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요즘, ‘진짜’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한 인정은 쉽지 않다. 제대로 된 증명의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정말 ‘진짜’인 것이 억울할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가을이 시나브로 다가왔다. 아침 저녁에 부는 미풍에서, 부쩍 잦아든 매미소리에서 가을 향기를 맡는다. 하지만 가을은 울긋불긋 단풍이 들어야 ‘진짜’다. 전국 방방곡곡이 불에 타듯 옷을 갈아입어야 ‘찐’ 가을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전 세계 동급 최강의 가을을 자랑하는 나라가 있다. 대놓고 국기에 단풍잎을 그려넣은 그 나라, 바로 캐나다다. 캐나다 국민만큼 단풍을, 또 가을을 사랑하는 이들이 있을까 싶은 계절답게 캐나다 전역으로 가을의 풍광은 그야말로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세계에서 2번째로 넓은 국토를 자랑하는 캐나다답게 곳곳을 잇는 도로를 달리며 맞는 단풍의 모습은 그 어떤 길보다 특별하고 아름답다. 아예 ‘전 세계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라고 자천타천 인정을 한 곳까지 있다. 캐나다 동부 노바스코샤 주 북단의 케이프 브레턴 섬(Cape Breton Island)에 조성한 298km 길이의 순환 도로, 캐벗 트레일(Cabot Trail)이다.
해안선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지는 가을의 캐벗 트레일은 운전대에 손을 얹는 내내 창밖으로 흐르는 풍경에만 몰입하게 할 정도다. 다녀온 이는 물론, 영상이나 사진으로 접한 이들 통틀어 드라이브를 즐기는 이라면 꼭 달려보고 싶은, 또 싶을 코스라고 손꼽는다. 주변이 온통 단풍색으로 물드는 가을지수 200%의 캐벗 트레일의 곳곳을 소개한다.
캐벗 트레일, 여행의 시작은?
캐벗 트레일의 동쪽은 대서양을 마주하고, 서쪽은 세인트 로렌스 만(Gulf of Saint Lawrence)이 있어 환상적인 오션 뷰를 자랑한다. 바다를 바로 옆에 끼고 이어지는 도로는 자동차 CF에나 나올 듯한 비현실적인 자태를 뽐낸다. 때문에 드라이브를 이어가는 중간중간 작은 마을이나 전망대, 하이킹 트레일 등을 방문하거나 웨일 와칭 투어, 씨카약 같은 액티비티를 즐기기 좋다.
캐벗 트레일 드라이브를 시작할 수 있는 구간은 여럿 있다. 특히 트레일 남쪽의 작은 마을 배덱(Baddeck)을 출발점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여행자들은 배덱에서 시작해 시계 방향으로 돌지, 반시계 방향으로 돌지 고민한다.
사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아름다운 전망은 그대로 즐길 수 있다. 단, 반시계 방향으로 돌면 바깥쪽 도로를 타기 때문에 해안 풍광을 좀 더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대신 안쪽 도로로 달리는 시계 방향이 운전하기에는 더 편하다. 운전에 큰 어려움이 없다면 가고 싶은 여행지 동선에 따라 방향을 선택하면 된다.
일정 역시 마찬가지다. 드라이브만 한다면 하루에 돌 수도 있지만 중간중간 하이킹도 하고 명소도 방문하면 며칠을 잡아야 할 수도 있다.
잠깐 차를 멈추고, 하이킹
차를 타고 달리며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잠깐 차를 세우고 두 발로 땅을 밟으며 자연을 느껴보는 시간도 소중하다. 캐나다에서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국립공원 중 하나로 손꼽히는 케이프 브레턴 하이랜즈 국립공원(Cape Breton Highlands National Park)도 캐벗 트레일에서 만날 수 있다.
산과 계곡, 폭포, 해안 절벽으로 이뤄진 국립공원에는 무스, 곰, 비버, 여우 등 여러 야생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총 26개 하이킹 코스가 마련되어 있는데, 가볍게 산책하는 코스부터 도전적인 등산 코스까지 난도가 다양하다.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스카이라인 트레일(Skyline Trail)이다. 구불구불 고원을 지나는 캐벗 트레일과 드넓은 바다가 한눈에 내다보이는 전망이 그야말로 압권이다. 운이 좋다면 세인트 로렌스 만에 출몰하는 고래를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경사가 심하지 않고 데크도 깔려 있어 누구나 걸어볼 만한 하이킹 코스다. 스카이라인 트레일은 고도 290~405m이며 왕복 코스는 6.5km, 순환 코스는 8.2km 길이다.
전망은 즐기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면 10분짜리 트레킹 코스인 프레시워터 레이크 룩오프(Freshwater Lake Look-off)를 이용해보자. 짧고 가파른 300m 구간 끝에 대서양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프래니 트레일(Franey Trail)은 7.4km 길이의 험난한 코스로, 대신 정상에 오르면 360도 파노라마 뷰가 제대로 노고를 보상해 준다.
잠깐 차를 멈추고, 작은 마을 탐방
캐벗 트레일에서 만나는 작은 마을들이 여행에 소소한 재미를 더한다. 동쪽 해안가 잉고니시(Ingonish)에서 해변 산책을 즐기고 곤돌라를 타보길 추천한다. 사계절 휴양지인 케이프 스모키(Cape Smokey)에 애틀랜틱 캐나다 지역 최초의 곤돌라가 2021년 개장했다. 곤돌라를 타고 정상에 오르면 대서양과 고원, 잉고니시 마을이 어우러진 그림 같은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고, 가을에는 단풍까지 합세해 궁극의 경치를 완성한다.
아카디아 문화가 살아 있는 셰티캠프(Chéticamp)에는 아카디안 작가들의 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아트 갤러리를 비롯해 카페, 베이커리, 기념품숍 등이 있고, 배덱에서는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국가사적지(Alexander Graham Bell National Historic Site)를 만나볼 수 있다. 고래를 좋아한다면 서쪽 해안가의 플레즌트 베이(Pleasant Bay)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케이프 브레턴의 웨일 와칭 중심지로, 고래 해설센터를 마련해 전 세계에서 고래를 보려는 많은 사람이 모여든다.
잠깐 차를 멈추고, 일출 & 일몰 감상
해안을 끼고 달리는 캐벗 트레일은 일출과 일몰 감상 명소이기도 하다. 땅에는 단풍이, 하늘에는 일출이나 일몰이 빛을 발하는 가을날에 그 화려함이 극치에 달한다. 차를 타고 달리다 일출, 일몰과 마주할 수도 있고, 전망대에서 제대로 감상할 수도 있다.
정부 기관인 파크 캐나다(Parks Canada)에서 운영하는 스카이라인 선셋 하이크(Skyline Sunset Hike) 프로그램이 도움을 준다. 가이드가 동반해 스카이라인 트레일에서 바다와 단풍을 배경 삼아 일몰을 즐기는 하이킹 프로그램이다. 일몰 2시간 전에 출발하며 7.5km 코스를 걷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