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희령의 이야기의 발견] 나비를 보았다
A구간 3번 정류소에서 셔틀버스를 기다릴 때부터 마음이 무거웠어요.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결심한 곳으로 고작 여섯 달 만에 돌아가는 길이었으니까요. 버스는 정해진 시각에 어김없이 왔고, 떨어지지 않는 걸음으로 버스에 올랐어요. QR코드를 찍고 나서 자리에 앉았죠. 버스 안은 고요했어요. 작업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모두 잠시라도 눈을 붙이려 하니까요. 창틀 위에 앉아 있는 나비를 발견한 것은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려던 순간이었어요. 제비나비라고 부르던가요? 날개를 활짝 편 검은색 나비였죠.
처음에는 헛것을 보았나 했어요.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나비였어요. 그냥 검은색이라고만은 할 수 없었어요. 달이 뜬 밤하늘의 빛깔이었죠. 얼핏 보면 검은빛이 도는 보라이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푸른빛이 비치는 색이지요. 중국의 구이저우성 깊은 산속에 모여 산다는 이들을 떠올렸어요. 달과 밤하늘을 좋아해서 같은 빛깔의 옷을 만들어 입는다는 사람들이요. 천을 짜면 우선 남전초라는 풀로 열 번 이상 염색하지요. 그리고 바람에 말린 뒤, 달걀흰자를 입혀 돌 위에 놓고 두드려요. 다음 단계는 솥에 쪄내는 거죠. 그러면 신비하고 고운 빛깔의 옷감이 완성된대요.1)
언제부터인가 사람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깊고 험한 산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갔어요. 동남아시아, 중국 남부, 인도 동북부 고원지대에 흩어져 살아왔다는 이들이요. 그 사람들은 지난 2000년 동안 노예제와 징병, 과세, 부역, 질병, 전쟁 등에서 달아난 탈주자, 도피자, 도망 노예들의 후손일지도 모른대요.2) 도망 노예라고?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이들의 옛 노래나 이야기, 전통과 풍습을 찾아보았어요. 특별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샘솟듯 끊이지 않고 나오더라고요. 달이 뜬 밤하늘 빛 옷감을 짜는 방법도 그래서 알게 되었어요.
물류센터 일을 그만두면서 항상 꿈만 꾸던 그림책 작업을 시작했거든요. 산에 사는 이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를 그림으로 그리고 싶었죠. 온갖 빛깔의 꽃이 피는 단풍나무에서 태어난 나비가 자기 짝을 찾는 내용이에요. 사람들은 노래해요. 강물도 태양도 나비의 짝이 아니라고. 말도 할 줄 알고 노래도 부를 줄 아는데 모습까지 예쁜 물거품이 나비의 짝이라고. 둘은 혼인하여 색색 가지로 열두 개의 알을 낳았다고. 첫 번째 노란 알에서 태어난 사람이 그들의 조상이라고.3)
버스 창틀 위의 나비는 여전히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어요. 한쪽 날개가 3분의 1쯤 찢겨나갔더라고요. 그래서 날지 못하게 된 건가. 어떻게 셔틀버스에 타게 된 것일까. 나비는 날아오를 수 있어야 나비지, 아니면 그냥 벌레일 뿐인데요. 그림책 작업을 하면서 나비를 그리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몰라요. 사진이나 그림 말고 진짜 나비를 이렇게 가까이 본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힘들어도 행복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지요.
그날 일이 기억나요. 마감 무렵 사이렌 소리가 요란했지요. 상하차 부서에서 물량이 터졌다면서 관리자가 우리의 등을 떠밀었어요. 그쪽을 지원하러 가라는 것이었어요. 빨리빨리. 작업장은 굉장해요. 대평원처럼 광활한 공간을 파란색 레일들이 가로질러 달리고 있죠. 당신은 숨을 몰아쉬며 말했어요. 우리는 노예야. 주인은 저 파란 놈들이고. 각을 맞춰서 쌓아 올린 바구니들 사이로 우리는 꼬물꼬물 걸었어요. 나는 여기에 오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라 달리 갈 데가 없어서 왔다고 말하고 싶었죠. 빨리빨리. 누군가가 소리쳤을 때 당신은 멈춰 섰어요. 그리고 거짓말처럼 쓰러졌어요. 레일 위에 쌓여가던 종이 상자들이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몰려왔어요. 비명도 못 지르고 서 있다가 나는 보았어요. 저 멀리 무너진 상자들 사이로 나비 한 마리가 영혼처럼 가볍게 날아오르는 것을요.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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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 <중국 소수민족 신화 기행>, 김선자
2)<조미아, 지배받지 않는 사람들>, 제임스 C 스콧
부희령 소설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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