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일상을 덮친 흉기난동,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신림동과 서현역의 흉기난동, 계속되는 살인예고와 공공기관을 상대로 한 테러 위협까지 국내 치안 상황이 심상치 않다. 정부는 무고한 시민을 향한 흉기난동을 예방하기 위해 살인 예고 장소에 무장 경찰을 등장시켰다. 또한 테러방지법 등 관련 법을 개정해 공중이 밀집한 장소에서 흉기난동을 벌인 범인을 엄하게 처벌하고, SNS 등에 살인예고 글을 올린 용의자에 대해 살인예비 혐의를 적용해 구속·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강력한 공권력 행사로 불특정 다수를 향한 범죄 행위를 방지하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정부가 시민의 불안을 불식시키기 위해 강력히 대응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단호한 조치 후에도 온라인의 살인예고 글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최근 신림동과 서현역에서 발생한 흉기난동은 기존의 범죄와는 다른 특성이 있다. 단순히 치안을 강화하고 흉기난동 등 무차별 폭력 행위자에 대한 엄한 처벌만으로 불특정 다수를 향한 범죄를 예방할 수 없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발생한 흉기난동은 범죄의 뚜렷한 목적은 없지만, 동기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 동기는 사회적 고립감을 탈피하고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에 있다. 이들은 시민 밀집 장소를 범행 장소로 선택하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삼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충격적 사건을 벌임으로써 대중에게 공포감을 주는 한편 미디어의 주목을 받으려는 것이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지만 이들은 주류사회로부터 배제된 경험이 있다. 지속적인 차별과 혐오 속에서 잘못된 생각에 빠져들고 자신의 극단적 행동을 정당화한다. 불특정 다수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하고, 대중에 공포를 준다는 점에서 테러와 유사하다.
신림동과 서현역의 흉기난동은 정치, 종교 등 구체적 목적이 없으므로 테러로 분류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반면 정신질환자들의 무차별 살상 사건을 경험한 일본 등 일부 국가에서는 ‘외로운 늑대형 테러’라고 부르며. 이런 범죄를 테러의 범주로 분류하고 있다. 실제로 국제 공조가 강화되고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SNS 등 비대면을 통해 취득한 정보를 바탕으로 스스로 폭력행위를 준비하는, 이른바 ‘DIY(Do It Yourself)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특정 범죄를 테러로 규정한다는 것은 범행이 발생한 후 강력히 처벌한다는 의미와 동시에, 돌이킬 수 없는 테러로 인한 피해를 적극적으로 예방한다는 의미가 있다. 신림동, 서현역 흉기 범죄를 테러의 범주로 분류할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정부는 현재의 강력한 대응만으로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 흉기난동을 막을 수 없다는 한계도 인정해야 한다. 범죄의 원인을 정신질환자, 일부 사이코패스의 일탈로만 규정하고 혐오와 차별을 만드는 현재의 접근방식은 또 다른 범죄의 동기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들이 범행에 나서게 된 배경과 동기를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굳어진 신분사회 속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는 청년들, 차별과 혐오 속에서 사회에서 고립된 외국인들, 그리고 일상화된 폭력에 노출된 이들 중 일부는 온라인을 통해 잘못된 이념에 빠져들고, 불특정 다수를 향한 폭력을 통해 사회를 향한 불만을 표출할 수 있다. 정부는 무차별 흉기난동의 주된 원인은 개인이 아닌 사회에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테러는 한번 발생하면 피해가 막대하다. 또한, 끔찍한 테러 이후 대중이 느끼는 공포감은 또 다른 테러의 원인이 된다. 정부의 강력한 대응도 필요하다. 그러나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 폭력을 근본적으로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위험에 노출된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폭력적 행위를 결의하는 이들을 향한 메시지도 필요하다. 우리는 이유 없는 어떠한 폭력에도 굴복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공동체와 연대하여 함께 싸워서 이길 것이라고.
백수웅 변호사·<테러를 프로파일링하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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