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범죄와의 전쟁’에 수사권 원하는 금융당국…오남용 우려도
美 SEC처럼 강제조사권 부여해 신속·엄벌 취지
교묘해지는 주가조작에 당국 권한강화 맞대응
감독당국 권한 오남용·무차별 통신조회 우려도
30일 금융위·금감원에 따르면 두 기관은 내달 발표하는 ‘불공정거래 대응체계 개편 방안’에 범죄 혐의자 관련 통신조회, 계좌동결 등 수사 권한을 조직의 조사 인력에 부여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4월·6월 두 차례 주가조작 사태 이후 증권범죄 대응 체계를 전반적으로 살피면서 이 같은 방안을 집중 논의 중이다. 검찰 지휘를 받는 소수의 특별사법경찰(특사경)만이 아니라 조사 인력 전반에 ‘통신조회’,‘계좌동결’ 권한을 부여하는 게 핵심이다.
금융당국이 이 같은 방안을 논의하게 된 것은 늘어나는 증권범죄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주가조작 일당들은 곳곳에서 바주카포를 들고 나오고 있는데, 지금 당국은 전담인원도 부족한데다 소총이나 단검으로 싸우는 형국”이라고 토로했다.
금감원 조사 인원은 2015년 92명에서 지난해 70명으로 줄었다. 금융위·금감원에 수사권을 가진 특별사법경찰(특사경) 조직이 있지만 10여명 안팎 소수로 두 기관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데다, 검찰 지휘를 받고 있다. 예산 부담 등으로 인력 증원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런 와중에 금감원에 접수된 불공정거래 사건은 2015년 157건에서 지난해 232건으로 급속도로 불어났다. 라덕연처럼 모바일을 이용한 교묘한 주가조작 수법까지 생겨나는 상황이다.
검찰 부담도 커졌다. 자본시장 불공정거래로 고발·통보된 사건(2016~2021년 기준) 중 기소되지 못한 불기소율이 53.5%에 달한다. 불기소율이 이렇게 높은 건 이첩되는 기간이 상당히 길기 때문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현재는 증권범죄 포착→금감원 검사→금융위 조사→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 의결→검찰 이첩까지 평균 11개월 걸린다. 시세조종 사건의 경우 범죄가 일어난 시점부터 증선위 의결까지 1121일이나 걸렸다. 통신자료 보관 기간은 최장 1년이다. 금융위·금감원 조사 과정 동안 증거 시한이 상당 부분 지나가 버리는 셈이다.
오남용 우려도…법무부, 국회 논의 첩첩산중
이는 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SEC)와 대조된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의 증권법상의 불공정거래 조사는 SEC 내의 집행국이 전담하고 있다. SEC 집행국은 각 부처에서 뿔뿔이 흩어져 맡았던 조사 권한을 통합해 1972년에 설립됐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SEC 집행국은 재량에 의한 임의조사, 증인소환 등 강제조사도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를 통해 관련 범죄를 선제적으로 적발, 조사할 수 있는 셈이다.
금융당국에 ‘계좌 동결’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신속하고 효율적인 제재 수단을 확보하기 위한 취지다. 증권범죄는 금전적 이익을 노리고 주가조작 등을 행한다. 주가조작으로 수천억원의 부당이득을 얻은 뒤 코인이나 다른 계좌 등으로 자금을 빼돌리는 행태가 많다. 이 때문에 미국의 경우 SEC가 계좌동결, 거래제한 등 금전적 제재를 신속하게 처리하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금융위, 금감원에 사실상 ‘계좌동결’ 권한이 없어, 금전적 제재에 구멍이 뚫려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금융위와 금감원이 ‘통신조회’, ‘계좌동결’ 권한을 당장 확보하는 게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금융당국의 감독 권한이 비대해지고 권한 오남용에 대한 우려가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두 조직의 조사원에게 수사권을 부여하려면 통신비밀보호법, 자본시장법을 개정해야 해 국회 논의 과정에서 반발이 거셀 수 있다. 법무부 등 관계부처 합의도 필요하다.
특히 통신조회에 대해서는 민간인 사찰 우려가 제기될 수도 있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민간 조직인 금감원에 이 같은 강제조사권을 부여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 때문에 금감원에 현장조사권, 영치권을 부여하는 방안이 과거부터 거론됐음에도 현재까지 도입되지 못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권한 오남용 우려는 사법적 통제나 통제·관리를 강화하는 방안을 함께 고민하길 바란다”며 “불공정거래 대응 체계를 강화하면서 사회적 우려를 줄이는 묘안이 논의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최훈길 (choigig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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