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사진 속 이슈人] 고향에 잠든 프리고진, 추모하는 러시아 시민들

29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시민들이 프리고진을 기리며 촛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AP연합뉴스

의문의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장례식이 29일(현지시간) 고향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묘지에서 열렸습니다. 이날 러시아 곳곳에 설치된 추모 장소에도 시민들이 모여들어 그를 추모했습니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이날 프리고진의 장례식이 그의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포로홉스코예 묘지에서 비공개로 진행됐습니다. 유족의 뜻에 따라 장례식에는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만이 참석했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장례식에 불참했습니다.

NYT는 군 병력과 경찰이 묘지 주변에 투입돼 지지자 및 일반 추모객들의 방문을 차단했다고 전했습니다. 폭발물 탐지견이 묘지를 수색하는 장면도 목격됐습니다. 이날 오후 1시부터 시작된 장례식은 오후 5시쯤 끝났다고 합니다. 프리고진과 함께 사망한 바그너그룹의 물류 담당 발레리 체칼로프의 장례식도 이날 상트페테르부르크 북부 묘지에서 열렸습니다. 프리고진의 장례식에 비해 경찰 통제는 덜했지만 일정이 공표되지 않았고 언론 취재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PMC 바그너 센터' 앞에 있는 추모 장소에도 시민들이 촛불에 불을 붙이고 꽃다발을 남겼습니다. 이곳에는 'PMC 바그너, 우리는 함께 합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고 액자에 담긴 프리고진의 사진도 놓여 있습니다.

수도 모스크바에서도 많은 시민들이 크렘린궁에서 몇 백 미터 떨어진 곳에 마련된 임시 추모공간을 방문해 프리고진과 측근들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손으로 입을 막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 오른쪽 손을 가슴에 가져다 대며 묵념하는 사람들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됐습니다. 부모를 따라온 어린이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이와함께 프리고진이 생전에 자신의 운명을 내다본 듯한 인터뷰 동영상도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바그너그룹이 운영하는 텔레그램 채널 '그레이존'은 최근 프리고진이 자국 군사 블로거와 한 인터뷰 동영상을 게시했습니다. 프리고진은 "국방부가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을 쫓아내고 있어 러시아가 곧 재앙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는 "우리는 끓는점에 도달했다"면서 "차라리 날 죽여라"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프리고진은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며, 러시아가 재앙 직전에 있다고 솔직하게 말해야만 한다"면서 "만약 이 톱니바퀴들이 오늘 조정되지 않으면 비행기는 공중에서 분해될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비행기 사고를 연상시키는 발언을 한 것이죠. 이를 두고 각종 가설이 온라인에서 홍수를 이뤘다고 합니다.

프리고진은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서 여러 사업을 벌여왔습니다. 특히 바그너그룹의 수장으로서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가 진행 중인 '특별군사작전'에 참여해 공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러시아 군부와 갈등을 겪던 프리고진은 지난 6월 무장 반란을 일으켜 부하들을 이끌고 모스크바 앞 200㎞ 지점까지 진격해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하지만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중재를 받아들여 하루 만에 반란을 끝냈습니다.

프리고진은 지난 23일 전용기 엠브라에르 레거시 600 제트기를 타고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하던 중 추락 사고로 사망했지요. 무장 반란을 일으킨 지 두 달 만이었습니다. 프리고진 사망의 배후에 크렘린궁이 있다는 의혹이 나왔지만 크렘린궁은 이를 "완전한 거짓말"이라며 일축하고 있습니다.

이날 미국은 프리고진 사망의 배후로 푸틴 대통령을 재차 지목했습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바이든 대통령의 최근 표현처럼 지난주 초 있었던 사건( 프리고진의 사망) 배후에 푸틴 대통령이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프리고진의 죽음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실패한 정책을 비판했기 때문"이라며 "이 점은 매우 분명해 보인다"고 단언했습니다.

박영서 논설위원