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참사 12주기 특집] 아이들의 시간

목격자들 2023. 8. 3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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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참사는 짧게는 몇 주 동안, 길게는 몇 달 혹은 몇 년까지도 이목을 끌지만 시간이 갈수록 관심은 줄어든다. 망각과 무관심 속에서도 피해자들은 계속 살아가야 한다. 뉴스타파는 지난 2011년 처음 알려진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피해자, 그 중에서도 어린이였던 피해자들을 만나 이들의 지난 12년을 돌아봤다. 당시 어린이였던 피해자들은 참사의 흔적을 온몸에 새긴 채 어른이 됐거나 되어가고 있었지만 이들에 대한 사회적 배려는 무정할 정도로 부족했다.  

2007년생 박하늘

2007년생 하늘이는 늦둥이다. 엄마가 더 좋은 걸 해 준다고 틀어준 가습기로 인해 앓기 시작했다. 한 번 손상된 폐 기능은 호전되지 않아 지금도 강원도 태백과 서울에 오가며 통원 치료를 받는다. 몇 달 전에는 급성 폐렴으로 혼절해 응급실로 실려 갔다. 병원에선 하늘이에게 전용 응급실 카드를 발급해 줬다. 바깥 공기가 차가워지면 바깥출입이 꺼려진다.

▲ 집 앞마당에서 채송화를 심고 있는 하늘이(2007년생)와 엄마 

응급실에 오가며 숱한 고비를 넘겨야 했던 하늘이를 위해 엄마는 집 앞마당을 정원으로 꾸몄다. ‘하늘이 정원’이다. 하늘이 침실에서도 정원이 보이도록 했다. 꽃을 보며 밝은 기운을 얻으라는 엄마의 정성이 담겼다. 취재진이 찾은 날, 두 모녀는 채송화를 심고 있었다. 채송화의 꽃말인 순진, 천진난만함처럼 하늘이도 구김 없이 성장하라는 엄마의 뜻이다. 

2004년생 박동현

2004년생 동현이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 폐 손상 1등급 환자다. 조금만 달려도 숨이 가빠지고 쉽게 지친다. 그런 동현에게 얼마 전 입영통지서가 날아왔다. 신검 결과 3급, 현역 판정을 받았다. 동현이는 만성피로증후군을 앓고 있지만, 국방부는 인정하지 않았다.

동현이는 폐 부전증과 기흉으로 여러 번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동현의 아빠 박기용 씨는 아들을 포함해 가습기 살균제 피해 청소년 중 병역의무 대상자 600여 명에 대한 신체판정기준 검토를 병무 당국에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동현이(2004년생)가 잠깐의 운동 후 거친 숨을 고르고 있다. 그는 조금만 달려도 숨이 가쁘다. 

결국, 동현이는 재심 대신 입대를 선택했고 아빠는 아들의 군대 적응을 돕고 있다. 동현이는 요즘 운동을 열심히 한다. 입대 후 군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서다. 그래도 아빠는 어렵게 살려놓은 아들이 군대에서 자칫 잘못될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2002년생 장승원

2002년생 승원이는 입영 신체검사를 세 번이나 받아야 했다. 처음 신검에선 현역 판정을 받았다. 승원이의 폐활량이 80% 이상으로 나와 군 복무에 문제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여느 아이와 달리 승원이가 간질성 폐 질환과 기흉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무시됐다.

이후 승원은 신검을 두 번 더 받았다. 세 번째 검사에서 사달이 났다. 전력 달리기 도중 승원이의 폐가 찢어졌다. 폐 일부를 들어내는 큰 수술까지 받고서야 5급 전시근로역 판정이 나왔다. 이제 승원이는 다시는 뛰지 못할 것 같다고 한다.

▲ 하루의 절반가량는 누워있어야 하는 승원이(2002년생) 엄마가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승원은 대학생이지만 엄마와 등하교를 같이 한다. 엄마는 아들의 등하교를 위해 캠핑카를 샀다. 학교를 오가는 동안 승원은 캠핑카 침대에 누워있다. 승원이는 여느 가습기 피해자 청소년들과 마찬가지로 하루 중 절반가량을 누워있거나 잠을 잔다. 

2009년생 민승희

2009년생 승희네는 온 가족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다. 폐 손상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학교보다 병원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결석이 잦을 수밖에 없었고, 출결 문제로 학교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승희 엄마는 병으로 인한 출결 인정을 받고 싶은데, 그게 여의찮다. 

▲ 폐 손상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학교보다 병원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던 승희(2009년생) 엄마는 자녀의 출결을 인정받고 싶지만, 현실은 여의찮다.

하늘, 동현, 승원, 승희, 뉴스타파 목격자들 제작진이 만난 네 명의 아이들은 모두 건강하게 태어나서 숨을 쉬었고, 더 튼튼해지라고 젖살 얼굴에 하얀 수증기를 맞았을 뿐이다. 아이들은 몇 번의 고비를 넘기며 살아남았고 대학에 입학하고 군대에 갈 나이가 됐다. 그러나 여전히 아프다. 

‘사회적 참사’로 규정된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올해로 12주기를 맞았다. 2011년 첫 피해가 세상에 알려진 이후 지금까지 7,854명이 피해를 신고했고, 이 중 1,821명이 숨졌다. 2017년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을 만들었지만, 가해 기업의 책임 문제는 지금도 분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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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목격자들 witness@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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