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균의 초속 11.2㎞] 차라리 야구를 응원하는 게 낫다
야구 취재를 오래 했기 때문이다. 오가다 만나는 동료들이 꼭 묻는다.
“요즘 ○○은 도대체 왜 그래?”
○○ 안에 어떤 구단 이름을 넣든 비슷하다. “요즘 ○○ 때문에 행복해”라는 말은 좀처럼 듣지 못한다. 1등을 달리고 있는 LG 팬인 동료 역시 한두 경기만 지면 “요즘 LG는 왜 그래”라고 묻는다. 야구에 정답은 없다는 걸, 내일은 이길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하소연하듯 묻는다. 스스로 야구팬이거나 주변에 야구팬이 있는 사람들은 안다. 야구팬들은 늘 화가 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야구를 응원한다는 건 가성비에 맞지 않는다. ‘밑지는 장사’다. 구글에서 데이터 과학자로 일했던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는 어릴 때부터 뉴욕 메츠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는 저서 <모두 거짓말을 한다>를 통해 페이스북에서 야구단에 ‘좋아요’를 누른 데이터를 싹 다 모아 ‘특정 팀의 팬이 되는 것은 7~8세 때의 성적’임을 증명했다.
1994년 마지막으로 우승한 LG의 팬 중에는 30대 후반이 많다. 1992년이 마지막 우승인 롯데 팬들의 나이대도 비슷하다. LG와 롯데가 맞붙을 때 ‘불꽃’이 튀는 건 어쩌면 이런 ‘인구학적 특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 다른 책 <데이터는 어떻게 인생의 무기가 되는가>에도 야구 얘기가 나온다. 서섹스대 연구진은 스포츠팬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가장 좋아하는 팀이 이기는 경기, 지는 경기를 시청하고 나서 몇 시간 동안 그들의 행복점수가 어땠는지 꼼꼼하게 조사했다.
우승팀을 응원해도 밑지는 장사
평균적인 스포츠팬들은 경기가 시작되기 전 행복점수가 조금씩 높아진다. 승리에 대한 기대와 승리 장면을 상상하면서 기쁨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대하고 있다가 이기면, 행복점수는 약 3.9점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기면, 행복해진다.
문제는 질 때다. 이길 때 3.9점 높아지는 행복점수가 질 때는 7.8점이나 깎인다. 지는 경기에서 받는 상처가 이기는 경기에서 얻는 기쁨보다 훨씬 크다. ‘가성비’가 맞지 않는다. 게다가 야구는 거의 매일 하는 경기다. KBO리그는 1년에 144경기를 치른다(무승부일 때는 0점이 아니라 마이너스 3.2점으로 조사됐다).
2022년 KBO리그 최하위였던 한화 팬이라면 손해가 심각하다. 46승2무96패를 기록했는데, 계산대로라면 179.4점을 얻고 755.2점을 잃는다. 행복지수가 무려 마이너스 575.8점이다. 강팀을 응원한다고 해도 행복점수를 플러스로 만들기 쉽지 않다. 계산대로라면 승률이 66.7% 이상이어야 하는데, 2022년 우승팀 SSG랜더스의 승률은 62.9%였다. 어느 팀을 응원하든지, 우승팀을 응원해도 밑지는 장사일 수밖에 없다.
미래 없는 정부 응원보다는 이익
심지어 강팀 응원에 대한 조사 결과는 조금 다르다. 승리 확률이 높은 팀이 이겼을 때 얻는 행복점수는 3.1점이지만 졌을 때는 10점이나 깎인다. 승리 확률이 높을수록 한계효용이 체감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1위팀이든 10위팀이든 어느 팀을 응원하든 모든 야구팬들이 항상 화가 나 있는 게 당연하다.
스스로 야구팬이거나, 주변에 야구팬을 둔 사람은 안다. 그럼에도 야구를 끊지 못한다. 야구는 매일 하는 종목이고, 오늘의 패배가 내일의 패배를 확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떠오르듯, 내일의 경기는 다시 승리의 희망으로 시작된다. 한 번의 패배에 좌절하지 않고, 승리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연습이 매일 이뤄진다. 야구를 응원하는 건, 비록 행복점수 기준으로 손해가 확정된 일이지만, 대신 ‘회복 탄력성’을 연습하는 데 최고다.
대한민국과 이 나라에서 함께 사는 이들을 응원하는 입장에서 2023시즌은 (지난 시즌에도 비슷했지만) 꽤 답답하다. 이기는 경기가 보이지 않는다. 사건·사고가 이어지고, 외교에서는 계속 퍼주고만 있고, 잼버리는 완패나 다름없었다. 도쿄전력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한 대처는 팬 대다수가 (고의)패배로 느끼는데 ‘산수도 제대로 못한다’고 되레 큰소리를 내며 승리를 주장한다.
심지어 감독은 승패에 대해 얘기하지 않고, 코치들만 나와서 ‘사실은 지지 않은 것’이라고 애먼 설명을 늘어놓는다. 더 심각한 건, 내일 경기는 물론 남은 세 시즌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지 설명조차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전히 전임 감독 탓만 하고 있다. 팬들은 벌써 화를 내는 것조차 지친다.
차라리 야구를 응원하는 게 낫다. 야구 응원의 최고 효용은 ‘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졌는데 지지 않았다고 우기는 것만큼이나 무용한 일은 없다.
이용균 뉴콘텐츠팀장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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