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자 증언만 있을 때, 증언은 얼마나 믿을 만할까 [오용규의 삶을 바꾼 판결]
편집자주
판결은 재판받는 사람에게만 효력이 있지만, 대법원 판결은 모든 법원이 따르는 규범이 된다. 규범화한 판결은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 판결과 우리 삶의 관계를 얘기해본다.
무죄로 번복된 판결의 75%
목격자 증언이 유일한 증거
법관, 경청·고민 최선 다해야
형사재판에서는 증인의 증언이 재판의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은 범죄가 일어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목격자에게 용의자를 보여주고 그 사람이 맞다고 진술하면 강력한 증거가 된다고 생각한다. 유죄판결을 받았다가 DNA 검사로 누명을 벗은 사례가 2019년까지 미국에서만 수백 건에 이르렀는데 그중 75%는 목격자 증언을 근거로 유죄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목격자들의 진술이 사실과 달랐던 것이다.
2008년 발표된 연구에서 연구자들이 슈퍼마켓에서 도둑이 술 한 병을 훔치고 근처에 2명의 방관자가 있는 실험 동영상을 실험 참가자에게 보여주었다. 영상을 본 직후 몇 명의 남자들을 줄을 세워(라인업) 실험 참가자들에게 보여주었는데 그중 도둑은 없었다. 그런데 실험 참가자 중 절반 이상이 방관자 2명을 도둑으로 지목했다. 우리 대법원은 용의자 한 사람을 단독으로 목격자에게 보여주거나 사진을 보여주어 범인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기억력의 한계 및 부정확성, 용의자가 범인으로 의심받고 있다는 무의식적 암시를 줄 수 있으므로 그 목격자의 진술은 신빙성이 낮고, 신빙성을 높이려면 먼저 목격자에게 범인 인상착의를 묘사하게 하여 기록화한 후 여러 사람을 동시에 목격자와 대면시켜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목격자가 인지하여 기억에 입력한 부분은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비교적 정확하지 않을까? 연구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다. 갓 생성된 기억은 쉽게 영향을 받고 편집될 수 있다. 상상, 의견, 추측이 개입되면서 없던 것이 들어가기도 하고 있던 것이 빠지기도 한다. 또한 한번 저장된 기억이라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너무 오래 방치된 기억은 변질되거나 소실되기도 하고 기억을 인출할 때마다 일부 기억이 재구성되거나 왜곡될 수 있다. 1986년 미국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폭발하였다. 그 24시간 후 미국 에모리대학에서 심리학을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폭발 당시 어디에서 누구랑 뭘 하고 있었는지 같은 질문을 했다. 그로부터 2년 6개월 후 그 학생들에게 동일한 질문을 하여 당시 기억과 대조해보았다. 두 기억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경우는 한 건도 없었고 25%는 0점을 받았다. 심지어 학생들에게 이전에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지 물어보았을 때 단지 25%만 그렇다고 대답했고, 75%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학생들에게 두 기억이 불일치한다고 일깨워주자 나중 기억이 정확하다고 우겼다.
법정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재판은 사건으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 진행된다. 1~2년 전 상황에 대한 질문은 다반사이며, 심지어 5년 이상 이전의 상황에 대하여 묻기도 한다. 그런데도 증인은 당시 상황이 정확하지는 않지는 이 점만큼은 확실하다고 답변한다. 과연 그 진술을 믿을 수 있을까?
여기서 더 나아가 뇌물 사건의 뇌물 공여자의 진술,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기는 더욱더 어렵다. 두 사건 모두 뇌물을 준 사람과 받은 사람,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 두 명만 있고 사건 현장의 목격자가 없는 경우가 많다. 결국 뇌물 공여자, 성폭력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유무죄를 가리는 가장 중요한 증거가 된다. 대법원은 뇌물 공여자 진술의 신빙성을 가리기 위하여 진술 내용 자체의 합리성, 전후의 일관성뿐만 아니라 그의 인간됨, 그 진술로 얻게 되는 이해관계 유무도 살펴봐야 한다고 한다. 의도적 거짓말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은 자신의 내밀한 성적 영역에 대한 것이라는 점에서 뇌물 공여자의 진술과는 전혀 다르다.
증인의 진술에 의하여 피고인은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는데 증인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 단지, 법관들이 사건 당사자들의 진술을 경청하고 깊이 고민하여 주실 것을 부탁드릴 도리밖에는 없다.
오용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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