에는 빨래가 낮게 젖어 있었습니다” 허주영 시인의 반지하 월세살이를 노래한 시가 있다. 시집을 덮고, 햇빛이 ‘무쟈게’ 많이 쏟아지는 언덕 위 내 집이 괜히 죄스럽더라.
해바라기 스티커의 주인공 반 고흐는 탄광촌 교회 전도사였다. 고위직 목사들이 광산 소유자 사장들과만 친하고 광부 노동자들을 빨갱이라고 몰아붙이자 이에 격분. 신자들을 선동하는 설교를 한다는 죄목으로 결국 해고당했어. 교회를 떠나 가난뱅이 화가로 찬 서리를 맞고 살았지. 고흐가 한동안 묵었던 집들을 가봤는데 하나같이 반지하 단칸방 수준. 볼 빨간 얼굴을 하고, 별과 까마귀와 밀밭, 해진 노동자의 구두를 그렸던 화가. 희망을 품는 자는 끝내 세상을 이기리라.
임의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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