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무역장벽에 韓기업 수출 고충…CFE 국제 확산 땐 숨통 트일 것"
높아지는 탄소무역장벽에
韓기업 수출 어려움 가중
원전·수소 포함 CFE 인증제로
재생에너지 확대 한계 극복
산업계 기대 속 국제확산 모색
[이데일리 김형욱 강신우 기자] 우리 산업계가 전 세계적인 재생에너지 발전 전력 사용 확대 요구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우리 정부 주도로 추진 중인 무탄소에너지(CFE, Carbon Free energy) 인증제도 도입과 국제 확산이 기업들의 어려움을 푸는 실질적 대안이라는 제언이 나왔다.
허재용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무탄소에너지(CFE)로의 전환과 가능성’ 토론회 주제발표자로 나서 이같이 밝혔다.
이날 토론회는 이데일리가 최근 정부가 산업계와 함께 추진 중인 CFE 제도에 대한 산업계·전문가 의견을 듣기 위해 이인선 국민의힘 의원실·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과 함께 마련했다. 정부는 올 초부터 CFE 인증제도를 도입해 국제 통용 기준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했다.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려면 재생에너지뿐 아니라 원자력발전, 청정수소,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등 모든 CFE를 총동원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이 같은 정책 이면에는 우리 기업들의 탄소무역장벽 대응 부담을 줄이자는 속내도 있다. 국내 기업들은 RE100 캠페인(사용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이 사실상의 탄소무역장벽 역할을 하며 고충을 겪고 있다. RE100에 참여한 기업에 납품하는 국내 기업들이 그들의 요구 조건을 맞추지 못해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도 늘어나는 추세다. 허 수석연구원은 “아직은 일부 대기업에 납품하는 협력사들이 겪는 일이지만, 앞으로 모든 수출 중소·중견기업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응해 정부와 산업계는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를 늘리고 있지만, 탄소무역장벽 확산 속도를 좇아가기 버거운 상황이다. 정부는 지난 10여 년 간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확대 정책을 추진했으나 국내 비중은 아직 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가장 낮다.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 전력 43테라와트시(TWh)로는 상위 5개 기업의 전력 사용량(48TWh)도 충당하기 어렵다. 국토가 좁은데다 전력 계통은 사실상 섬이어서 재생에너지 확대에 불리한 여건이다.
허 수석연구원은 “기업으로선 현실적인 대응 수단이 마땅치 않다”면서 “당장 시급한 RE100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동시에 CFE 제도가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도록 하려는 노력을 ‘투-트랙’으로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부 국제 CFE 인증제 도입 시도에 산업계 ‘기대’
산업계는 정부의 CFE 본격화 움직임에 큰 기대를 거는 모습이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CFE 관련 정책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 기업의 62%가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CFE가 RE100 같은 탄소무역장벽을 완화해 줄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토론회는 현장에 150명 이상 모이고, 5300명 이상 유튜브 생중계를 시청하는 등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딱딱한 주제의 토론회가 이렇게 큰 관심을 받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CFE 제도가 활성화하면 기업으로선 원전을 활용해 더 낮은 비용으로 탄소중립을 이행할 수 있다. 허 수석연구원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늘어나면 발전량이 많은 시점에 원전 가동을 줄여야 하는데, 이를 줄이는 대신 재생에너지와 원전 발전 전력을 혼합한 무탄소 전원 요금제를 만들어 기업에 공급한다면 국가 전력수급을 안정시키는 동시에 기업이 CFE 인증서를 활용하는 장치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남는 원전 전력을 활용해 만드는 수소인 ‘핑크 수소’ 생산이 활성화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김태형 포스코홀딩스 수소사업팀 상무는 “포스코가 2050년까지 철강 생산 과정에서의 탄소 배출을 없애려면 500만t의 수소가 필요한데, 이를 신·재생에너지 발전 전력으로 만든 수전해 방식으로 만드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며 “원전의 남는 전력을 활용해 친환경 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면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를 줄이고, 산업 현장에 필요한 수소를 값싸게 조달할 수 있을 것”고 부연했다.
관건은 국제확산…정부 “국제 인정받도록 노력”
관건은 우리 주도로 만드는 CFE 인증제도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으로 만들 수 있는지 여부다. 제도를 만들어도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기업들의 활용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도 국제협력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원전 국가인 미국, 프랑스, 중국, 스웨덴 등과의 공조를 통해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제28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등 국제협의체에서 CFE 동참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녹영 실장은 “CFE 확산에서 가장 중요한 건 해외 고객사의 인정 여부”라면서 “당장 외국 기업이 CFE를 인정하도록 하는 것은 어려운 만큼, 국가간 협의를 거쳐 조금씩 산업계로 확장하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CFE의 국제 공조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천영길 산업부 에너지산업실장은 “스웨덴도 과거 RE100을 주창해 왔으나 최근 (우리의 CFE와 유사한)‘비화석연료 100’으로 바뀌는 중”이라며 “국내 기업이 안고 있는 탄소중립 문제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형욱 (ner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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